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보 및 독자의견
후원안내 정기구독 미디어워치샵

기타


배너

얻은 것도 없는데 떠안을 부담은 너무 크다

[국정아젠다 5차 토론회] 한미FTA 체결, 무엇이 문제인가


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 국제정치경제학 교수)=

세계화는 대세이다. 피할 수 없으니 마지못해 따라갈 것이 아니라 기왕이면 적극 주도해 가야한다. 여기서 ‘주도함’이란 세계화의 진행 형국을 가능한 한 우리 사정에 ‘맞추려함’을 의미한다. 우리가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되려함이다. 대단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FTA는 세계화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국가에게 매우 유용한 정책 수단이다. 상대와 시기 그리고 자유화 협정의 내용을 자국 사정에 맞추어 신축적으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DJ 정부 하에서 우리는 동아시아 지역주의를 ‘경유하는’ 세계화 전략을 택했다. 옳은 선택이었다. 첫째, 그것이 강대국들이 득실거리는 전 세계 무대에 비교적 약소국인 우리가 단기필마하는 것보다 안전하기 때문이다. 일단 동아시아의 지역주의를 상당 수준 발전시킨 후 그 통합된 동아시아의 주도국으로서 세계를 상대할 때 보다 당당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둘째, 개방과 자유화에 따른 국내 조정비용, 즉 (적어도 중단기적으로는) 불가피한 사회경제적 혼란은 당연히 세계보다는 지역 규모에서의 경제통합 과정에서 덜 발생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조정비용을 마련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과 재원이 필요하기도 하다.

결국 더 안전하고 덜 비용이 드는 세계화 전략으로서 동아시아 지역주의를 택한 것이었고,따라서 당시 우리의 FTA는 당연히 우선 동아시아 역내국을 향하여 점진적 단계적으로 추진되는 것이었다. 칠레와의 ‘연습게임’ 후 제일 첫 상대로 일본을 택한 것도, 그리고 그 일본과의 FTA 협상을 무려 5년에 걸친 준비와 연구 끝에 개시한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작년 2월 초 노무현 정부는 급작스레 미국과의 FTA 협상 개시를 선언했다. 일반국민은 물론 국회의원 그리고 심지어는 정부의 고위 관료들조차도 대부분 모르는 상태에서였다. 별 준비도 없이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의 경제통합협정이 시작된 것이다. DJ 정부 하에서 세계화 전략의 일환으로 채택된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발전을 위하여 일본을 상대로 조심스럽게 추진됐던 FTA 전략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한미 FTA를 통하여 어떠한 세계화를 달성하고자 하는지, 그것이 그간 추진해오던 동아시아 지역주의와는 어떠한 연관이 있는 지, 그리고 미국과의 경제통합으로 인해 발생할 막대한 국내 조정비용은 어떻게 감당할 지 등에 대해 별 설명도 없이 일은 그렇게 졸속적으로 진행됐다. 그리고 지난 4월 2일 불과 1년여만의 협상으로 그 중요한 협정이 타결됐다.

협상 타결 직후 미국과 우리 협상단 대표는 스스로들에게 각각 ‘A+’와 ‘수’라는 후한 점수를 주었다. 미국 대표단은 확실히 A+를 받을만했다. 양보한 건 거의 없이 가져간 건 엄청났다. 그들은 정말 잘했다. 그러나 우리 측이 수라는 데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얻은 건 별로 없고 내준 건 너무 많았다. 준비 없이 덤벼든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한미 FTA 추진을 정당화하며 애초 정부가 내세운 명분이 몇 가지 있었다. 중국이 바싹 추격하고 있는 우리 제조업의 경쟁력에는 한계가 있고 이제 지식기반서비스산업을 키워 그것으로 신성장동력을 삼아야하는바 그를 위해서는 서비스산업 경쟁력 세계 최고인 미국과의 FTA 체결이 필요하다는 것이 첫째였다. 따라서 미국의 선진 서비스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적합한 영역에서 적절한 개방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그 논리 자체도 설득력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협상 결과는 더욱 우스꽝스러웠다. 서비스 시장의 개방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미국의 관세를 철폐할 것임은 물론 반덤핑 제도의 개선과 ‘얀 포워드’와 같은 섬유산업 등의 비관세장벽 제거를 통해 수출 증대 효과를 확보하겠다는 주장 또한 자주 등장하였다. 그 외에 서비스 및 투자 분야에서 최혜국대우를 받음으로써 거대 통합시장인 NAFTA에의 접근 용이성을 갖겠다는 것, 전문직 취업비자 쿼터를 상당량 얻겠다는 것, 해운 강국으로의 도약을 위해 미국 해운시장을 개방하도록 하겠다는 것, 그리고 개성공단제품의 원산지 인정을 받겠다는 것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이 중 어느 것 하나 확실하게 얻어낸 것은 없다.

