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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칸하나다] ‘위안부 문제 거짓말’과 맞서 싸우는 일본과 한국의 진실 세력

“일본과 한국 양국의 어린이들의 자국에 자부심을 앗아가는 ‘위안부 강제연행’에 대한 교과서 기술은 모두 삭제돼야 마땅”



※ 본 콘텐츠는, 2023년 9월 5일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위안부 문제 관련 ‘제2차 한일 공동 심포지엄’과 관련, 마츠키 쿠니토시(松木國俊) 일본 국제역사논전연구소 수석연구원이 ‘하나다프러스(Hanadaプラス)’에 2023년 9월 27일자로 기고한 ‘위안부 문제를 규탄하는 ‘일한공동심포지엄’이 준 충격(慰安婦問題を糾弾する「日韓共同シンポジウム」の衝撃)’를 완역한 것이다. (번역 : 요시다 켄지)




‘위안부의 진실’ 연구자들이 서울에 한자리에 모였다
「慰安婦の真実」研究者がソウルに大集合

2023년 9월 5일,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위안부 문제의 거짓을 파헤치는 ‘제2차 일한(日韓) 공동 심포지엄’이 열렸다. 지난해 11월 도쿄에서 열린 1차 심포지엄에 이어 이번에는 일본 측 위안부 문제 연구자들이 말하자면 ‘적지(敵地)’라고도 할 수 있는 한국으로 건너가, 한국 국민들에게 직접 진실을 호소하는 대담하고도 의욕적인 기획이 실현된 것이다.

일본 측에서는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레이타쿠(麗澤)대학 특임교수, 야마모토 유미코(山本優美子) 국제역사논전연구소(国際歴史論戦研究所) 소장, 그리고 필자를 포함한 3명이 발제를 맡았고, 한국 측에서는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 등 3명이 연단에 섰다.

행사장에는 일본과 한국 양국의 국기가 게양됐고, 개회식에서는 ‘국민의례’로 양국의 국가 제창이 있었다. 필자는 한국의 공공장소에서 처음으로 일본의 ‘기미가요(君が代)’를 당당하게 부를 수 있었다.

이어 본 심포지엄의 주최 측인 ‘자유통일을 위한 국가대개조네트워크(이하 자유통일네트워크)’ 김학성 대표의 환영사가 있었고, 이승만학당 교장 이영훈 씨와 국제역사논전연구소 이사장 스기하라 세이시로(杉原誠四郎) 씨가 축사를 전했다.

전 서울대 교수이자 한국과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반일종족주의'의 편저자로도 유명한 이영훈 씨는 축사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발생한 지 32년입니다. 아직도 대부분의 한국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관헌이 조선의 여성들을 강제로 연행해 위안부로 삼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이 거짓이라고 솔직하게 지적한 학자나 연구자들은 즉시 사회에서 퇴출돼 왔습니다. 그러나 2019년 ‘반일 종족주의’가 발간한 이래로 여론의 흐름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도 사실입니다. 길은 멀지만 진정한 한일 우호를 실현하기 위해 희망을 갖고 나아가야 합니다.” (요지)


또한 하버드대학 존 마크 램자이어 교수의 영상 메시지가 영상으로 공개됐다. 램자이어 교수는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닌 업자와의 계약에 기반한 직업’이라는 취지의 논문을 발표해 한국 언론과 한국계 연구자들로부터 ‘금발의 일본인’이라는 맹렬한 공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신념을 관철시킨 용기 있는 인물이다.

그리하여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호소하는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획기적인 심포지엄의 막이 올랐다.



보수 정치단체와 시민단체도 참여 "위안부 문제는 명백한 국제사기"
保守政治団体や市民団体も参加「慰安婦問題は明白な国際詐欺」

이번 심포지엄은 주최측인 자유통일네트워크를 비롯해 한국의 보수 정치단체와 시민단체의 후원으로 개최되었고, 이에 호응하여 일본에서도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주도로 응원단이 결성돼 바다 건너 13명이 행사장을 찾아왔다. 

