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민 앵커가 KBS 보신각 타종에 관한 중계방송에 대해 딴죽을 걸었다. 그는 각종 소음을 제거하고 효과음을 넣는 게 상식이라는 KBS 측의 해명에 대해 그런 상식은 모른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신경민 앵커가 일단 부족한 상식부터 먼저 충원해야 할 것 같다. 그건 방송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아니고도 충분히 다 알고 있어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상식 중에 상식이니까. 지금 각종의 포털에 있는 신문 기사 댓글란에 어찌 저런 수준의 사람이 공영 방송국의 앵커자리까지 올라갔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는 평이 나오고 있는 이유를 한번쯤 되새겨 보기 바란다. 신경민 앵커는 스스로 공영방송인의 자세를 저버리고 너무 정치적인 구역까지 들어와 버리지 않았는지 자신의 위치를 점검해보기 바란다. 정말 금배지를 목표로 정치계로 뛰어들 생각이 아니라면 되돌아가기에 너무 늦어 버리기 전에 공영방송인으로서의 중심을 회복하기를 희망한다. 아니면 차라리 하루빨리 정치계로 뛰어 들어 다른 건전한 방송인들을 오염시키지 말기 바란다.
편파적인 MBC 백분토론
왜 저런 사람들이 저런 자리에까지 앉을 수 있었는지 이제 유권자들도 어느 정도 알 건 다 안다. 한국의 바람직하지 못했던 정치문화와 정치꾼들 때문이다. 신경민 앵커와 여기에 판타지 운운하며 온갖 억지와 궤변으로 기어코 또 히틀러에 까지 끌고 들어간 진중권이라는 얼치기 지식인의 주장은 부분적으로는 일견 타당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보신각 타종 중계 사안에 대한 핵심을 전혀 못보고 있다. 아니 일부러 안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필자는 이 문제를 제대로 국민들에게 알려서 국민들이 진짜 필요한 시각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 이 사건을 주제로 한 MBC 백분토론을 제안하는 바이다. 원한다면 필자라도 그 패널로 나갈 생각이 있다. 그 댓가로 어떤 욕설을 듣게 된다 하더라도 한국인 의식 수준을 향상시키고 또 사회 전체의 발전을 위해 기꺼이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다. 실제로 MBC 백분토론은 과거 쇠고기 수입 문제보다 훨씬 중요한 유모차 시위 문제에 대해서도 토론을 진행하지 않았다. 쇠고기 수입이 검역주권에 관한 문제라 치면, 유모차 부대 문제는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인권 자체의 문제임과 동시에 한국 사회의 성숙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관용에 관한 문제였다. 자신의 정치적인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서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유아까지 동원하는 건 인간 이하의 인권 학대임에 분명하다. 사실 이런 일방적인 독재나 학대가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독재투쟁을 하지 않았는가? 공영방송이라면 당연히 이런 테마를 토론의 주제로 올려 다양한 시각을 가진 패널을 모셔놓고 토론을 하면서 바람직한 민주시민으로서의 의식을 북돋우는 데 기여할 책임이 있다. 조성민 문제로 불거진 친권문제에 관한 주제가 100분 토론에서 다루어진 것과 비교해 봐도 너무나 편파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유모차 시위 문제에 대한 대국민 토론이 촛불시위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상황만 제외하면, 비록 시간은 달랐지만 두 주제 다 그 당시 언론이나 세간에 더 이상의 비교대상을 찾기 힘들 정도로 떠들썩한 문제였는데도 MBC는 너무나 차별적으로 처리했다.
