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을 비판할 자유는 있지만 CNN을 볼 자유는 없다"
(홍콩=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티베트 유혈사태와 성화봉송 시위 과정에서 중국과 중국인들의 서방 언론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서울 성화봉송 당시 중국 유학생의 폭력 시위를 놓고서도 중국은 서슴지 않고 한국언론이 편파적이라고 몰아간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당시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던 중국의 대학생들이 서방 언론의 보도에 의지하면서 외신에 무한한 신뢰를 보냈던 당시와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미국 ABC방송이 1981년 베이징에 처음으로 지국을 설치한 이래 CNN, BBC, AP, AFP, 로이터 등 외신들은 획일적인 보도에 익숙한 중국 관영 언론과는 다른 시각으로 저변을 넓혀왔다.
하지만 올림픽 개최로 국가적 자긍심이 드높아진 중국인들 사이에 티베트 문제와 성화봉송 시위 과정에서 중국의 국가적 입장에 반하는 보도를 내놓는 외신들을 일제히 성토하고 나섰다.
톈안먼사태 당시와 달리 중국 외교부가 나서 외신 보도를 반박하면 중국인들은 환호를 보낸다.
반(反) 외신 분위기는 중국의 인터넷 사이트와 언론들로 하여금 서방 언론들이 보도 과정에서 저지른 '팩트상의 실수'를 찾아내는 붐을 일으키고 있다.
CNN은 티베트 시위대의 모습을 잘라내고 중국 군용트럭에 포커스를 맞춘 사진을 내보내 '왜곡'이라는 지적을 받았고 BBC와 워싱턴포스트는 네팔에서의 티베트 시위대 진압 사진을 라싸 시위 및 진압 장면이라고 소개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중국 주재 외신기자협회는 1일 성명을 통해 "해외 언론에 대한 비난과 보복 움직임을 계속 방치할 경우 외신 기자들의 반감을 초래해 베이징올림픽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중국 청년들이 언론 통제와 인터넷 감시로 인해 티베트 문제의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들의 반서방 반외신 주장을 무지로 인한 격정이라고 몰아가는 것은 다소 단편적인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통제된 속에서도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확산과 티베트 보도통제의 완화로 중국인들도 이번 사태의 진행상황을 비교적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국익에 대한 근본적인 입장차와 더불어 철저한 '애국 교육', 과열된 민족주의가 더해져 반외신 분위기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의 서방 언론매체에 대한 반발은 중국과 서방의 상이한 언론문화에서 출발, 티베트 문제에 대한 서방의 '편향적 왜곡 보도'에 대한 중국인들의 좌절감에서 시작됐다는 게 언론학자들의 분석이다.
홍콩 언론에 따르면 짐 로리 홍콩대 신문학과 교수는 CNN, 폭스, MSNBC 등 미국의 방송채널은 논쟁을 통해 시청자를 늘리는 것에 익숙하다면서 "중국 당국은 서방의 언론체계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인들은 중국을 비하한 잭 캐퍼티 CNN 뉴스진행자의 의도가 논쟁을 일으키는 것이라는 점을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쉬 프리드맨 미 컬럼비아대 저널리즘학원 교수도 서방 언론매체가 본래 중국에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다는 주장을 부인하면서 "이는 서방 기자들이 중국에 개인적 반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사실 그렇진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서방 기자들은 전통적으로 약자에 동정적인 편"이라면서 중국측의 서방언론에 대한 불만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분쟁 보도에서 서방 언론이 편견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는 이스라엘측 주장과 유사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방 언론들은 뭔가가 비밀리에 이뤄졌다고 판단할 경우 강력한 반발심리를 느끼기 마련"이라며 "중국 당국은 모든 외신기자들을 티베트에서 내보냄으로써 외신들의 보다 공격적인 편집과 보도를 야기시켰다"고 지적했다.
프리드맨 교수는 현재 중국 언론과 중국인들의 과열된 민족주의 감정이나 외국 혐오증이 반외신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서방 외신들의 보도에 중국에 대한 적의나 편파적 태도가 엿보인다는 의견도 있다.
미 컬럼비아대 티베트학프로그램의 로비 바넷 교수는 "티베트 문제에 대한 일부 서방 보도에선 확실히 편향된 경향이 보여진다"며 "이는 중국을 잘 모르는 서구인들이 티베트나 중국의 부정적 정책들이 공산당 일당독재 치하의 전체주의의 산물이라고 '상상'하는 것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바넷 교수는 그러나 "중국 정부는 중국인이 구타당하거나 살해당한 라싸 소요사태에만 근거해 티베트 문제에 대한 반발을 부추겼지만 국제사회는 중국과 티베트 양측을 모두 지켜보면서 중국인이 공격받지 않은 수많은 다른 시위 소식도 듣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현재 티베트 망명정부를 '달라이 집단'으로 부르며 이들이 지난달 14일 라싸 시위를 배후 조종했으며 해외에서 올림픽 성화봉송 저지시위와도 연계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라싸 시위 당시 티베트인 18명과 경찰 1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하지만 티베트 망명정부는 사망자 총수를 203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외신 기자의 현장 접근을 차단하고 있는 탓에 런던의 자유티베트운동을 비롯한 국제 티베트 지원단체나 인권단체가 중국 관련 정보의 주된 소스로 부상한 점도 중국의 반서방, 반외신 분위기에 일조했다.
영국 셰필드대학의 저널리즘 학자인 윌리엄 카마이클은 "티베트 현장에서 나오는 정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외신들이 티베트 망명정부와 이들 단체에 취재정보를 의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는 달라이 라마가 서구 사회에서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는 것과도 관련이 깊다.
이런 반외신 분위기 속에 중국 당국의 외신 통제로 인해 실질적으로 중국인들 어느 누구도 CNN을 비롯한 외신의 방송채널을 볼 수 없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전했다.
잔장(展江) 중국 청년정치학원 신문방송과 교수는 "우리는 CNN을 비판할 자유는 갖고 있으나 CNN을 볼 자유는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서방 언론이 중국의 복잡성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서방의 언론보도에도 부적절한 점이 있다"며 "중국은 보다 개방된 조치로 외신들이 중국을 둘러싼 복잡한 현안에 대해 좀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jo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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