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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전 총장은 정치참여를 놓고 정말로 고심을 거듭했다"

정운찬(鄭雲燦) 전 서울대 총장의 한 지인이 30일 대선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이 끝난 후 기자에게 한 말이다. 정 전 총장이 정치적 승산만을 놓고 계산기를 두드린 게 아니라 진정으로 정치참여에 대한 실존적 고민을 해왔다는 얘기다.

정 전 총장이 정치권에서 거론된 것은 오래된 일이지만 구체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열린우리당이 2.14 전당대회를 앞둔 지난해 1월부터. 당의장 선거에 나온 김근태(金槿泰) 전 의장이 `범민주세력 대통합론'을 내세우면서 정 전 총장을 영입해 5.31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이끌어내겠다고 공언했던 것.

그러나 당시 정동영(鄭東泳) 후보가 의장에 당선된 이후 당이 지방선거 체제로 재편되면서 정 전 총장의 존재는 이내 묻혔다. 하지만 우리당이 5.31 지방선거와 10.25 재보선에서 잇따라 참패하고 당 해체론이 부상하면서 정 전 총장이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정 전 총장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며 정치권의 요구에 초연한 태도를 보였으나 12월 중순을 지나면서 기류변화가 생겼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직은 내게 너무 벅차보인다"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정치를 안한다고 단언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그러던 정 전 총장에게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된 계기는 자신의 고향인 충남 공주 연말향우회에서다. 그는 "충청인이 나라 가운데서 중심을 잡아왔다. 공주를 위해 제 모든 것을 바치겠다"(2006.12.26)며 `정치 출사표'와 같은 언사를 쏟아냈다.

물론 당시에도 정 전 총장은 "후보로 나설 생각이 없다"며 여전히 정치권 밖의 사람임을 강조했고, 열린우리당을 포함한 범여권과도 확실한 거리를 두려는 인상이 뚜렷했다. 그는 "여당서 거론되는 게 더 싫다"(2007.1.3)고 했고, 범여권에서 추진중이던 오픈 프라이머리(국민참여경선제)에 대해서도 "나를 불쏘시개로 이용하려 한다"(1.4)며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1월16일 고 건(高 建) 전 총리가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한 이후 정 전 총장에 대한 여권의 러브콜은 더했지만 그는 "저와 정치적으로 상관 없는 일이다"(1.17), "준비된 게 없다"(2.2)며 정치권에 마음을 열지 않았다.

대신 정 전 총장은 2월말 들어 `특강정치' 행보에 착수했다. 충남 공주대를 시작으로 전국 순회 강연을 통해 현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해 나갔다. 정치참여에 대한 고민이 본격화했음을 시사하는 언급들도 속출했다. "차기 대통령 후보는 기초가 튼튼하고 겸손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알고 탐욕스럽지 않고 이해집단과 밀착돼 있지 않은 인물이어야 한다"(2.23),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있다"(2.25), "여러 가능성을 놓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3.4).

참여정부의 경제 및 부동산정책, 3불정책,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등 현안에 대한 견해를 공개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그러나 분열된 범여권을 위해 통합의 전도사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정치권과 달리 정 전 총장의 시간표는 길기만 했다.

그는 신학기가 시작된 후 "이번 학기는 마칠 것"(3.7)이라고 언급해 일각의 조기결단설을 일축했고, 통합신당모임 김한길 의원과의 만남에서 상당한 교감이 오갔다고 알려진 것에 대해 "부적절하다"(3.11)고 못을 박았다.

그러나 3월 중순을 넘어가면서 그의 발언은 한층 정치 쪽에 다가섰고, 정치권에서는 정치참여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대학 총장도 정치를 잘 할 수 있다"(3.16),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밀리지 않을 것"(3.19), "나라면 (정치) 현장과 학교를 비교할 때 학교에 있는 사람을 고르고 싶다"(3.29)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또 "마음만 먹으면 학기중이라도 결단할 수 있다"(3.23)며 조기 결단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정 전 총장은 4월이 지나면서 정치인들과의 접촉을 꺼렸던 종전 태도를 바꿔 "앞으로 적극적으로 정치인을 만나겠다"(4.10)며 본격적인 저울질에 들어갔다.

또 "(정치참여를 선언하더라도) 기존 정당에는 가지 않겠다. 주도적으로 하겠다"(4.17)고 말해 이미 정치참여를 결심하고 독자창당 작업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낳았다.

실제로 정 전 총장은 이 무렵 우리당 정대철 상임고문,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을 비롯해 정치권 인사들과의 다양한 접촉에 나서서 이런 관측에 힘을 실었지만 정치인들과의 만남이 왕성하게 이뤄지던 4월 중순을 넘으면서 이상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그는 4월18일 부산대 특강을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지금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상황의 논리, 상황변화에 끌려가는 것이다", "대선 과정에서 비리가 나오면 누군가 고통을 받을 수 있는데 그게 내 발목을 잡는다"며 부정적 인식의 일단을 드러냈다.

그는 24일 춘천 한림대 강연에서는 "정치참여를 한다면 강의가 끝나는 5월말~6월초 이후에 선언하고, 안할 가능성도 많지만 그 이전에 얘기할 것 같다"고 구체적 시간표까지 제시했다.

그는 또 "3월까지는 혼자 생각했고 4월 들어서는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뵙고 자문을 구하고 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듣기에 따라 결단이 임박했음을 시사하는 발언도 했다.

특히 4.25 재보선이 끝난 직후인 26일에는 대전서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심대평 국민중심당 대표에 대해 "못만날 이유가 없다"고 말해 `충청권 정-심 연대론'까지 거론될 정도였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미 정 전 총장이 일주일 전쯤부터 불출마 쪽으로 결심을 굳히고 있었던 것 같다는 뒤늦은 해석을 내놓고 있다.

우리당 핵심 관계자는 "정 전 총장이 며칠 전부터 출마 대 불출마 가능성이 49대 51라는 얘기를 했고 지난 21일에는 김종인 의원과 제자그룹이 결단을 촉구했음에도 불구, 끝내 `출마하겠다'는 얘기를 못들었다"며 "이때부터 우리당은 정 전 총장의 낙마에 따른 시나리오를 실무적으로 준비해왔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jbry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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