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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걸스에 밀려난 한국의 남성 비보이들

원더걸스의 미국 진출을 보고 든 단상

1. 원더걸스는 미국 대중문화 시장의 메이저를 노리고 진출했다기 보다, 틈새시장을 노렸다고 볼 수 있겠다. 일단 노래 가사에서부터, 종교적 보수적 색채가 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고, 그들의 춤 또한 그리 섹시 어필함을 드러내지 않는다. 집단으로 같은 춤을 추며, 그 춤도 그리 액티브 하지 않지만 뭔가 순애보적인 감성을 강조하는, 이는 특히 좀 보수적인 아시안들과 종교적 색체가 강한 사람들, 그리고 솔직한 이야기로 말 잘들을 것 같으며 바람피우지 않을 것 같은 아시안계 여자를 좋아하는 성향의 남성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을 것 같다. 오죽하면 쇼에서 카메라맨이 잡은 앵글이, 춤추는 이의 속옷이 보일 정도로 잡았겠는가,(필자는 여기서 역시 미국하며 칭찬했더랬다.) 원더걸스의 몸 동작 자체가 그리 요란하고 활동반경이 넓지 않으며 제한적이란 이야기다.

2. 이번에 이들을 보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가수는 중국계의 코코 리였다. 홍콩에서 태어난 미국계 중국인 코코 리와 뮤직비디오도 같이 촬영한 바 있던 박진영은, 코코 리의 미국 시장에서의 한계를 잘 인식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예 코코 리와는 아주 다른 종류의 상품으로 원더걸스를 만든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미국에서도 확실히 틈새 시장일 듯 하고, 일종의 개척되지 않아온, 블루오션일 수도 있다.(이는 동시에 블루오션이라 그만큼 발생하기 힘들다는 것도 의미 한다.)

사실 일본에 원더걸스와 같은 스타일의 소녀 댄스그룹은 상당히 있어왔던 것인데, 그들이 미국 시장에서 성공했다는 것은 못 들어 보았다. 특히 미국에서의 일본의 이미지는 매우 긍정적임을 생각했을 때도 박진영의 시도는 처음부터 그리 쉬운 그것만은 아닐거라는 짐작을 한다. 아마 일본 엔터테인먼트 배급사의 유통능력이 박진영 자신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그 것 만큼 되지 못했기 때문이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코코 리 또한 전 미 지역에 퍼졌었고 네이티브 수준의 미국 영어를 구사하고 가창력과 춤의 강렬함도 원더걸스 보다 뛰어났지만, 그 시장에서 먹히지 못한 이유는 언어와 유통만의 문제는 아닐 듯 하다.

댄스로 출발했던 코코 리는 후기에 주로 서정적 발라드 류에 주력하는 방향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결국 댄스로 섹스어필함과, 프로페셔널한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은 백인이나 다른 유색인종 보다 경쟁력이 있지 못했다. 그녀의 주요 인기는 오히려 미국에서의 활동은 오히려 각국의 해외 화교권과 중국인들에게 더 어필하는 요소가 되었다. 아마 그래서라도 더 서정적인 형태의 노래를 부르게 되었으리라.

3. 원더걸스는 조나스 브라더스 콘서트의 오프닝을 담당하는 그룹으로 채택되었다고 한다. 조나스 브라더스는 매우 자극적이고 요란한 락음악을 한다기보다 비틀스, 오아시스 비슷하게 좀 신사적인 조신한 록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원더걸스의 좀 조신한 취향의 댄스, 안정적 느낌을 주는 성 관념은, 비슷한 시장에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생각해 보자, 만약 조나스 브라더스 앞에 강렬하게 섹시어필하는 댄스를 추는, 미국의 일반적일 댄스 여가수가 나왔다면 조나스 브라더스가 제공하는 음악과 모든 자극의 크기는 약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소녀들의 대통령이 소녀들의 심사를 우울하게 만들 수 있다.

그 반면 원더걸스의 노바디 곡의 가사는 성숙한 여성의 것과 거리가 있는 것이고, 순수한 10대 소녀적 감성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이들의 가사를 볼 때 일관성 있게 하나로 잘 상품화 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어쩌면 한국적인 것을 그대로 가지고 와서 미국적 현실과 잘 맞지 않는 부분이 발생했을 수도 있고, 너무 블루오션 시장이다 보니 완성도 면에서 좀 거친 부분이 남아있을 수도 있다.