관용
별로 웃기지도 않는 개그에 박수효과음을 넣어서 웃음을 유도하는 행위는 일종의 기만적 트릭이지만 수십 년 전부터 지속되어 왔다. 하지만 아무도 이에 특별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사회학적 근거는 간단하다. 그건 단순히 흥을 돋우고 건강에도 좋다는 웃음을 유발하여 만인에게 좋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벤담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이론으로 대표되는 공리주의를 생각해 보면 쉽다. 다른 사람의 편익이 침해되지 않으면서 사회 전체적인 편익이 증대 될 때, 이런 경우를 후생(厚生)경제학에서는 파레토 효율에 접근하고 있다고 한다.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KBS의 박수 효과음은 별로 웃기지도 않은 개그의 흥을 돋우기 위한 약간의 기만적인 트릭이 있는 추임새도 아니었다. 서울 시장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나타내는 환호성도 아니고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의 표시도 아니었다. 새해에 대한 벅찬 기대와 희망을 갈망하는 박수였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행사에 박수 효과음을 넣고 장면을 기술적으로 좀 편집했다고 해서 한국 국민들 중에서 어느 누구의 편익이 침해당하는가? 오히려 보신각 타종 때의 시위자들의 야유와 함성을 담고 그런 모습을 담는 행위야 말로 오히려 새해를 벅찬 희망과 포부를 안고 새해를 맞고자 하는 편익을 침해하는 행위였다고 보는 것이 말없는 많은 시민들의 생각이다. 그걸 굳이 오세훈 서울 시장에 대한 환호성이나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지지의 표시로 읽어야만 하는 고지식하고 비틀어진 신경민 앵커와 진중권 같은 사람의 찌들은 사고방식에 진짜 문제가 있을 뿐이다.
뉴욕시(市) 등 세계 유수의 대도시에서 시민들의 해피 뉴 이어(Happy New Year) 축제에도 시장이 나와서 시민들과 희망찬 새해를 기원하는 행사를 갖는다. 많은 사람들이 샴페인이나 와인 등 축배를 서로 나눠 마시면서 묵은 해의 앙금을 털어내고 희망찬 새해를 맞는 카운트다운을 한다. 물론 그런 몰상식한 일은 없겠지만, 만일 한국처럼 이런 행사에 촛불 든 시위대가 나타나서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될까? 건전한 시민들에 의해서 야유와 핀잔을 받을 것이 분명하고 특히 그 나라 지식인들은 이 일을 매우 강하게 질타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한국은 어쩐 일인지 오히려 사이비 지식인이 나서서 아주 지엽적인 일을 부풀려서 더 중요한 문제는 뒷전으로 하고 이런 몰상식한 일을 두둔하고 부추긴다.
한국사회의 비극
현재 한국사회의 비극은 이런 사이비 지식인들이 날뛰고, 오히려 바른 말을 해야 할 참 지성인들이 눈치를 보며 뒤로 숨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지식인 사회는 악화가 양화를 철저하게 구축해 버린 상황이다. 적어도 미디어계는 그렇게 보인다. 특히 사이비 지식인 진중권은 악화(惡貨)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사안마다 중요한 대목은 숨기고 일부러 지엽적이고 피상적인 부분을 과도하게 부풀려서 사회적인 갈등을 더 확대재생산 하는 짓만을 일삼고 있다. 지난 번 워킹 홀리데이 건에도 그랬다. 핵심은 극심한 경제 불황을 맞은 "젊은이들이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로 취업 난관을 돌파해 가자"인데 이게 진중권의 머리 회로 속을 한바퀴 돌고나면 어김없이 또 편파와 왜곡에 의한 궤변이 씹다버린 껌처럼 툭 튀어 나온다. 이건 진중권이 욕설은 마음껏 하고 싶은데, 특별히 대안(代案)을 내놓을 지능은 안 되고, 아는 게 유독 워킹 홀리데이에 관한 서푼짜리 지식밖에 없기 때문임도 큰 작용을 했을 것이다. 이건 시장 할머니의 눈물 사안에도 그랬다. 필자는 한국의 최고 통치자 중에서 고무신 신고 논에 들어가서 농민들과 함께 모내기를 한 사람으로 박정희 전대통령을 마지막으로 기억한다.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을 바쳤고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김대중 전대통령과 권위주의 청산의 기치를 내건 노무현 전대통령이 직접 농민들과 어울려 모심는 모습이나 재래시장을 방문하는 모습을 재직 중에는 보지 못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한국경제에 총체적 위기가 닥친 상황에서 대통령이 몸소 재래시장을 방문하여 시장 할머니를 위로한 행위가, 설사 그 행위가 방송되어졌다고 한들, 그게 무엇 때문에 잔인한 행위라고 손가락질 받아야 한다는 말인가? 비난을 할려면 재래시장에 나타나지도 않은 사람들을 비난해야 오히려 옳지 않을까? 실패한 대통령이 또 생겨나면 몇몇 정치꾼들에게는 이를 빌미로 정권을 잡을 기회가 좀 더 증가하겠지만 국민 전체에게는 엄청난 불행과 희생이 수반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상품화(商品化)
