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배·울산과학기술원 인문학부 교수 ]
우리 정치인들은 가끔 자체핵무장을 주장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전직 고위 미국 관료들이 언론에 나타나 이런저런 설득력 없는 이유로 자체핵무장을 반대한다. 그러면 우리 정치인들은 어김없이 꼬리를 내린다. 대신 반박해주는 국내 전문가도 없다. 그렇게 상황은 종료되어 버린다. 이런 패턴은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다. 한 발짝도 더 못 나아가고 있다.
전직 고위 미국 관료들은 “한국이 자체핵무장을 하면 한미동맹이 훼손된다”고 간단히 말한다. 왜 훼손된다는 것인지 자세히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속내는 다음과 같이 직접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
(i) “한국이 자체핵무장을 하면 주한미군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나가라고 요구할 것이 우려된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은 군사적 요충지이다. 중국을 견제하는데 미국이 꼭 필요로 하는 곳이다.”
(ii) “미국은 한국이 친미국가로 남아 있기를 원한다. 자체핵무장을 해버리면 자주 노선을 걸을 것이다. 중국의 편에 설 가능성도 우려된다.”
(iii) “한국이 자체핵무장을 하면 따라 하려는 나라들이 생겨날 것이다. 미국의 입장이 곤란해진다.”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자체핵무장을 묵인받기 위해서는 위 세 가지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A) 한국이 핵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핵을 미국과 러시아로부터 “극비리에” 구매하는 것이다. (2025년 2월 28일자 미디어워치 기고문 참조.) 구매가 완료된 후에는 핵보유 여부에 대해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 판매국에 대한 배려이다.
(B) 미국을 다음과 같이 설득한다. 한국은 자체핵무장을 하더라도 미군을 필요로 한다. 한반도 주변에 강대국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구사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미국이 원한다면, 미군이 한국에 계속 주둔한다는 조건으로 핵무기를 구매한다.
(C) 대부분 한국인의 머릿속에는 미국이 영원한 큰 형님으로 뿌리 깊이 박혀 있다. 미국교를 믿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이 원한다면, 친미국가로 남아 있을 것임을 서면으로 약속한다.
예측건대, 차기 대선에서 자체핵무장론이 다시 불거질 것이다. 그럼 어김없이 전직 고위 미국 관료가 언론에 나타나 이런저런 설득력 없는 이유로 자체핵무장을 반대할 것이다.
이번에는 용감한 정치인이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자체핵무장과 한미동맹은 양립 가능하다고 한마디쯤은 해줄 수 있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