먼저 댄스곡이면서 우울한 느낌이 드는 가사를 채택했다. 물론 그런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나, 원더걸스가 어필하고 있는 성질을 창조하는데 있어 마찰 충돌이 일어난다. 특히 가사 중 telling me you're not good enough, my life with you is too tough가 댄스곡과 어울리는 내용일까? 그리고 10대 때 이미 나 자신은 충분히 좋지 못하고, 애써 자신의 감정을 억누른 채 자신과 같이 사는 생활이 매우 간고艱苦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일까?

다시 생각해 보자, 이곡은 댄스곡이다. 그런데 부정적 사건을 모호한 이미지로 일반적으로 서술하면 공감하기 쉬울까? 특히 난 너한테 너무 부족. 너를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 하며 사랑하면서도 떠나가는 것은 딱 한국적인 것이지 미국의 10대의 생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거기다 보수적, 종교적, 순정적 여성적 이미지의 소녀로 상품화 한다고 했을 때 life is just too tough가 그들의 입에 어울리는 언어일까? 이는 남성적 언어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차라리 life is so hard 정도가 발음상에서나 소녀이미지에나 더 어울린다.

차라리 모호하고 주어 파악이나, 문장간의 관계 파악 면에서도 헷갈릴 수 있는 그 부분을, telling me you don't deserve me, telling me you burden me so much 정도로 하면 어떨까? 이것이 내용에서나 리듬에서나 더 어울리지 않을까. 그러나 솔직히, 이 또한 청자가 별로 머리를 써서 공감한다거나,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다거나, 상상하기 싫을 것 같다. 일반적 서술이라 의미가 모호하며 부정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곧 “난 너에게 짐이되” 이런 특수한 경우에서나 나올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종일관 즐거운 표정으로 웃고 있는 원더걸스가 저런 짙은 암울한 내용을 부르고 있다는 것이 또 상상이 가나?

그래서 burden부분을 can't get me a shelter 정도면 어떨까? 이는 남자가 좋아하면서도 현실적 난관 때문에 모순을 겪는 내면이 느껴질 뿐만 아니라, 특히 아직 거주지가 독립하지 못한 10대 청소년들이 충분히 경험했을 수 있는 상황이다. 상황적으로도 경제적으로 아직 주거적으로 독립하기 힘든 10대라고 생각했을 때, 10대 소녀들도 실지 이러한 말을 들어보았을 확률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동시에, 남자의 마음이 어떤지 이미 알고, 또 겨우 현실적 경제적 문제로 고민하냐고 웃으며, 너야 말로 나를 충분히 잘 아니 너가 필요하다는 내용면에서도 이미지의 통일성, 확실성면에서도 더 좋다.
혹시 좀 더 막 나가는 솔직한 이야기를 한다면, 연애 경험이 충분하고, 중년정도의 남성중 순종적일 미성년자이면서 전통적 동양적 여자들로 상징화 하고 보는 소비자들에게 더 어필할 수 있다. 자신들의 힘, 곧 육체적 힘과, 사회적 위치의 우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예속하고 그들을 지배하는 상상을 하는 사람(특히 중년 남성)에게 훨씬 더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 혹은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았고 준비되지 않은 수많은 남성들, 그중에서도 소녀 취향이고, 얌전한 순애보를 좋아하며 안정된 미래를 선호하는 남성의 경우에게도 심적 만족을 준다. 왜냐하면 뒤의 가사를 보면 뒤에 (경제적 안정 이런 것 다 필요 없고), 단지 날 잘 이해하기 때문에 그것으로 좋아, 이기 때문이다. (필자, 이들이 미국 진출하기 전까지 솔직히, 이들과 소녀시대를 헷갈려 하던 사람이니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ㅋㅋ)

미국 시장에 비교해 보았을 때, 동아시아의 여자 댄스가수는, 체형의 볼륨에서부터 시작하여, 섹스어필함 뿐 만이 아니라 자신의 어떤 성격을 선명하고 어필되게 창조하고, 이를 강렬하게 자극적으로 전달하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면에서 경쟁력이 있지 못하다. 그래서 동양의 여성 팝가수로는 미국 시장에 어필되기 힘들다고 본다. 그렇다고 이번에 특수하게 진출한, 일본에서의 소녀 댄스 아이돌 그룹 비슷한 원더걸스가, 반드시 안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 블루오션 같은 특수한 상품에 한껏 기대를 걸어야 하는 한국적 현실이 안타까운 것으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차라리 그들은 위에 설명한 코코 리와 같은 행보가 현실적으로 더 기대되는 부분이다.

