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최근 후보단일화를 촉구한 백낙청, 한승헌, 함세웅, 황석영 등 이른바 재야 원로들의 행태를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한국일보의 칼럼 <국민들은 노망이 들었는가>라는 칼럼을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A: "가치의 밑받침이 없는 정치공학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과거 회귀세력과의 가치 차이가 명백한 상황에서, 정교하고 효율적인 정치공학을 통해 최대한의 세력 연합을 달성하는 것이 민주개혁 세력이 역사 앞에 책임져야 할 임무이다."
B: "백낙청, 함세웅, 고은, 한승헌, 황석영 같은 쟁쟁한 이름들이 어쩌다 이런 비교육적인 발언을 대놓고 하게 됐는지 잘 이해가 안 간다. 범여권의 진정한 문제는 이들이 지적한 '패배주의'가 아니라 진짜 문제가 뭔지 진짜 모르는 맹목이다."
A는 재야원로들의 후보단일화 명분이었고, B는 이들의 주장을 비판한 한국일보 이광일 논설위원의 칼럼이었다. 강교수는 “노정권과 범여권 세력은 아직도 자신들이 왜 민심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는지 그걸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오히려 "국민이 노망 든 게 아닌가" "국민들이 집단최면에 걸린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범여권은 바로 그런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정치공학'을 위해 발버둥쳐 왔다”고 노정권의 실정을 지적한 뒤, “급기야 당대의 양심과 지성을 대표하는 원로들까지 그런 발버둥에 동참해 범여권이 '정치공학 쇼'를 화끈하게 벌여줄 것을 요구하고 나서게 되었다. 비극이다. 그게 답이 아니라는 걸 정녕 모르는 걸까? 이건 정치나 권력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인의 정신세계와 습속의 문제다”라며, 재야 원로들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재야 원로들의 성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가치의 밑받침'이다. 바로 이게 노정권을 병들게 하고 재야 원로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든 함정이다. '가치의 밑받침'이 있는 한 정당화되는 건 비단 '정치공학' 뿐만이 아니다. '편 가르기' '승자 독식주의' '증오의 정치' 등도 정당화된다”라는 게 바로 강준만 교수의 근본적인 시각이다.
그는 또 “'가치의 밑받침'을 절대시하는 한 '내부 비판'이 설 땅은 없다. 적(敵)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내부 비판'은 심지어 이적행위로 매도된다. 어느 재야 원로는 '내부 비판'에 대해 "정부를 비판하고 하는 것이 요즈음 지식인에게는 참 남는 장사"라고 비아냥대기까지 했다”했다며, 최근 백낙청 교수의 발언을 문제삼았다.
강교수가 이러한 재야원로들의 정치적 행보에 비판적인 이유는, 그들이 노무현 정권 내내 정권의 실정에 침묵했기 때문이다.
“노정권은 한나라당과의 차이가 없다며 '대연정'을 제안했던 정권이다. 이번에 성명을 발표한 재야 원로들이 거리로 뛰쳐나왔어야 마땅한 일이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시 대연정을 공격적으로 옹호하던 친노 인사들은 대연정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분열이라는 질병의 한 증상'이라는 욕설까지 퍼부었다. 노 정권을 옹호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공세를 폈을 때 재야 원로들은 무엇을 했던가?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지지했던 이들이 지금은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떠드는 데에 앞장서고 있다. 재야 원로들은 이들과 연대하여 '한나라당 집권 망국론'을 펴는 셈인데, '가치의 밑받침' 이전에 더욱 근본적인 정신상태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지 궁금하다“
강교수의 이러한 재야원로 비판은 대선 이후 벌어질 진보진영의 대선 패배 책임 논쟁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재야원로는 진보진영에서 비판이 금기시되어있는 성역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강교수는 다음과 같이 재야 원로들에 일갈하며 칼럼을 마무리지었다.
“재야 원로들이 노정권을 비판하는 긴급 성명을 발표했어야 마땅했던 일들은 노정권 하에서 여러 차례 있었다. 민생(民生)의 고통을 외면하고 정적(政敵)만을 상대로 정치를 한 노정권의 자폐적 일탈을 무섭게 질타했어야 했다.
그러나 재야 원로들은 침묵하거나 오히려 일탈을 거들었다. 이제 그런 '잔치'가 끝나 가는 시점에서 '잔치'를 또 한번 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으니, 과연 누가 공감할 수 있겠는가?
재야 원로들은 무엇보다도 '거리 두기'에 실패했다. '가치의 밑받침'을 공유하면 '한 몸'이 되어 치정적인 편들기를 하는 정신세계와 습속이 문제였다. 이걸 깨달아야 대선 이후의 해법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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