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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노조 파업은 유치원생 수준의 투정

더 많은 방송사가 더 많은 언론자유를 보장한다

1. 현재 임시국회에서 야당은 미디어관련법안 통과에 특히나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친 재벌, 친 권력적 언론이 여럿 태동됨으로 국민의 정신이 친 여당, 친 재벌 쪽으로 돌아가는 것을 특히 우려하는 듯하다. 이는 언론과 권력의 정신 조작이라는 폐해에 대한 인식이라는 사회학적 기본 인식에서 나온 것으로 그럴 듯한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관념은 자신이 서있는 토양에서 다시 반성적 사고를 해야, 윗사람 숭배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성장이 가능하다는 차원에서 고찰해 봐야 한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바는 곧, 이러한 미디어 법 반대 정신의 바탕은, 세상을 겁주는 어른들의 말만 듣고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어른이 주입시킨 관념을 숭상하여 성장의 길로 나가지 못하는 아이의 정신과 같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언론과 재벌 권력은 저열한 윤리 수준으로 악독하게 존재해 왔던 것은 사실이다. 정치권력이든 언론권력이든 국민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악영향을 주는 것은 비단 언론 권력(그리고 그들과 결탁한 정치권과 기업권) 뿐인가? 이미 학교에서건 가정에서건, 한국적 문명을 이루는 근본 문화 자체적으로 언론이나 정치권력이나 재벌권력이나 등등이 주는 악영향을 그대로 주고 있다. 곧 그만큼 한국사회 전반의 윤리 수준이 열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곧 한국사람 개개인의 평균적 윤리 수준이 열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현재 한나라당 쪽이 발의한 미디어 관련법은 이러한 언론의 특성을 더 열악하게 만들어 국민들이 더 친 여당 쪽으로 그리고 친 재벌 쪽으로 정신 줄을 놓게 될 것인가? (put puppets strings on player's fingers) 이는 사안을 너무 국한된 시각으로 좁게 본 것이라 하겠다. 일단 국민은 장기간 언론으로부터 뿐만이 아닌 여러 경로로 여당과 재벌에 유리한 근대화 사상의 세례를 “아버지, 할아버지 같은” 분으로 부터 받았으며, 세례를 받을 만큼 청결하지(acceptable) 못했더라도,(둘째 셋째거나 아예 배다른 서자라서) 그 가치를 숭배하여 그 아버지 할아버지 같은 종가집으로부터 이익을 얻어 먹는데 합당(acceptable)해지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이 이익 논리가 지배하는 시장에서 민주당 등 야권 세력은 틈새 시장의 플레이어, 대체 상품이지 시장에서의 가장 신뢰할 만한 공급자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필자의 올해 초 빅뉴스 칼럼 참조)

2. 그러므로 현재, 야당과 소외된 사람들이 언론에 의해 힘이 부여받을 것을 생각하는 것 자체는 일단 비현실적임은 쉬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시키는데, 기존의 미디어법을 고수하는 것은 아주 열악한 현실을 개선하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음도 쉬 알 수 있다. 그러면 재벌들과 신문사들이 방송 시장에 까지 진입하는 것은 어떠한가? 이것이 딱히 야권세력이나 소외된 계층에게 현재보다 불리할 것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이는 왜 그런가?