심포지엄의 첫 순서로 한국 측 지원단체를 대표해 자유통일당 전국여성위원장 겸 전국엄마부대 상임대표인 주옥순 씨가 한국 내 ‘위안부 사기’와의 투쟁에 대해 경과보고를 했다.

주옥순 씨는 14년 전부터 일한관계 악화로 인한 한국의 자멸을 우려해 엄마부대를 조직했고, 위안부 문제로 일한분열을 획책하는 윤미향 전 정대협(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대표와 맞서왔다. 위안부 문제의 사기성을 고발했다가 도리어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하고 유죄판결을 받아 집행유예를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3년 전 뜻을 같이하는 9개의 시민단체가 모여 ‘위안부 사기 청산연대’를 결성했다. 주 씨는 해당 연대의 대표를 맡아 윤미향에 맞서서 현재도 법정투쟁을 벌이고 있다.

주 대표는 경과보고에서 “30년 이상 한일 외교를 파탄시킨 위안부 문제는 명백한 국제사기”라고 단정했다. 위안부 동상에 대해서는 “일본에 대한 원한과 적개심만 불러일으키고, 오히려 한국의 과거 치욕적인 역사만 재확인시키는 것”이라며 하루빨리 철거해야 마땅하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등단자의 발언 개요 ① 니시오카 쓰토무 ‘일본에서 시작된 위안부 문제’
登壇者の発言概要 ① 西岡力氏「日本から始まった慰安婦問題」

한국에서 일본통치시대를 아는 세대는 위안부가 성노예가 아니라 전쟁터에서 매춘업에 종사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전후 일한 협상 과정에서도 한국 측은 위안부 문제는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1989년에 이르러 ‘아사히저널(朝日ジャーナル)’에  ‘조선과 조선인에게 공식사죄를 100인위원회(朝鮮と朝鮮人に公式謝罪を百人委員会)’라는 단체가 “일본국은 조선과 조선인에게 공식사죄하라”는 의견광고를 연재하면서 위안부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위원회의 멤버였던 아오야기 아츠코(青柳敦子)라는 여성이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이하 유족회)라는 한국 측 단체와 연락을 취해 ‘원고(原告)’가 되어줄 위안부 피해자를 찾아 다니며 재판비용 400만 엔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이것이 위안부 문제의 모든 발단이며, 이후 유족회는 다카기 켄이치 변호사, 후쿠시마 미즈호 변호사 등의 도움을 받아 일본에서 재판을 일으켰다. 소장에는 사기꾼인 요시다 세이지의 ‘강제연행 증언’이 장황하게 인용되어 있었다.

또한 아사히신문도 1991년부터 1992년에 걸쳐 요시다 세이지의 거짓 증언 등을 근거로 “일본군이 여자정신대의 이름으로 조선인 여성을 강제 연행해 위안부로 만들었다”는 사실무근의 선전을 대내외에 퍼뜨려 위안부 문제를 일본과 한국의 외교문제로 둔갑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아사히신문은 2014년 8월이 되어서야 요시다 증언이 ‘허위’임을 인정했지만, 너무도 늦은 반성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위안부 문제가 여기까지 커진 요인은 한국 측에도 있다. 일본인과 재일동포들이 수많은 허위사실을 곁들여 쓴 책을 근거로 한국의 이화여대 윤정옥 교수가 ‘‘정신대’ 원한의 발자취 취재기‘를 썼고, 좌파 성향의 한겨레신문이 이를 1990년 1월부터 연재했다. 그녀는 같은 해 12월 정대협을 결성하고, 일본 정부를 추궁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일본에서도 윤정옥의 움직임에 호응해 사회당 의원이 같은 해 6월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위안부 관련 질문을 하며 위안부 문제에 불을 지폈다.

