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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김근태(金槿泰) 정동영(鄭東泳) 전 의장, 우리당을 탈당한 천정배(千正培) 의원 간에 상호 비방전이 격해지면서 이들의 얽히고 설킨 애증의 정치행보가 새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들은 지역주의 극복과 정치개혁을 내걸고 열린우리당 창당의 깃발을 함께 들었지만 참여정부 임기 내내 끊임없는 신경전과 갈등을 반복하다 대선을 7개월 앞두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별의 수순을 밟고 있는 중이다.

노 대통령과 김 전 의장은 민주화 운동의 동지에서 출발, 정치적 경쟁자로 감정의 앙금을 쌓아오다 이제는 사실상 등을 돌렸다.

재야운동권 출신인 김 전 의장과 `5공 청문회' 스타 출신인 노 대통령은 민주화 운동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외견상 동지적 관계를 형성했다. 두 사람은 국민회의 시절 "우리에게 분열은 없다"고 공언하며 선의의 경쟁을 벌였고 2000년 대학 주최 토론회에 나란히 참석, 서로를 `강단 있는 정치인', `민주화 지도자'로 치켜세울 정도로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두 사람간 갈등의 단초는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비롯됐다. 당시 두 사람은 나란히 경선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노 대통령은 '개혁 후보 단일화'를 내세우며 여론 지지도에서 비교열위에 있는 김 전 의장에게 후보 사퇴를 종용, 감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김 전 의장은 결국 경선 도중 정치자금 수수사실을 고백하고 중도사퇴하고 말았지만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노 대통령을 지원하는 데는 한동안 주저했고 우리당 창당 때도 뒤늦게 '승선'했다.

참여정부 출범후 김 전 의장은 통일부 장관 입각을 원했지만 결국 정 전 의장에게 밀려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되자 다시 노 대통령과 갈등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김 전 의장은 분양 원가공개 정책을 둘러싸고 "계급장을 떼고 논쟁하자"고 노 대통령을 치받기도 했다.

그는 또 논문표절 논란에 휘말린 김병준 교육부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는가 하면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의 법무장관 기용 방침에도 반발했고 노 대통령은 이에 대해 "지금은 권력 투쟁의 상황"이라며 김 의장을 정면비판했다. 노 대통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에 김 전 의장은 "FTA를 하려거든 나를 밟고 가라"고 맞서기도 했다.

김 전 의장에 비해 정 전 의장은 노 대통령과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밀월관계를 유지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98년 7월 종로 재.보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초선의원인 정 전 의장은 부산에서 낙선한 뒤 종로에 출마한 노 대통령 지원유세에 적극 나섰던 것.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기점으로 업그레이드된다. 당시 노 대통령이 지역순회 경선에서 선두를 질주, 경선후보들이 잇따라 사퇴하면서 경선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으나 정 전 의장은 `경선 지킴이' 역할을 자임하며 경선을 완주했고 이어 선대위원장과 국민참여운동본부장을 맡아 대선승리의 일등 공신이 됐다.

정 전 의장은 참여정부 출범후 우리당 창당과 17대 총선 완승을 거치면서 '참여정부의 2인자'로 부상했고 노 대통령은 그를 통일부 장관에 임명, 격에 맞는 대접을 했다.

그러나 지난해 당 의장에 복귀한 그가 참여정부 실정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탈(脫) 노무현'을 시도하면서 둘 사이는 틀어지기 시작했다. 정 전 의장은 노 대통령의 사립학교법 재개정 요구에 반발했고 7월 서울 성북을 재보선 출마 요구도 뿌리쳤다.

청와대는 "정동영이 호남이란 지역에 안주한다"고 비판을 가했고 정 전 의장은 결국 지난달 27일 노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에서 사실상 '정치적 결별'을 고하기에 이른다.

천정배 의원은 김근태, 정동영 전 의장에 비해 먼저 노 대통령 편에 섰다가 결별도 먼저 한 케이스.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현역의원으로서 유일하게 노 대통령 편에 섰던 천 의원은 대선 승리 후 신당창당과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노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가 됐다.

천 의원은 17대 총선 직후 원내대표를 맡으면서 노 대통령의 개혁기치를 받들어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개혁입법을 추진했고 대통령은 그런 그를 2005년 6월 법무부 장관으로 기용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균열 조짐은 이미 2003년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이 정국을 강타했던 2003년 10월 천 의원은 "정보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핵심인물을 경질해야 한다"며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던 이광재 의원의 퇴진을 요구, 친노파와의 '거리 두기'를 시도했던 것.

천 의원은 입각 1년여만인 지난해 7월 당에 복귀하자 우리당은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며 당의 재건을 주장했고 친노파들이 당 사수를 강하게 주장하자 일찌감치 1월 28일 탈당을 결행, 노 대통령과의 관계에 마침표를 찍었다.



(서울=연합뉴스) jamin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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