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 `물가상승 주범'서 `물가안전판'으로
(브뤼셀=연합뉴스) 이상인 특파원 = 유럽연합(EU)이 내달 2일 유럽통화동맹(EMU)을 출범시킨 지 10주년을 맞는다.
10년 전인 1998년 5월 2일 EU는 브뤼셀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11개 국으로 EMU를 출범시키기로 하고 참가국들은 1999년 1월1일부터 단일통화인 유로화를 도입키로 했다.
EMU는 유럽의 11개 선진국들이 통화주권을 포기하고 통화통합을 이룬 최초의 시도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EMU 창설 11개 국은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오스트리아,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아일랜드, 핀란드 등이다.
하지만 통화통합의 10년 역사에 순탄한 과정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때 경제난이 장기화되면서 독일과 이탈리아 등에선 EMU에서 탈퇴해 독일 마르크나 이탈이아 리라 시절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대두되곤 했다.
유로화가 물가상승의 주범이란 인식이 확산되던 시절도 있었다. 서민들은 유로화 도입으로 정부 발표와 달리 생활물가가 엄청나게 올랐으며, 경제가 더 어려워졌다고 탓하곤 했다.
EU 여론조사기구인 유로바로미터에 따르면 유로화에 대한 지지율이 지난 2002년 59%에서 2006년 48%로 떨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지지도 추이야말로 당시 유로화에 대한 유럽 시민들의 정서를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EU 통계국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지난 10년 사이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 국가들의 물가는 유럽중앙은행(ECB)의 억제선인 2% 안팎의 역사적 저점에 대부분 머물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최근들어 배럴당 120 달러에 육박하는 기록적인 고유가와 식료품가 앙등으로 유로존의 물가 역시 지난 3월 3.5%로 뛰어올랐지만 과거 유가앙등 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과거 1970년대와 1980년초 석유위기 시절 유럽 국가들의 물가는 두자리 수로 뛰어올랐다.
반면 최근 유가가 배럴당 120 달러에 육박하면서 2003년에 비해 5배 가량 올랐지만 유로존의 기름값과 물가는 유로화 강세로 인해 상대적으로 크게 둔화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주 유로당 1.6 달러를 사상 처음 돌파하는 등 기록적인 강세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유로화가 물가상승을 억제하는 안전판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EU 경제.통화담당 집행위원실의 아멜리아 토레스 대변인은 "유로화가 없었다면 기름을 사는데 훨씬 많은 돈을 지불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로존의 금리도 EMU 출범ㅠ 이후 대부분의 기간에 2-4%로 역사적으로 가장 낮은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역시 과거 그리스나 이탈리아 등지에서 모기지 금리가 20%를 넘었던 것과 비교할때 EMU 출범 이후 참가국들의 금리가 하향 안정 쪽으로 평준화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호아킨 알무니아 EU 경제.통화담당 집행위원은 "EMU가 안정적인 저 물가의 10년을 낳았고 금리도 수십년 간 볼 수 없었던 낮은 수준으로 점차 안정되고 있다"며 EMU 출범10년의 성과를 평했다.
물론 EMU 출범에 따른 이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때 유로화가 물가상승의 주범으로 인식됐듯이 EMU 가입으로 물가만 오르고 경제성장은 지지부진해졌다고 탓했던 시절이 분명히 존재했다. 때문에 경제부진을 유로화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앞으로 또다시 도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유로존의 경제통합이 기대했던 것만큼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유로존 회원국 사이 소비자물가의 격차가 여전하고, 국경을 넘어 물건을 주문하는 유로존 시민들도 생각만큼 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진 유로화 도입으로 인한 이득이 피해 보다는 훨씬 많다는, 그래서 유로존 가입국들이 11개 국에서 15개 국으로 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유로존엔 그리스가 2001년 가입했고 이어 슬로베니아가 2007년, 몰타와 키프로스가 금년에 각각 가세했다. 내년엔 슬로바키아가 16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할 것으로 EU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sangin@yna.co.kr
(끝)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