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욱 칼럼] 사법개혁, ‘정의(正義)의 칼’이 아니라 ‘정의의 방향(方向)’이어야

인싸잇=유용욱 주필 |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이른바 ‘사법개혁 3법’이 일사천리로 국회를 통과했다. 법 왜곡죄 도입, 재판소원제 허용, 대법관 대폭 증원. 여당은 이를 두고 “사법 대전환의 시대”라 자평하지만, 정작 사법부 내부와 법조계 전반에서는 깊은 무력감과 불안이 감지된다.

 

 

전국 법원장들의 집단 유감 표명과 법원행정처장의 전격적 사퇴는 우리 모두에게 이 개혁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며, 도대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게 한다.

 

그런데 이 장면은 현실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에겐 이상하게 낯설지 않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 ‘기득권 해체’라는 명분과 ‘개혁’이라는 미명(美名)하에 진행됐던 일련의 과정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당시 그들에게 개혁은 언제나 선과 악, 강자와 약자의 구도로 설명됐다. 자신들을 상징한 개혁 주체는 스스로 ‘포위된 약자’로 규정했고, 여기에 반대하거나 우려를 표하는 집단은 곧바로 ‘기득권 세력’이라는 낙인을 감수해야 했다.

 

그 결과 ‘기득권’은 더이상 사실을 설명하는 개념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응징하고 청산해야 할 대상이라는 전략적 명칭으로 변질됐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훌쩍 지난 오늘의 사법개혁 담론에서도 여전히 동일한 구조가 반복되고 있는 현실은 과연 우연의 일치인가? 민주당은 사법부를 “국민 위에 군림해 온 기득권”으로 설정하고, 이번 입법을 그에 대한 “민주적 통제”로 설명한다.

 

그러나 사법부는 입법·행정부와는 달리 그저 다수결의 논리로 움직이도록 설계된 기관이 아니다. 판사의 독립성과 재판의 자율성은 특정 직역의 이익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체제 그 자체를 지탱하는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사법부가 정의(正義)의 최후의 보루(堡壘)라는 말이 그저 생겨난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이를 ‘기득권의 저항’이라는 말로 단순화하는 순간, 집권 여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사법개혁은 그 방향성을 상실하고 표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의’는 정치의 목적지가 아니라 방향이어야 한다. 플라톤 이래 정치는 종종 ‘항해(航海)’에 비유돼왔지만, 항해의 목표는 북극성 그 자체가 아니라 목적지로의 안전한 도달이다.

 

정의는 항로를 가늠하게 해주는 기준이지, 정부가 직접 노를 저어 도착해야 할 최종 좌표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집권 세력이 거의 대놓고 속내를 드러내는 것처럼, 정치 권력이 정의의 구현을 스스로 독점하려 들 때, 정의는 공동체를 통합하는 기준이 아니라 분열시키는 새로운 무기가 된다.

 

‘법 왜곡죄’는 판결의 내용이 아니라 판사의 ‘의도’를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 ‘재판소원제’는 확정판결의 종국성을 허문다. ‘대법관 증원’은 단기간에 사법 수뇌부의 구성을 특정 정치세력이 대거 바꿀 수 있는 모순된 구조를 만든다.

 

이를 추진하는 집권 세력이 내세우고 있는 표면적 이유나 주장하는 바에 대한 근거는 얼핏 보면 각각의 취지와 문제의식 자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 모든 제도 변화를 한꺼번에, 충분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나 이해관계자들의 숙의(熟議) 없이 무작정 밀어 붙여질 때 사법부는 결국 적절한 ‘견제의 대상’이 아니라 ‘길들여야 할 권력’으로 전락할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개혁은 본래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특히 사법개혁은 더욱 그러하다. 판결의 질을 높이고 국민의 접근성을 개선하려면, 그 제도개선의 방향은 마땅히 누군가를 징벌하는 방식이 아니라 관련 직역의 역량을 부양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인력 확충이 필요하다면 재판연구관과 하급심을 함께 강화해야 하고, 오판(誤判)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면 기존 제도의 정밀한 보완부터 검토해야 한다. ‘응징(膺懲)’이 앞서는 개혁은 자신들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국민들의 신뢰를 쌓지는 못한다.

 

필자가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과거 공영방송 개혁 과정에서도 꼭 같이 그랬듯, 이번에도 사법개혁의 이름으로 조직을 갈라치고 반대자를 침묵시키는 방식은 단기적으로 적극적 지지자들에게는 순간의 통쾌함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 장기적으로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깊은 냉소와 뿌리 깊은 저항 세력만 남기게 될 것이다. 진정한 개혁은 요란한 진군나팔 소리가 아니라, 이른 새벽 묵묵히 씨를 뿌리러 집을 나서는 농부의 자세에 더 가까워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권력을 쥔 자들이 ‘정의의 칼’을 더 힘차게 휘두르는 일이 아니라, 정의가 가리키는 방향을 다시금 확인하는 일이다. 개혁은 특정 세력을 밀어내고 갈라쳐서 누군가를 벌주는 징벌적 과정이 아니다.

 

특정 직역(職域)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열어가는 부양적(浮揚的) 개념으로 온전히 작동될 때, 비로소 그것은 지금의 우리 모두는 물론 다음 세대를 위한 제도로 온전하게 기능하게 될 것이다.

 

사법개혁이 권력의 장악 속도를 높이는 수단이 아니라, 공동체의 신뢰와 정의에 대한 확신을 키우는 과정이 되기를 진심으로 희구(希求)한다.

 

□ 유용욱 주필

 

- 1993년 KBS 공채 19기
- KBS 전략기획실 성과평가부장
- KBS 법무실장
- KBS N 경영본부장
- 현) 인싸잇 경기 편집국장 및 공동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