일본의 거짓 세력이 한국의 거짓 세력을 도우면서 위안부 문제가 시작된 것이다.

② 이우연 씨 ‘조선인 위안부, 어디서 어떻게 왔는가’
② 李宇衍氏「朝鮮人慰安婦―どこからどうやって来たのか」

강제연행론자들은 “20만 명의 여성이 강제연행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객관적인 증거는 물론 목격자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옛 위안부 출신으로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과 포옹한 것으로 유명해진 이용수는 1992년 KBS 방송에서 “원피스 한 벌과 가죽구두 한 켤레를 받고 좋다고 따라갔습니다”라고 증언한 바 있다. 악덕 업자에 의한 전형적인 납치 사건이다. 그러나 2007년 미 하원 위안부 피해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그녀는 “어깨를 이렇게 둘러싸고 한 손으로 입을 막고 군인은 뒤에서 등에 뭔가를 콱 찌르면서 그냥 끌려갔습니다. 밤에. (나는) 역사의 산 증인이다”라고 증언했다. 이렇듯 옛 위안부들의 증언에는 일관성이 없다. 

당시 고용주와 매춘부 사이에는 연계봉공(年季奉公)이라는 합법적인 계약이 맺어졌고, 매춘부들은 지원자이거나 부모에 의해 매춘부로 팔려온 사람들이었다. 만약 일본인이 여성을 직접 징용했다면 조선의 노인과 젊은이들은 분노하여 봉기했을 것이다. 남자들은 분노하여 자신은 어찌 되든 일본인을 죽이려 했을 것이다.




③ 류석춘 씨 ‘위안부 문제의 사법화: 역사논쟁에서 법적투쟁으로’
③ 柳錫春氏「慰安婦問題の司法化:歴史論争から法的闘争へ」

류석춘 전 교수는 지난해 연세대에서 진행한 ‘발전사회학’ 강의에서 ‘한국의 발전에서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의 역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학생들과 토론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그는 학생들에게 “위안부 강제연행은 없었다”, “위안부의 목적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었다”는 진실을 설파했다. 하지만 해당 강의는 동의도 없이 어느 학생이 녹음해 언론에 제공하면서 류 전 교수는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았고, 대학 측으로부터 한 달 정직 처분까지 받았다. 뿐만 아니라 정대협이 명예훼손으로 형사고발을 했고, 류 전 교수는 기소되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류 전 교수는 “본인은 2020년 11월 기소된 이후 십여 차례 재판을 받았지만, 2023년 3월 22일 법원은 검찰이 당연히 제출해야 할 ‘위안부 강제연행 증거’를 아직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판을 ‘공전’시킨다고 선언했다. 위안부 강제연행이 없었으니 그 증거를 제출할 수 없을 것이고, 재판을 지속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진실이 너희들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고 전한 뒤 발표를 마쳤다.

④ 야마모토 유미코 씨 ‘‘위안부=성노예’에 이용당하는 유엔, ILO, 유네스코’
④ 山本優美子氏「『慰安婦=性奴隷』に利用される国連・ILO・ユネスコ」

유엔과 ILO(국제노동기구), 그리고 유네스코(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는 일본 정부에 대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권고'를 여러 차례 내놓았다. “일본군 위안부는 강제연행된 성노예”라고 주장하는 측은 이 권고야말로 “성노예가 있었다는 증거”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유엔기구는 각국의 NGO가 보내오는 방대한 의견서 내용을 자세히 조사할 시간적, 인적 여유가 없다. 그들은 일본 좌익과 한국의 반일단체가 보내 온 대량의 ‘허위 의견서’를 고스란히 믿고 일본 정부에 권고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초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기에 한국의 주장이 그대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현재 한국의 한 단체가 위안부 문제를 유네스코 기억유산에 등재하려 하고 있다. 부디 일본과 한국의 전문가와 연구자들이 협력하여 ‘성노예’라는 거짓말이 등재되지 않도록 총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⑤ 마츠기 쿠니토시 ‘위안부 실태와 일본 학교 교과서 문제’
⑤ 松木國俊「慰安婦の実態と日本の学校教科書の問題」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민간 출판사가 만든 교과서를 문부과학성이 검정하고, 거기서 합격한 교과서가 학교에서 사용된다. 어느 출판사의 것을 사용할 것인가는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의견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본의 교육 현장은 좌파 단체인 ‘일본교직원노동조합’(일교조)이 주도하고 있으며, 교과서를 채택시키기 위해 출판사들은 일교조의 입맛에 맞는 내용을 담은 책을 만들게 된다.