4. 위에 말한 아쉬운 감정은, 특히 이들보다 경쟁력 있고 성공가능성이 있는 자원이 한국에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사실 한국 아니 전 아시아에서 통틀어, 현재 유일하게 미국 시장에서 승부해 볼만한 상품이 있다면 바로 한국 남자 비보이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그렇게 되지 못하는 이유는 군대문제와 한국의 저질 교육(영어포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처음에 언어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 해도, 랩하는 부분은 다른 랲퍼를 채용함으로써 몇 개의 힙합그룹을 만드는 것이 사실 자본적인 면에서 덜 들 뿐만 아니라, 성공 가능성도 더 높을 것으로 본다. 세계 최고 수준의 비보이들이, 한국에서 활동한다는 이유로, 지하 단칸방을 전전하는 현실을 생각해보자. (이와 관련된 경제학은 필자의 신간<희망을 위한 경제관>을 보면 나온다.)

그리고 랲이 반드시 빠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며 보통의 랲과 느린 랲은 이들도 충분히 금방 익힐 수 있는 것으로 본다. 또 흑인의 발음 자체도 정통은 아니기 때문에, 비주류 발음이 주류적 댄스 음악계에서와 같이 필연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같은 마이너리티이기에 더 관용이 베풀어질 수 있다. 그저 이해하는데 어렵지만 않은 수준이면 된다. 더 핵심적인 것은 어떤 케렉터만 그 속에 담아내는 것이다. 또 이를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면은 한국에서 받은 억압의 내용을 정신으로 그대로 담아낸다면 힙합 정신에 매우 합당한 질 좋은 상품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교육 때문에, 미국보다 더한 불평등 환경 속에서 살지만, 그 문제를 인식해내지 못하며 그래서 어떤 분노를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 모르게 만드는 교육이 또 문제가 된다. 하지만 이것은 미국의 다른 동업자가 채워 넣어줄 수 있는 면이기에, 엔터테이너 자신이 부족해도 보완해 줄 수 있는 부분이라 본다.