일단 큰 틀에서 본다면 보다 많은 지상파 방송 공급자가 생기면서, 그리고 국민 대부분이 방영하고 있는 케이블 방송에 개혁·진보적 목소리를 많이 담는 신문사들 또한, 다른 이익을 같이하는 세력들과 콘소시움을 구성하여 진출한다면, 자연스런 경쟁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아예 세계 유수의 보다 신뢰할 만하고 나은 윤리수준을 가진 외국 언론사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여 한국어 방송뿐만이 아닌, 지상파 방송까지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경쟁의 순기능을 일으키는데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한나라당 쪽 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쪽, 특히 민족이니 민족 문화니 이런 쉰소리 하기 좋아하는 민노당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국제자본 권력의 음모 등 까지 들고 오면서 현 상황에 있어 가장 피해를 보는 집단이면서도, 현 상황 개선에 가장 효과적일 것을 가장 반대할 정당으로 나타날 것으로 추측된다. (아마 여기에 거대 야당들의 어느 정치인들보다 인기가 좋은 강달프 애칭을 받는 의원이 한복입고 선봉에 서지 않을까 추측한다.) 그래서 결국 당장 이루어지는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고, 아마 이루어진다면 진실로 이번 미디어법안이 통과되어 야당이 예상하는 것처럼 그토록 야당 쪽에 소외된 사람들에게 아주 불리한 방향으로 나타나지는 날이 왔을 때, 야당 쪽도 보다 현실적 시각으로 돌아와 외국에서라도 들여와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어쨌건 기존의 열악한-자신들에게도 불리한-언론 환경을 느낌으로는 싫다고 느끼지만 개선할 의지도 없고 그래서 방법도 안 나오는 현 야권세력들을 생각했을 때, 이는 마치 학생들에게 교육제도를 개선시켜 보라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대부분의 학생은 그 제도에 순응하면서 조그만 이익이라도 얻어보려고 생각하고, 이 이익 논리를 내제화 하여, 결국 스스로 그 족쇄를 치지 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 이를 근본부터 바꾸려 하면 그동안 공부해온 수능은 대입제도는 어떡하냐며 오히려 커다란 반대를 놓을 것이다. 지금까지 교육 제도에서의 약간의 변화에도 그토록 난리 호들갑을 치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듯 말이다. 결국 이들이 옹호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이익이 아닌 정규직 철밥통 저열한 윤리의 교사 집단이듯이, 언론 노조가 옹호하고자 하는 것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자신들의 진정한 성장으로 내모는 도전적인 환경에는 거하려 하지 않고, 기존의 안정적 방송 조직 문화에 안주하려 하며, 그래서 이들이 옹호하는 부분 또한 이러한 수구적 문화를 바꾸고 싶어하지 않는 야당세력과 자신들 조직을 지탱하고 운용해온 상부의 이익이다. 아래 언급 하겠지만 진정 열악한 한국의 언론과 방송을 개혁하는 길은 경쟁의 환경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3. 중요한 것은 한국의 방송도 일본, 미국의 그것과 같이 열 개, 스무개로 늘어나게 된다면 이 모든 방송국이 결합하여 친여, 친 재벌적 방송만을 뿜어댈 것으로 사고하는 것 자체가 마르크스주의의 관념에 의한 공포에서 못 벗어난 정신 같은, 비현실적 생각이다. 마치 맑스의 말을 웃어른 말씀으로 숭배하고 세상으로 나오려하지 않는 아이 같은 정신으로 말이다.

만약 한국의 경제 상황과 세계의 경제 상황이 체감하기에도 상당히 좋지 않은데 대놓고 친여적인 방송을 할 방송 집단들이 얼마나 될까? 이러한 상황이 된다면 필연적으로 보다 쉽게 이탈자를 낳기 쉬우며, 그렇게 되면 갑작스레 그 방송사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것이다. 물론 그 방송사도 약간의 용감한 시도였을 뿐 큰 틀에선 다시 친여에 유리하게 고도의 정신 조작을 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디서건 이렇게 많은 경쟁자가 서로 작은 파이를 공동으로 나누어 먹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이탈자가 나올 것이다. 왜냐면 외부에서의 실례도 있고, 그들의 끝 모르는 이기심(이기심을 무조건 나쁘다고 인식하는 자는 고대 한국어를 쓰는 사람이다.)은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를 갖게 만들 것이다. 동시에 만약 신문사가 지상파 방송까지 한다면, 어차피 신문의 이익 추구 방법과 방송사의 이익 추구 방법은 다르다. 그러므로 방송사가 반드시 신문사의 그 방식대로 갈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꼭 그렇지만은 않고, 어차피 아무리 구독 거부 운동, 광고 게제 반대 운동을 한다 해도 크게 변하지 않는 신문사들이 오히려 방송에서는 좀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채널권과 온오프 스위치 결정권은 시청자가 가지고 있고 단 1초 사이에 결정이 내려지는 것이기에 그러하다.

