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백소영 기자 ㅣ 국제 유가 상승과 생산자물가 오름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가 에너지 절약을 명분으로 공공부문 차량 통제를 강화하고 민간까지 확대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위기 대응 방식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쟁이 커지고 있다. 절약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정부의 정책 적용 방식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방식이 개인의 선택 영역까지 규정하는 수준으로 확대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4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원유 자원안보위기 ‘주의’ 경보를 발령하고 공공부문 승용차 5부제를 25일 0시부터 의무화하기로 했다.
적용 대상은 공공기관 공용차와 임직원이 먼저 적용되는데 10인승 이하 승용차 약 150만대로, 기존보다 강화된 지침이 내려지면서 경차와 하이브리드 차량까지 포함됐다.
위반 시에는 단순 주차 제한을 넘어 경고와 징계 등 강제 조치가 뒤따를 예정이다.
민간에 대해서는 현재 참여 권고 수준이지만, 향후 위기 단계가 ‘경계’로 격상될 경우 승용차 5부제 의무화가 검토되고 있다.
이 경우 전기·수소차와 일부 예외 차량을 제외한 약 2370만 대가 적용 대상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이와 함께 ‘에너지 절약 국민 행동’ 지침도 발표했다. 승용차 5부제 참여를 비롯해 대중교통 이용, 친환경 운전, 도보 및 자전거 이동, 실내 적정온도 유지, 불필요한 조명 차단 등 이동과 생활 전반에 걸친 행동 지침이 포함됐다.
가정에서는 샤워 시간 단축, 휴대전화와 전기차 낮 시간 충전, 가전제품 사용 시간 조정, 세탁기·청소기 주말 사용 등 개인의 일상적 선택에까지 구체적인 기준이 제시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문제는 국민들에게 절약 정책이 방향을 제시하는 수준을 넘어, 생활의 구체적인 방식까지 규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특히 세탁기와 청소기를 주말에 사용하도록 권고한 지침은 가구 구성과 생활 환경에 따라 1인 가구인지 4인 가구인지 현실 적용 가능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과 일상의 괴리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원유의 상승세와 맞물려 실제 최근 생산자물가는 6개월 연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데, 전월 대비 0.6%, 전년 대비 2.4%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자물가는 통상 1~3개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되는 만큼, 현재의 원가 상승은 향후 생활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외식비, 교통비, 공공요금 등으로 확산될 경우 체감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비용 상승 압력이 구조적으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공급 측 대응이 충분히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최근 울산 석유 비축기지에 보관 중이던 국제 공동비축 원유 약 90만 배럴이 해외로 판매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정부가 감사에 착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동비축유는 유가 급등 시 시장 공급을 통해 가격 상승을 완화할 수 있는 장치인데, 해당 물량이 국내에 우선 활용되지 못한 상황은 정책 대응의 우선순위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과거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전 가동 중단으로 전력 공급이 급감한 에너지 위기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다.
이때 일본정부에서는 기업 운영 시간 조정과 공공 시스템 절전을 먼저 시행하고, 개인에게는 ‘절전(節電)’ 캠페인을 통해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최근엔 일본 역시 중동 정세 불안과 원유 가격 상승, 엔화 약세가 겹치며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170엔에서 180엔대 수준까지 상승하는 등 가격 부담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처럼 역시 단순한 물가 변동을 넘어 생활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비용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정부로서나 국민에게나 부담은 더해지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정유사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통해 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정책을 유지·조정하고 있고, 소비자 가격을 일정 수준 이하로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격 자체를 통제하기보다 상승 폭을 제한하고 시장 물가 충격을 완화하는 방식이다.
또 수천억 엔 규모의 추가 재정 투입이 검토되는 등, 비용 상승 압력을 개인의 생활 제약이 아닌 재정과 정책 수단으로 흡수하려는 방향이 유지되고 있다.
이처럼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의 정책 방향은 결국 어디서부터 부담을 시작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이에 정부가 제시해야 할 출발점은 개인이 아니라 정책 영역이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는 공공기관을 시작으로 제도가 적용되고 있지만, 향후 민간으로 확대될 가능성까지 열려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기준 역시 분명해야 하는데, 국회의 전기절약과 국회의원들의 생활은 예외인가. 공공기관 적용에 앞서 국회라는 영역부터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국민에게 절약을 요구할 수는 있고 정책도 상황에 따라서는 시행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순서와 기준이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면, 그 정책은 참여 독려가 아니라 강요이자 국민 제약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때다 싶어 보여주기식 정책을 내놓기보다, 근본적인 물가 안정을 위해서 에너지 대책부터 제대로 세우고 국민에게 에너지 절약권고를 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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