더 큰 걱정은 얻은 게 별로 없다는 것보다 앞으로 떠안게 될 부담이 만만치 않게 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주로 제도 변경과 관련되어서이다. 우리의 공공정책이 자신의 투자 이익을 해친다고 여길 경우 미국인 민간 투자자가 우리 정부를 해외 소재 중재기구에 제소할 수 있게 하는 투자자-국가 제소제는 우리 국민의 경제주권이나 정부의 정책 자율성을 해칠 가능성이 상당하다.

한번 개방하면 어떤 부작용이 있어도 (적어도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다시 되돌리지 못하게 하는 역진방지제도(ratchet system) 또한 위협적이다. 사정 변경에 따른 정책 시정을 불가능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약값 결정 과정에 미국 제약회사들이 관여할 수 있도록 한 재심위원회 제도, 미국에 유리하게 개악된 (친환경적이었던) 우리의 배기량 기준 자동차 세제, 비위반제소를 가능케 한 지적재산권 정책, 미국 세관 당국이 우리 섬유수출기업을 조사할 수 있는 현장동의제 등 한미 FTA의 체결로 이 땅에 들어설 새로운 제도, 정책, 규범 등은 실로 무수하다. 우리가 고쳐야할 법만 해도 100여개에 이른다고 하지 않는가.


주의해서 볼 것은 이 낯선 제도들이 하나같이 미국 자본의 우리 경제 침투를 용이케 해주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미국 투자자나 기업이 우리 땅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즉 마치 자국에 있는 듯한 조건과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것이 본래 미국 정부의 의도였다. 부시정부의 미국은 FTA를 자국의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전 세계에 확산하겠다는 경제외교 목표의 핵심 정책수단으로 삼아왔다.

다른 국가들의 정책과 제도 및 관행들을 미국적인 것들과 수렴케 하고 양립 가능케 하는 것이, 즉 각국 ‘경제체제의 미국화’가 바로 미국의 세계화 전략인바, FTA는 그러한 목표를 달성키 위한 가장 유용한 정책수단으로 채택돼왔던 것이다. 이 맥락에서 본다면, 한미 FTA로 우리의 정책과 제도들이 미국 투자자나 기업에게 편하고 자유롭게 되는 것, 즉 미국자본 친화적인 것으로 바뀌어가는 것은 미국의 외교 목표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의 목표가 달성되는 것이 우리에게도 동시에 이득이 되는 것이라면, 즉 우리 경제의 미국화가 우리 국민들의 대다수가 바라는 것이라면, 한미 FTA 체결은 서로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양극화나 사회격차를 당연시하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체제로의 이행이 과연 대다수 우리 국민들이 즐거워할 일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전에 그러한 문제에 대한 범사회적 토론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한미 FTA 자체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이후 사회적 합의에 의해 추진된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엄청난 일을 먼저 벌려놓고 문제는 뒤에 수습해야하는 상황에 와있는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제라도 겸허하게 국민의 일반의사를 물어야 되지 않을까싶다.

※ 본고는 필자의 경향신문 기고문(2007/4/5)을 대폭 수정․확장한 것임을 밝힌다.


/한림국제대학원대 국제정치경제학 교수


제5차 토론 <한미FTA 체결, 무엇이 문제인가> 발제 목록



[주발제] 한미FTA의 평가와 향후 과제
*한국, 경제통상 선진국 가는 고속도로 탔다
*한미FTA, 양국 이익균형 이뤄진 성공적 협상
*피해산업, 되레 미국시장 공략하게 지원하라
*제2 경제도약 발판...타결보다 활용이 더 중요

[공동발제]
*피해 최소화할 실질적 보완대책 내놓겠다
*얻은 것도 없는데 떠안을 부담은 너무 크다
*각종 법규 개정-산업전환 지원 등 서둘러야
*좀 더 장돌뱅이가 돼야 한다
*이제 시작 - 후속 · 보완 대책이 진짜 핵심




배너

배너

배너

미디어워치 일시후원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현대사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