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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신인 간미연, 도전인가 도박인가

[공희준] 중고 신인 간미연에 대한 재발견


 매주 일요일 오전 8시 30분, SBS 서울방송에서는 ‘도전! 1000곡’이라는 오락 프로그램이 전파를 탄다. 연예인들이 노래방기계가 반주하는 곡들을 따라 부르며 노래솜씨를 겨루는 내용이다. 휴일 아침에 늦잠을 자기 일쑤인 필자이기에 이를 시청한 기억은 당연히 거의 없다. 한데 요즘은 ‘도전! 1000곡’의 하이라이트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느라 바쁘다. 옛 베이비복스 멤버 간미연의 열창장면을 감상하기 위해서다. 약간의 웹서핑만 하면 맑고 청아한 목소리의 진수를 실컷 음미할 수 있다.

 S.E.S.와 핑클은 폭발적 성량과 빼어난 음색을 자랑하는 리드 싱어를 보유하고 있었다. 어렵다고 느껴지는 소절, 예컨대 고음부분은 예외 없이 바다와 옥주현이 도맡아 처리했다. 소속팀의 발표곡 모두를 두 사람이 전부 소화했다고 말하여도 그리 사실에 어긋나는 주장은 아닐 듯싶다. 다른 팀원들은 코러스 수준으로 참여했을 뿐이다. 핑클과 S.E.S. 관련정보가 전혀 없는 대중가요 문외한들한테 노래를 들려준 다음, 옥주현이나 바다의 솔로음반이라고 설명해도 곧이곧대로 믿을 지경이다.

 비슷한 데뷔시기와 활동기간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복스는 S.E.S.와 핑클에게 유명세에서 크게 밀렸다. 2강 1약 체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가요계의 여성 댄스그룹 판도를 대략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베이비복스가 딸리는 건 대중의 사랑과 인기만은 아니었다. 노래의 난이도 또한 한 수 아래였다. 노래방에 가보면 안다. 일반인이 부르기에는 베이비복스의 노래가 훨씬 수월하다. 음정차이도 크지 않거니와 빠르고 단조로운 박자의 댄스곡들이 주류인 까닭에서다.


 중고 신인 간미연

 취입한 노래들 탓이었을까? 베이비복스는 리드 싱어가 필요하지 않았던 팀이다. 구성원의 미모는 고르게 상향 평준화되어 있었으나, 가창력을 기준으로 팀의 대표주자라고 자신 있게 손꼽을 만한 인물은 없었다. 다들 고만고만했다. 재미있는 역설은 베이비븍스가 의외로 라이브 공연을 자주 치렀다는 점이다. 명목상 메인 보컬을 담당했던 간미연 입장에서는 베이비복스의 이러한 구조적 특성이 무척이나 답답하고 짜증이 치솟았으리라. 아리따운 외모가 진정한 가수로 발돋움하는 데에 디딤돌 노릇을 하기는커녕 되레 걸림돌로 작용했을 터이므로.

 ‘도전! 1000곡’은 우수한 하드웨어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했던 간미연의 탁월한 소프트웨어를 새로이 본격적으로 발굴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진주더미 속에서 진주알갱이를 추가로 발견한 격이랄까. 간미연이 이 프로그램에 등장한 적은 과거에도 있었다. 당시는 베이비복스의 톱니바퀴 자격으로였다. 베이비복스 시절의 간미연에게는 노래실력을 제대로 과시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다섯 명이 돌아가면서 짧게 노래하는데 그럴 틈이 있겠는가? 수많은 시청자들 앞에서 간미연이라는 이름 석자를 당당히 뽐내며 1분이 넘는 장시간(?)에 걸쳐 혼자 마이크를 잡아본 건 올해가 처음이다.

 데뷔 8년 만에 온 가족이 시청하는 오락 프로를 통해 비로소 어엿한 단독 콘서트를 진행한다? 오랜 세월 밤무대를 전전해오다 늦깎이 스타로 뒤늦게 전성기를 맞이한 중년의 트로트가수 이야기가 아니다. 미소녀 아이돌스타 1세대로, 한류열풍의 개척자로 성가를 드높였던 댄스그룹 보컬리스트의 사연이다. 그 사이에 간미연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마친 후,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 솔로로 독립하려고 무려 8년을 와신상담한 간미연, 그녀가 행운아인지 비련의 여인인지는 첫 번째 솔로앨범에 대한 팬들의 반응이 판결해줄 것이다.