게다가 일본 문부과학성에도 좌파가 진출해 있다. 교과서 검정 역시 좌파 검사원이 담당하고 있으며, 일본인의 자긍심을 심어주는 교과서는 불합격으로 처리하고, 일본의 역사를 부당하게 폄하하는 교과서에 대해서는 거의 무난히 통과시키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하여 일본 교과서에는 ‘위안부 강제연행’ 기술이 넘쳐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강제연행이 사실이라면 조선 전역에서 항의운동과 폭동이 일어났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사건의 기록은 단 한 건도 없다. 그렇다면 조선의 남자들은 자신의 딸이, 여동생이, 연인이 눈앞에서 강제 연행되어도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않는 비굴한 사람이었던 것이 되어버린다. 이는 한국 역사에서 가장 큰 오점으로 남지 않겠는가.

당시 신문기사에서도 알 수 있듯 조선인 여성들을 유인해 중국에 팔아넘긴 것은 악덕업자였고, 일본 관헌이 이를 구출한 것이 진실된 역사다. 양국의 어린이들의 자국에 자부심을 앗아가는 ‘위안부 강제연행’에 대한 기술은 모두 삭제돼야 마땅하다.




⑥ 김병헌 씨 ‘한국 초중고 교과서 위안부 기술 실태와 대책’
⑥ 金柄憲氏「韓国小中高教科書の慰安婦記述の実態と対策」

한국의 모든 초중고 교과서에 위안부 문제가 기술되어 있다. 그것들은 위안부에 관한 거짓된 정보를 기술함으로써 아이들에게 일본에 대한 막연한 증오심을 심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역사 교과서인 ‘초등 사회 5-2’(김영사)를 보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일제는 1931년 중국을 침략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한 1945년까지 여성들을 전쟁터로 강제로 끌고 가 지속적인 성폭력을 저질렀다.”

 

중학교용 ‘역사’(비상)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여자정신근로령을 내려 여성들마저 동원하였는데, 많은 여성들을 일본군 위안부로 끌고 가 큰 고통을 겪게 했다.”


고등학교용 역사교과서에는 위안부 관련 서술이 더욱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우선 리베르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본군은 조선을 비롯한 중국,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수십만 명의 젊은 여성들을 일본군위안부로 강제로 끌고가 성노예 생활을 강요하였다”, “1944년에는 여자정신근로령을 공포하여 12세 이상 40세 미만의 여성들을 후방 병참 지원 인력으로 동원하였다. 이때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강제  명목으로 강제 징발된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동아출판의 고등학교 교과서는 심지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피해자들은 구타나 고문, 성폭력 등으로 평생 치유하기 힘든 고통 속에 살아야 했고, 일부는 반인륜적 범죄를 은폐하려는 일본군에게 학살당하기도 하였다.”, “위안부가 도주하는 경우 일본군이 직접 추격하여 도주한 위안부를 다시 위안소로 끌고 오거나 사살하기도 하였다.”


위에 예시한 이외의 교과서에도 위안부 관련 서술은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거짓이다.

공장노동자였던 정신대와 매춘부였던 위안부는 전혀 다르다. 더구나 조선에서는 징용령이 발령되지 않았고, 정신대로 끌려가 위안부가 된 사례는 전무하다.

