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 2008년 8월16일 밤 11시30분. 중국 베이징 시내 북부에 자리 잡은 궈자티위창(國家體育場) 100m 육상 트랙에 세계 65억 인구의 이목이 쏠린다.
지구에서 가장 빠른 '인간 탄환'을 가리기 위한 총알 탄 사나이들의 각축이 곧 시작된다.
예선 기록에 따라 1~8레인에 순서대로 자리를 튼 8명의 건각은 왼 무릎을 세우고 오른쪽 무릎을 굽혀 앉아 크라우칭 스타트 자세를 준비한다. 스타트 반응 속도에 따라 기록과 메달 색깔이 갈리는 만큼 모든 신경을 양 손가락과 대지를 힘차게 박차고 나갈 양 다리에 집중시킨다.
9초74로 남자 100m 세계기록을 보유한 아사파 파월(26.자메이카)은 4레인에서 총성을 기다린다. 그의 왼쪽 3레인에서는 영원한 라이벌 타이슨 가이(26.미국)가 결승선을 응시하고 있다.
어떻게 먼저 치고 갈까, 늦었다면 야생마 같은 폭발적인 스퍼트로 과연 따라 잡을 수 있을까, 둘 만의 수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된다.
10초 후 결정될 단상의 주인공을 향해 수년 간 갈고 닦아온 무공을 이날 밤 궈자티위창 트랙에 모두 쏟아붓겠다, '새 둥지'(Bird's nest)로 명명된 이 곳에서 가장 빠른 새가 되겠다는 필생의 각오와 함께.
베이징올림픽 남자 육상 100m는 우열을 가리기 힘든 세계적인 스프린터 파월과 가이의 대결로 요약된다. 앞으로 100일 남은 기간 다치지 않고 컨디션을 계획대로 끌어 올린다면 이들은 베이징올림픽 최고 명승부를 연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 기록 보유자이면서 '무관의 제왕'이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붙어 다니는 파월. 지난해 8월 오사카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사상 네 번째로 트레블(3관왕)의 전설을 쓰고 파월의 벽을 넘어선 가이.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명예를 향해 자존심을 건 숨가쁜 레이스가 펼쳐진다.
지난해 9월9일 이탈리아 리에티에서 열린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그랑프리 대회에서 9.74로 세계기록을 새로 쓴 파월은 자타공인 우승 0순위 후보다.
그는 100m를 9초대로 33차례나 주파한 선수다. 그보다 많이 9초대를 달린 선수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모리스 그린(미국.52회) 밖에 없다.
그러나 9.80 밑으로 두 차례나 공인 기록을 쓰고 한 시즌에 9초대를 12차례나 뛴 선수는 파월 뿐이다. 그는 지난해 세계 기록을 세우기 전 2006년 6월과 8월 두 차례나 9.77을 찍어 당시 저스틴 게이틀린(미국)이 갖고 있던 세계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뛰면 9초대를 찍는 현역 최고 단거리 선수이나 큰 경기에 약하다는 오명은 좀처럼 떼지 못했다.
2003년 파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부정출발로 굴욕을 당했고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는 5위에 머물렀다. 2005년 헬싱키 세계대회에서는 출전도 하지 못했고 지난해 오사카 세계대회에서는 3위에 그쳤다.
기록 보유자답지 않게 큰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세계 대회에서는 타이틀이 없다. 절치부심 칼을 갈아온 그에게 이번 올림픽은 꿈을 이룰 수 있는 마지막 무대이기도 하다.
가이는 그린-게이틀린(2004 아테네 올림픽)의 뒤를 이어 이 종목에서 미국의 3연패를 이끌 기대주다.
개인 최고기록은 200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세운 9.84로 파월보다 10분의 1초 느리지만 큰 경기에서 파월을 꺾었다는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가이는 5전 전패로 파월에 밀리다 지난해 오사카에서 한번에 뒤집었다. 당시 가이가 9.85, 파월은 막판 체력 저하로 9.96을 찍었다.
100m에 주력하는 파월과 달리 가이는 200m, 400m 계주에도 출전하는 등 만능 선수다. 그는 오사카 세계대회에서 100m에 이어 200m(19초76), 400m 계주(37.78)에서도 우승, 대회 사상 네 번째 3관왕이 됐다.
심심하면 기록을 갈아치운 파월에 수상 경력에서는 열세지만 가이는 육상 강국 미국의 노하우를 전수 받고 계보를 잇는 주자라는 점에서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동갑내기 파월에 가렸으나 지난해부터 기록을 쏟아내며 어느덧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치까지 오른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키 190㎝에 몸무게 88㎏으로 체형이 큰 파월은 거구답지 않게 스타트가 훌륭하고 가속력을 이용한 스퍼트도 폭발적이다. 반면 가이는 180㎝에 75㎏으로 파월보다 왜소하나 깃털처럼 가벼워 속도전에서 결코 밀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둘은 27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열리고 있는 114회 펜 경주대회 남자 400m 계주에서 각각 미국팀과 월드팀 일원으로 출전, 시즌 첫 대결을 벌일 예정이었으나 파월이 가슴 근육 부상을 이유로 기권하면서 무산됐다.
파월은 최근 웨이트트레이닝을 무리하게 하다 근육 통증을 호소하며 기권하는 대회가 많았다. 반면 가이는 이달부터 계주 대회에 참가, 6월29~30일 예정된 미국 대표팀 선발전에 맞춰 컨디션을 끌어 올리고 있다.
칼 루이스(미국)-벤 존슨(캐나다) 대결 이후 가장 흥미진진한 레이스로 기록될 이번 인간 탄환 대결에서 누가 웃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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