그러므로 기존의 신문사가 보지하고 있는 이익을 추구하는 태도가 방송사의 그것과 같다고 보는 것은 다르고, 이 때문에 방송사는 신문사와 조금은 다를 수 있다. 이러한 조금의 변화가 다른 경쟁자들을 자극하여 더 한 변화를 낳을 수도 있다.

그리고 또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의 시장에서 활동하는 기업이 다른 시장에 진출했다고 해서 꼭 같은 윤리수준과 상품의 질을 가진 물건을 만들지 않고 오히려 시장이 더 경쟁이 심화되고(한국 방송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발달하여 전체 브랜드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기존의 열악한 기업마저도 전체적 브랜드 이미지· 가치를 위해 전반적 상승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실례로 중앙일보의 출판사가 반드시 신문정도의 질 밖에 안 되는 책을 내는 것은 아니 듯 말이다. 출판사가 신문사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지 않고 다른 논리로 움직이는 것 또한 다른 사업이기에 그러한 것이다. 전반적으로 이렇게 브랜드 가치가 중시되고 더 많은 시장에 참여하게 되고 보다 많은 구성원들과 이익을 공유하는 기제로 나가게 되면, 더욱 선명한 윤리의식을 가지고 진전된 윤리를 사회와 시장으로부터 요구받게 되므로 브랜드 가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기에 모기업인 신문사마저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혹시라도 한국에 팽배한, 유교적 아이와 같은 정신 수준으로, 또 유교 종교적으로 뽕맞는 마약이 인생사 가장 큰 이익이자 행복으로 인식하는 정신이라면, 이 작은 파이도 서로 크다고 느끼며 오순도순 크게 싸우지 않고 살 수도 있다. 그럴 땐 외국에서라도 들여와야 할 것이고 언제든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케이블 텔레비전, 위성 방송 등에서라도 한국어 방송을 허용하는 법을 통과시키게 되면) 그들의 이익을 위해 뭉친 결속은 느슨해지고 허물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끝까지 죄 속에 안주하는 완악한 태도로 간다면 공멸 밖에 없을 것이다. 이 공멸 속에 외국에서 들어온 좋은 윤리를 가진 방송사는 큰 복을 받을 것이다. 물론 한국의 기존의 완악한 안주 정신을 생각한다면 이 공멸의 심판은 없을 것이라는 큰 믿음은 가지지 못하겠지만, 그것이 그들이 받아야 할 댓가(price)라면 일단 치르고라도 가야하지 않을까..? 현 정부와 국회와 사법부가 한국사회가 치러야 할 마땅한 댓가라 치르듯 말이다.

4. 그러므로 국민들이 언제까지나 언론 등 영향력이 센 집단들에 강력한 정신조작을 당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너무 현실안주적이고 과거지향적이며 마르크스 등의 어른의 관념을 우상숭배하는(3대 죄의 요건에 모두 합치한다)것으로 미래가 없다.