아무 대안(alternatives)도 없이 상대를 비방하는 일은 인성이 비겁한 사람들이 즐겨 하는 짓이다. 자신은 할 엄두도 못내면서 상대에게 해와 달을 따 주지 않는다고 비난만 해대는 행위도 너무나 저급하다. 지식인이라면 상대를 비난하기 전에 최소한의 대안을 강구할 줄 알아야 하고 적어도 그런 자세라도 갖추어야 한다. 물론 대안 강구 또한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과 높은 지능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 노력을 하다보면 진중권 같은 저질 지식인들의 소양이 조금씩 진화되는 효과도 있다. 진정한 주제는 놓쳐 버리거나 일부러 모른 척 하면서 아주 작고 피상적인 일을 과장해서 온갖 욕설과 저주, 그리고 악담을 퍼붓는 일, 이런 일이 진중권이 주로 하는 일이다. 물론 이렇게 하면 정치적인 색깔로 쳐서 같은 편의 열화와 같은 박수를 받을 것이다. 지식인으로서의 자존심과 양심을 저버리고 스스로 그런 대중, 그중에서도 질이 낮은 대중들의 수준과 구미에 맞게 상품화(商品化, Commercialize) 해버린 어릿광대가 진중권의 처참한 몰골이다. 지식인으로서의 자존심은 스스로가 지켜야 하는 법이다. 그게 진중권의 낮은 지능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지, 그의 특이한 정신 상태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사회를 더 밝고 건강하게 만드는 데 자신의 지식을 쓰지 않고 사회를 더 저질(低質)로 몰아가는데 이용하고 있는 사람은 매우 저질 지식인이라는 사실이다.
히틀러와 진중권
사이비 지식인 진중권은 걸핏하면 히틀러를 들먹이고 파시즘을 들먹인다. 하지만 진중권의 말대로 현재의 한국의 지배권력자들이 파시즘을 획책하는 집단이고 국민이 선거로 선출한 이명박 대통령이 또 히틀러 같은 독재자라면 촛불시위자들은 반체제 시위 행위로 전부 강제 수용소에 가서 혹독한 고문과 개스 실험을 당하고 총살을 당해야 말이 된다. 특히 그런 체제는 반대자들을 탄압하기 위한 비밀경찰(게쉬타포)과 강제수용소를 필수요소로 한다. 따라서 히틀러 체제라면 진중권 같이 공개적으로 대통령을 모욕하는 일을 자랑으로 삼고, 그걸 오히려 출세의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사람이 온갖 미디어에서 활개치고 다닐 수 있도록 내버려 두겠는가? 비밀경찰에 의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서 공개총살을 당해도 수백 번은 더 당했을 것이다. 개인에게 부여된 자유의 적정선을 넘어 방종에 가깝게 악용하고 있는 진중권만 보아도 현재 한국의 정치체제가 히틀러식 압제정치체제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생생한 증거다. 진짜 히틀러와 유사한 사람을 찾으라면 알맹이도 없는 말로 온갖 거짓말과 과장을 하면서 대중을 현혹시키고 있는 진중권이야 말로 진정으로 히틀러 같은 정신병자 수준의 사람이 아닐까?
21 C 한국인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의 정도를 보려면 간단하게 진중권의 행각을 보면 된다. 저렇게 과장과 거짓말로 온갖 막말을 일삼으며 민의로 선출한 대통령을 마음대로 능욕하고 있어도 국가원수 모독죄 등의 명목으로 잡혀들어 간 적이 있는가? 가령 진중권이 북한에 가서 김정일을 모욕하는 말을 현재 한국에서 하고 있는 행각의 1만 분의 1 수준이라도 했다고 가정 해보자. 그런 말이 어떻게 만인이 보는 포털의 메인을 장식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러고도 어떻게 진중권이 살아 남을 수 조차 있단 말인가? 북한에도 우리에게 알려진 요덕 수용소 등 최소한 6개 이상의 수용소가 있다고 한다. 이들 수용소는 김정일 독재체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압살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존재하는 장치다. 그런 김정일도 히틀러와는 함부러 비교하지 않는다. 진중권이 얼마나 지능지수가 낮길 래, 자기 스스로가 대한민국에 개인적 자유가 얼마나 강물처럼 넘쳐 흐르고 있는지를 몸소 증언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말인가? 21세기 대한민국의 통치권자에게 히틀러를 운운하는 건 진중권 같은 사이비 지식인이나 할 수 있는 몹시 야비한 짓이다. 조금만 따져보면 일본인들이 조센징 하는 식으로 한국인 전체를 비하하고 극도로 모욕하는 말임도 알 수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 가든지 간에 당신 나라의 대통령은 히틀러 같은 사람이라는 말에 모욕감을 느끼지 않는 국민이 있단 말인가? 그 나라의 정치수준은 그 나라 국민들의 수준이고 그 나라의 지도자는 바로 그 나라 국민들의 얼굴이다 라는 말을 생각해 보라.