 박정아, 솔로도 겸업해요


 간미연은 8년을 숨죽이며 기다렸다. 이에 견주면 박정아는 확실히 운이 좋았다. 겨우 데뷔 5년 차에 이르러 솔로가수 대열에 합류했으니. 박정아는 오락 프로그램에 옹색하게 셋방살이해 솔로의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쥬얼리의 그늘을 벗어난 가수 박정으로서 이미 몇 차례 무대에 섰던 경험이 있다. 그것도 번듯한 가요전문 프로그램을 빌려서.

 박정아가 솔로가수로 반드시 갖춰야 할 자질과 기본기는 충분히 검증된 상태다. 게다가 그는 때론 진행자로, 때론 연기자로 체계적으로 얼굴을 알려왔다. 사전 홍보효과만큼은 두둑이 거둔 셈이다. 베이비복스의 기나긴 해체과정에서 비롯된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으로 말미암아 한동안 방송출연이 뜸할 수밖에 없었던 간미연과는 감히 비교가 되지 않게 착실하고 꾸준히 솔로의 길을 닦아왔다.

 간미연이 섬세하고 부드러운 발라드 가수로 대성하기로 작정했다면, 박정아는 강하고 선 굵은 락커로 도약하려는 뜻을 세웠다. 다수의 여가수들이 안일하게 채용하는 진부한 섹시컨셉을 거부한 결과다. 현명한 선택이라 하겠다. 진입장벽만 무사히 통과한다면 락음악은 트로트 못지 않게 장수할 수 있는 장르다. 쥬얼리가 깨지지 않은 상황에서 솔로활동을 병행하는 것 역시 돋보이는 대목이다. 팀이 조금 떴다 싶으면 드라마다 CF다 해서 제 잇속만 챙기는 풍조에 박정아는 단호히 ‘No’라고 외쳤다.


 김윤아의 짝퉁일까 후계자일까

 젊은 여성 스타들은 묘한 견제심리가 있다. 웬만해서는 경쟁자를 추켜올리지 않는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업자를 벤치마킹할 귀감이라고 선언하는 행동은 좀체 목격하기 힘든 광경이다. 박정아는 용감하게 이상형을 커밍아웃했다. 제2의 김윤아가 자리매김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자우림의 김윤아는 대중성과 음악성 양면에서 두루 성공한 당대 최고의 뮤지션이다. 미소녀그룹 출신의 인기스타가 제시하는 지향점으로서는 생뚱맞게 받아들여지기 쉽다.

 박정아는 쥬얼리와 떨어져 홀로 노래를 할 경우에는 자우림의 곡을 즐겨 불렀다. 솔로 데뷔를 준비하는 도중에 김윤아를 향해 공개적으로 SOS 구원신호를 칠 정도면 그가 평소에 얼마나 자우림을 흠모하고 동경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남자들 사회였다면 형님으로 모시겠다면서 허리를 90도로 숙였을 일이다. 사숙할 대상이 있음은 성장과 발전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시행착오를 최소화한다. 헛된 방황과 표류를 예방한다. 구체적 목표치는 선박의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신해철은 오빠부대 사령관에서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중문화인으로 탈바꿈한 바 있다. 왕년의 오빠부대의 우상이 성취한 업적을 현재의 누나부대 우두머리라고 이루지 말란 법은 없다. 박정아의 희망이 실현가망성 없는 백일몽은 아니다. 허나 꿈이 현실에 뿌리를 내리려면 끝없는 노력과 인내가 요구되기 마련이다. 잠시 반짝하는 솔로가수에서 팬들 곁에 오래도록 머무는 락 뮤지션으로 변신하자면 엄청난 땀방울을 흘려야 한다. 박정아의 결단에 단지 기쁨의 박수만 칠 수 없는 이유다. 박정아는 이왕 고생을 자청한 마당이다. 순간의 인기에 도취하지 말고, 부단히 자기를 연마하며 채찍질하는 참다운 락커가 돼주기를 바란다.

* 본문은 음악에너지 충전소 KTF dosirak.com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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