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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 "94년 6월 미, 북과 전쟁 일촉즉발 직전 협상"

"미군 2만~4만명 증파계획 보고중 카터로부터 전화받아"



지난 1994년 6월 1차 북핵 위기시 미국이 북한을 침공하기 직전에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주선으로 북미협상이 성사됐다고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이 5일 밝혔다.

페리 전 장관은 이날 미 외교협회(CFR)가 마련한 특강에서 "지난 1994년 6월 우리(미국)는 북한과 전쟁을 벌이는데 아주 아주 근접했었다"면서 "내가 백악관회의실에서 대통령에게 추가로 미군을 (한반도에) 2만~4만명을 파견하는 계획을 보고하고 있을 때 북한 김일성이 계획했던 재처리를 포기하고 협상을 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페리 전 장관은 당시 전면동원령이 내려지지는 않았지만 자신은 북한과의 전쟁에 대비해 군대를 동원하고 있었고 이미 수천명의 미군을 (한반도 인근으로) 보냈던 상황이라고 밝혔다.

지난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 미국이 북한의 영변 핵시설을 공습할 계획을 세웠다는 내용은 이미 알려졌지만 미국이 이처럼 수 천명의 병력을 파병하고 최대 4만명의 미군을 추가 파병할 계획까지 마련했을 정도로 사태가 급박했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페리 전 장관은 "우리는 (당시) 북한에게 6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제공할 수 있는 핵원자로부터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것에 대해 `금지선'을 제시했었다"면서 "북한에게 금지선을 제시하는 것은 (북한과 군사적 대결을 각오해야 하는) 매우 실질적인 위험이었지만 북한이 6개의 핵무기를 갖도록 허용하는 것이 훨씬 더 위험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페리 전 장관은 카터 전 대통령이 전화를 했을 때 국가안보회의(NSC) 멤버들이 모두 모여 있어서 곧바로 카터 전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즉각 협의를 가졌으며 우리는 김일성이 핵시설을 동결하지 않으면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북핵 6자회담을 시작할 때 자신은 부시 행정부에 협상을 시작하기 전에 북한으로 하여금 핵시설을 동결토록 할 것을 권고했지만 그들은 그 권고를 따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워싱턴=연합뉴스) bing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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