만약 군인이 강제로 데려가거나 성폭력을 가했다면 이는 중대한 범죄이고 처벌 기록이 남아있어야 하는데, 그런 기록이 일체 남아있지 않다.

학살행위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본인(김병헌)은 한국 외교부(외무부)에 “위안부 학살의 증거가 있으면 공개하라” 요구했지만, 외교부의 답변은 “정보 부재”였다. 학살된 위안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거짓과 증오를 가르치는 것은 그들의 심성을 황폐화시킬 뿐만 아니라 한일 간 갈등과 대립의 씨앗을 뿌리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잘못된 교과서 서술은 일부만 수정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위안부 관련 기술 전체를 삭제하는 것,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일본대사관 부지 앞에 걸린 일장기 
日本大使館敷地前で翻った日の丸

각 발제자들의 발언은 이상과 같다. 심포지엄 다음날인 6일(수)에는 일본과 한국의 연구자, 한국 시민단체, 그리고 일본에서 온 응원단이 일본대사관 앞에 모여 태극기와 일장기를 손에 쥐고 위안부 거짓말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바로 인근 위안부 동상 주변에서는 위안부 문제로 일본 정부를 규탄하는 ‘수요시위’가 예정되어 있어 충돌이 우려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반일시위 참가자 40여 명에 비해 우리 측은 70여 명이 모여 규모와 기세에서 우리가 압도적으로 우세했으며, 일장기를 휘두르는 일본과 한국의 시민들에 대한 방해 행위도 전혀 없었다.

집회장에 마련된 단상에는 심포지엄 연사들과 시민단체 대표들이 차례로 올라 ‘위안부의 거짓말’ 문제를 지나가는 서울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이후 초대가수까지 등장해 우리를 격려하는 노래를 연달아 부르며 장내는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집회를 마무리하면서 야마모토 유미코 씨가 일본과 한국의 ‘역사의 진실을 추구하는 세력’(진실세력)의 연대를 호소하는 ‘위안부 거짓과 싸우는 일한 진실세력 공동성명’을 발표해 큰 박수가 쏟아졌다.



일반의 인식은 여전히 ‘강제연행설’이 주류
一般認識はまだまだ「強制連行説」が主流だが

중국, 러시아, 북조선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일본과 한국 양국이 서로 힘을 합칠 수 밖에 없다. 그런 위기의식에 눈을 뜬 한국의 애국자들이 일어나 반일감정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학교, 길거리, 법정 등에서 진실을 호소하며 싸워왔다. 이러한 노력이 한국의 반일 여론에 균열을 일으켜 일본과 한국의 ‘진실 세력’의 연대로 발전했고 이번 심포지엄의 성공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 노력에 진심으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러나 이영훈 씨가 축사에서 언급한 바, 한국 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여전히 ‘강제연행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어릴 때부터 반일 교육을 통해 주입된 일본에 대한 편견과 원한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북조선과 중국의 하수인인 좌파 정치인과 정의연 등 ‘거짓말쟁이 세력’은 온갖 허위사실을 동원해 반일 감정을 부추기고 일본과 한국의 관계 분리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극동에 위치하며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하는 일본과 한국은 경제적으로도 안보적으로도 운명공동체이며, 분리하면 공멸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다소 고통스럽더라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오해를 풀고 한국인의 가슴에 박힌 ‘편견과 원한의 가시’를 근본적으로 뽑아야 한다.

싸움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일본과 한국 ‘진실 세력’의 연대가 이뤄낸 의미는 매우 크다. 엄마부대의 주옥순 대표도 “위안부 문제 전문가인 일본 분들과의 연대가 이뤄져 백전백승을 거뒀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앞으로 그 협력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여 ‘거짓 세력’을 일소하고, 일본과 한국 양국민이 서로를 진심으로 신뢰하고 함께 손잡고 아시아를 선도하는 날이 하루빨리 찾아오도록 필자 역시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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