다시 말하지만 어차피 그들이 여태껏 세를 불린 방법자체가 이러한 방법에 크게 의지했기에 궁극적으로 이러한 것이 허물어지는 것 자체에 불편함을 느끼기에, 그러한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왜 개혁적일 것이라 생각했던 386 세력들이 그렇게 수구적이었는지, 이를 사실 예측한 사람도 적지 않았고 사실로 들어난 것으로 그래서 또 이상해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미 살아오면서 가장 말이 안 통하는 꽉 막힌 집단 중 하나였음, 이로 인해 산자라면 절규한 것이 이상스럽지 않았겠고, 이들의 현재를 예측한 것 또한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아마도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것이 그들의 권위에도 합당할 수 있겠다. 곧 자신들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한 쪽의 세상 일들만 바라보려 시도하고, 또 그렇게 편집적으로 수집된 인식을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하여, 이처럼 감정적인 인식을 만들어내, 국민에게 전파하고 확대한다. 특히 비슷한 감정적이기 쉬운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자들에게 받아들이게 하고, 선동하여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얻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취약한 위치에 현재 처하고 있는 자들이 바로 언론노조이고, 그들의 위험을 느낀 감정을 그토록 잘 이용한 것이 현실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위험을 전파한 것은 야당 쪽이 아닌 그들이 먼저 했다고 할 수 있으나 어쨌건 제도를 만드는 권력자들이 그러한 낚시질을 물어주길 기대하고 광고한 관념 패키지 상품을 야당들이 샀다고(buy) 볼 수 있다. 그리고서 그 프로그램을 마구 포로모팅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오호라 그렇다. 왜 민주 개혁세력이 이처럼 통합의 힘을 내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나서 선거 전쟁에서 바보를 연상시킬 만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개박살이 나고, 사실은 이렇게 기존의 정치 권력자, 재벌 같은 똑같은 윤리수준을 가진 자들이었기에, 서로들 감정을 이용한 선동을 가장 힘을 받는 방법으로 여겨(위로부터의 교육에 의해, 문화에 의해 자동적으로?) 체내화 하고 있는, 이를 자신의 이익을 거머쥐는 행위를 이끌어 내는데 프로그램화하여 내재화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기에(마치 자연 파괴적 낡은 공장 시스템과 같이), 서로들 같은 프로그램으로 작동하여 전쟁을 벌였기 때문에, 결국 생명의 힘, 콘트롤 능력이 없이 ,그렇게 저열한 수준의 정치집단인 현 여권에게도 캐발림을 당한 것이다.

5. 많은 국민 스스로도 왜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지에 대해 황당해 하고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원인은 멀리 있지 않고 이렇게 단순한 곳에 있다. 어떤 자의, 어떤 집단의 이런저런 사안에 있어서의 옳고 그름에 의해서, 사회의 혹 시대의 선택을 받게된다고 생각하는 사고 자체가 아이적인 나이브한 인식이다. 이러한 인식을 만드는 상태가 곧 권력자들에게 정신줄 조종을 당하기 좋은 바탕이다.

그러나 아직 많은 한국인들이 이러한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가치관을 가지고 가기에, 현실을 보는 눈이 제한적이고 세상사가 도통 이해가 안가고 그래서 보다 소모적 투쟁적으로 움직이게 되며, 당연히 그러한 방법으로는 결과가 좋지 못하니 잘못된 신의 이름,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괴롭다며 절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군림하는 자로부터의 우상신이지, 하나님이 아닌 것이다.

언제나 진정 개혁세력 자체가 근본적 첫발을 내딛을 수 있을지 그래서 앞으로 신에 의해 약속된 커다란 힘과 성과에로 다가가게 될지 의문이다.

역사의 신은 처음부터 의지가 약한 양들에게 어려운 계율을 주지 않는다, 이 낮은 단계의 계율 수행에 커다란 복록은 없을 것이라고, 그리고 현재적 가치에 기생하는 것이 훨씬 많은 결과물을 보였다고, 작은 계율부터라도 하지 않는 완악한 마인드의 결과는 작은 심판의 연속이고 그 뒤는 거대한 심판 뿐이다.

밖에 나가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일이라도 구하지 않고, 집안 어른의 논리와 재산에 의지하며 사는 사람의 미래가, 미래의 신 앞에 받아들여질 만한(acceptable to God) 것이 되지 못하여 간택받지 못하듯, 이 밑바닥의 계율부터라도, 일단의 경제적 보수는 작지만 신에게 받아들여질 만한 수준으로 가는 이 길을 가고, 그래서 간택의 커다란 결과물을 받는 이 길을, 한국은 언제나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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