숭례문 방화와 보신각 타종
2차 대전 때 독일군과 연합군이 대치하고 있는 최전방에서 일어난 일화다. 그들은 이런 대치 상황에서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았다. 이때 그들은 잠시 전쟁을 멈추고, 함께 캐롤송을 부르며 성탄을 축하했다. 한국인에게 재야의 보신각 타종은 서양인의 크리스마스이브 이상 가는 특별한 문화행사다. 이런 고유의 문화행사까지도 촛불을 들고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관철하려한 촛불시위대에 이런 관용(똘레랑스)을 기대하는 건 너무 무리한 요구인가? 사실 새해를 맞는 보신각 타종식에 촛불을 들고 나타나 정치적인 구호를 외친 사람들은 재판에 불만을 품은 한 시민이 그 의사를 숭례문 방화로 표현한 것에 비견될 만큼 몰상식한 짓이다. 이런 사람들로 인해서 한국인이 문화적으로 뒤쳐진 민족이라고 비아냥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보신각 타종소리를 들으면서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며 새해의 희망과 포부를 다짐하는 행사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에게나 공유되어진 일종의 문화행사이자 양도할 수 없는 권리다. 그래서 이 권리를 한 명이라도 더 많이 누릴 수 있도록 KBS가 공중파를 통해 전 국민의 안방으로 중계한 건 공영방송으로서 매우 잘한 일이다. 하필이면 왜 그 행사를 서울시장(정확히 말하자면 한나라당 출신의 서울시장)이 하느냐 하는 식의 딴죽을 거는 행위는 몰상식에서 비롯된 전혀 별개의 문제로 이것이 전 국민의 문화적 권리보다 앞설 수는 없다.
이런 행사에까지 촛불과 피켓을 들고 자신들의 주장을 노출시키고 관철하려는 행위는 절간에 떼거지로 몰려가서 찬송가를 부르며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고, '예배당에 찾아가 목탁을 두드리며 나무관세음보살' 하는 행위와 뭐가 다른가? 물론 보신각 타종 행사장에 모였다가 돌아가는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누어 주는 방식 등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방식 정도는 건전한 한국시민들이 새해 첫날부터 이게 무슨 일이람? 하며 이맛살이 다소 찌푸려질 지라도 시위대를 향해서 너그러운 관용의 정신을 베풀어서 대충 넘어가 줄 수도 있다. 한데 이 행사를 적극적으로 시위를 할 기회로 이용하고 일반 시민들의 갈망을 훼손하는 일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일이며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임에 확실하다. 사실 시위대들이 이런 기본적인 관용의 정신을 지켰다면, KBS가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행사에 모인 사람들만 대상으로 카메라에 담았다 하더라도 굳이 박수효과음을 만들어 넣을 필요조차 없었음은 자명하다.
군사독재를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위한 제도적 보장을 거의 다 갖춘 나라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란 그 사회 공동체의 의식수준으로 결정된다. 상대를 대화나 타협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관용과 매너를 내던지고 지금처럼 마치 적(敵)이나 불구대천의 원수를 타도하자는 듯한 태도로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면서 시위하는 나라의 앞날은 정말 암울하다. 이를 목도하고 있는 한국 지식인들의 책임 또한 막중하다. 이들은 바람직한 사회를 위해서 책임의식을 갖고 정말 '특별히' 분발해야 한다. 2009년 새해를 맞아 모든 이들에게 새해 복이 가득하길 빈다. 그리고 한국 사회도 좀 더 관용적이고 성숙한 사회로 발전했으면 한다. / 김휘영(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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