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유용욱 주필 | 1988년 퇴임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93년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노태우 전 대통령 등과 함께 검찰에 고발됐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지검 공안1부(장윤석 부장검사)는 1995년 7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통치행위 이론’을 근거로 쿠데타가 ‘고도의 정치적 행위’인 만큼 사법부가 이를 판단할 수 없어 공소권이 없다는 취지였다.
법리(法理)는 있었으나, 권력 지형 앞에서 법치(法治)는 침묵했다. 이후 국민적 분노와 특별법 제정,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거치며 “헌법 질서 파괴는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처벌 대상”이라는 원칙이 뒤늦게 확립되었다.
2026년 2월 19일 목요일, 우리는 30년 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닮은꼴인 또 다른 극단을 마주하고 있다. 내란수괴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대통령에게 비록 1심이긴 하지만 무기징역이 선고된 이 장면은, 과거의 ‘사법적 방기(放棄)’가 아니라 ‘사법의 정치화’라는 새로운 위기를 드러낸다.
법이 권력을 견제하는 기준이 아니라, 승리한 정치 권력이 패배한 권력을 제거하는 도구로 전용(轉用)되고 있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비상계엄 선포를 곧바로 내란죄로 구성한 법리다. 내란죄는 헌법 질서를 전복하려는 명확한 목적, 조직성, 실질적 폭동 행위가 엄격하게 입증되어야 하는 중대 범죄다.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통치권자의 계엄권 행사를 정치적으로 비판할 수는 있어도, 이를 곧바로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으로 치환하는 순간 통치행위와 범죄의 경계는 무너진다. 이는 통치행위의 사법화를 넘어, 정치적 갈등을 형사 처벌로 해결하려는 위험한 선례가 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절차적 정의’의 붕괴다. 대통령 관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집행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 과정에서 대통령의 방어권은 충분히 보장되었는지, 헌법이 요구하는 엄격한 절차가 지켜졌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특히 이른바 ‘딱풀영장’이나 ‘영장쇼핑’ 논란에 이어 그 논란의 백미(白眉)라 할 서부지법 영장전담 판사인 이순형 부장이 써 넣은 ‘형사소송법 110조, 111조 적용을 배제한다’는 체포영장이 과연 적법한 영장인지에 대한 논란이 대표적이다.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배제되어야 한다는 독수독과(毒樹毒果)의 원칙이 철저히 무시된 채 ‘실체적 진실’이라는 명분만이 앞세워졌다면, 이는 정의의 실현이 아니라 정반대인 정의의 형해화(形骸化)에 다름 아니다.
법치(Rule of Law)의 근간인 관할권의 붕괴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법정 수사 범위 어디에도 명시되지 않은 내란죄 수사를 법원이 묵인한 것은, 절차적 정당성보다 정치적 당위성을 우선시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늘, 사법의 종언을 판결로 공식화한 지금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이 모든 현상은 필연적으로, 또 당연한 논리적 귀결로 현실 정치에서 내란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법률 용어에 머물지 않게 한다.
그것은 상대를 토론의 대상이 아닌 ‘헌법의 적’으로 규정하는 정치적 낙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 프레임이 작동하는 순간, 사법부는 독립적 심판자가 아니라 이미 내려진 정치적 결론을 확인해주는 통과 의례의 무대장치 중 일부로 전락한다.
현실이 이러할진대, 이번 판결을 내린 판사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어리석은 판단이 될 것이다.
거대 정치 권력이 판결 이전부터 이미 정답을 규정하고, 혹 있을지 모른 다른 결론에 대해서는 사법부 전체를 향한 압박을 가하는 기형적 구조 속에서 판사 한 사람에게 ‘법치의 최후 보루’가 되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성공한 쿠데타’를 단죄하지 못했던 것이 개인의 비겁함이 아니라 권력 지형의 문제였듯, 오늘 지귀연 부장의 선고 역시 개인의 일탈이라기보다 구조적 모순의 결과물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법치는 적을 제거하기 위한 무기가 아니다. 아니, 절대로 아니어야 한다. 그것은 권력자에게도 불편해야 하고,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도 성급함을 허락하지 않는 제도적 제동장치로 작동되어야 건강한 사회다.
그러나 법치가 특정 진영에게만 편리한 칼이 되는 순간, 민주주의는 스스로를 갉아먹기 시작하고, 이후 멀지 않아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오늘의 판결로 누군가는 환호하겠지만, 역사에 남을 것은 ‘무기징역’이라는 자극적 형량이 아니라 법치가 정치의 하위 개념으로 전락한 장면일 것이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말이 틀렸던 것처럼, 사법절차를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데 조력자로 만들고 정치가 법치까지 독점할 수 있다는 믿음 또한 결코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그 대가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청구될 것이고, 우리 모두는 또 얼마간은 대한민국 형사사법제도에 대한 회의와 좌절된 민주주의를 아파하며 술잔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오늘 역사의 한복판에 선 지귀연 부장은 본인의 의지나 계획과는 전혀 상관없이 윤석열 대통령 내란우두머리 사건 1심 재판장을 맡아 2025년 1월26일 구속 기소 이후 모두 마흔세 차례 공판을 거쳤다.
증인신문만 160여 명에 이를 정도로 강도 높은 재판사무를 힘들게 담당했음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후세의 사가(史家)들에 의해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기록될지 고뇌하며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하는 지귀연 부장의 기구한 여생(餘生)은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맑은 영혼의 소유자로 알려진 지귀연 부장의 영혼에 깊은 위로를 전한다. 지귀연 부장 개인에게 건네는 필자의 위로는 ‘법관으로서의 고뇌에 대한 연민’이자, 동시에 ‘무너져가는 사법 독립에 대한 영결사(永訣辭)’이기도 하다.
오늘 이후 그의 여생에 덧씌워질 역사의 무게가 안타깝지만, 그 대가는 결국 우리 공동체가 다 함께 나누어 짊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니 지귀연 부장, 혼자 너무 괴로워하거나 서러워하지는 마시라.
1심 선고를 변명하기 위해 시작한 글이 막상 쓰고 보니 그저 변명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미안한 마음과 함께 건투를 빈다는 말 또한 전하고 싶다. 힘내시라, 지귀연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 25부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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