5. 그렇게 보았을 때, 필자는 원더걸스를 보며, 다시 한 번 한국의 비보이의 현실과, 또 이들의 안타까운 현재와 미래가 상기되며 애처로운 기분이 들었다. 단지 한국 남자라는 이유로 세계에서도 낮은 삶의 환경수준에서 전전하며, 자신의 제공하는 고급 컨텐트 질이 무색한 보상과 대우 속에, 여자인 원더걸스 보다 더 나은 자질을 가졌음에도 불공평한 상황에서 열악한 상태를 못 벗고 사는 것이다. 국가는 개인의 천부적 권리를 한껏 떨치며 살도록 보호하고 고양시키는 필요에서 있는 것임을 상기하자. 동시에 이를 공평하게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국가 최고의 목적임을 생각하자. 이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상식이다. 그러나 민주개혁이라고 자칭하는 지난 10년 동안은, 특히 노무현 정권들어 포퓰리즘적으로 제도로 국민을 옭아메고 꿈을 억살한 측면이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은 노무현 때 아주 된서리를 맞았다. 김대중 정권 때만 해도 어느 때 보다 꿈에 부풀어 배우며 갈고 닦으며 미래를 준비하던 사람들의 꿈이 된서리를 맞아 꺾인 것이다. 이들의 불공평함은 볼 의지도 아니 능력도 없었는지 모른다. 현재 민주주의 정치의 화두는, 억울하고 어려운 사람을 직접 찾아가 서비스 해주는 것임에도 말이다. 이러한 면에선 오히려 MB정부가 노무현 때보다 잘하는 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병역 제도면에서도, 지난 10년간 보다 많은 방면의 산업 기능요원 제도가 생겼었으나, 박정희식 마인드로, 2교대 공장의 노예와 같은 환경에서 복무해야 하고, 또 그 허용 범위 대상이 협소하여 불공평이 생기는 일이 발생했다. 공고출신과 이공계는, 노예 같은 삶을 살게 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박봉이라도 벌 수 있는 있었음에도, 경제,경영,인문 쪽은 아예 기회가 없는 불공평함은 21세기에도 딱 박정희 때의 세계관을 벗지 못한 것이었다. 특히 여전히 운동선수나, 문화산업에 종사하는 기능인들은 낡은 박정희 시대 세계관이 연상될 만큼, 무관심하고 가치를 보지 못하여 불공정한 대우 속에 있었다. 하기사 박정희 흉내내기 바쁘고 인정하기 바쁜 수준의 언사 밖에 구사 못하는 정신 수준을 생각했을 때, 한국의 진정한 평등, 자유, 인권의 민주사회는 꼭 정권차원의 문제로 볼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니 제도야 아무리 박정희 때보다 많이 현대 민주의 그것으로 바뀌었고, 민주적 의회제도와 국민 위원회 제도 등도 생겼지만, 국회 등에서 발생하는 싸움 등등 저열한 윤리를 보면, 국민들의 눈에는 그냥 박정희 때가 다시 그리운 것이다. 국민들이 단순히 무식해서 박정희를 그리워한다고 생각지 말자. 다들 나름의 현실 근거를 기반으로 해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비보이들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들이 차라리 MB라도 열심히 찬양해서, 권리를 찾아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말마따나 먼저서라도 열심히 나라사랑 랲 부르고 4대강 좋아 랲이라도 하면서, 스스로 데모 테이프라도 만들어, 정부에 제공해서라도 말이다. 이렇게 되면 자신이 아니라 동료 혹 후배들의 길을 먼저 터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IT, 이공계 방면뿐 만 아닌, 운동선수와 경영, 금융 방면의 젊은 남성들도 병역 혜택을 볼 수 있게 될 예정이다. 그리 보았을 때 비보이들도 운동선수가 입게 될 혜택인, 입대 연령을 훨씬 연기할 수 있는 혜택을 같이 따 내라고 말하고 싶다. (그냥 정권이나 씨 부리며 욕해봐야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 권리를 획득한 후 미국에서 한껏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재능을 떨치며 살라고 하고 싶다. 그러면 일본에서 성공한 한국 연예인이 부러워 할 경제적 성공과 세계적 명성을 얻을 수 있다. 원더걸스에 기대 걸고 있는 한국인들의 상황이 안타까와서라도, 훨씬 가능성이 있는 그들이 해내어 주길 바란다. 그들의 실력으로 미국 시장에서 성공한다면 그것만큼 국가브랜드를 높이며 알리고, 애국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원더걸스가 올릴 수 있는 이미지 보다 이들의 갈고 닦인 실력이 잠재적 효과 면에서 비교대상이 아닐 정도로 긍정적인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수많은 위대한 인물은 반드시 남들처럼 제도를 따르며 살 수 없었다는 사실도 기억하자. 반면 한국의 진보개혁 세력은 당신들에 도덕성이나 요구하고(독재 때와 다를 바가 없다.) 촛불데모 등 군중 선동에나 이용할 생각 밖에 못하는 수준임을 잊어선 안 된다. 그러니 박진영 옆구리라도 쿡쿡 열심히 찌르자. 폄하할 것이 아닌 말이다. MB정부가 친기업적 정부가 아닌가? 롯데월드 케이스만 봐도 그렇다. 개인에게 있어 인간의 소중한 천부적 가치를 증진시키는 것은 결코 정치가 근본 원인이 아니다. 이는 자기 자신의 능력과 기술이 우선임을 인식하자. 권력을 인식하고 자신의 것으로 최대한 유리하게 만들어 내는 기술도 그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사족> 원더걸스 관련 좀 더 현실감 있는 기대를 갖게 해주는 기사가 역시 바로 나왔더라.
http://choen.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7/21/2009072101375.html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907/h2009072302320810673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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