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선동 기사를 중앙일보 블로그에 올렸다가, 논란이 되자 계약 연장에 실패한 전 중앙일보 계약직 기자 이여영에 대해 본지 편집장을 맡고 있는 이문원 KBS 시청자위원은 지난 10월15일 KBS 시청자위원회 정례회의에서 이여영의 KBS 프로그램 진행자 발탁 이유에 대해 의견서를 제시, 이병순 사장으로부터 “적극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받은 바 있다.
이문원 위원이 지적한 내용은 “이여영 기자는 본인의 주장과 달리, 2년차 계약직 기자에 불과하였기에 문화나 라이프 전문 기자가 아니고, 촛불 선동 칼럼을 작성하여 정치적 논란에 휘말린 것 이외에는 아무런 경력이 없음에도, KBS에서 실명을 딴 ‘이여영의 아지트’라는 프로그램 MC를 맡긴 것에 대해, 캐스팅 절차를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이병순 사장 “검토하겠다”고 답변, KBS 인터넷팀은 이여영 띄우기 나서
KBS 고대영 보도국장은 이여영의 발탁 경위에 대해 “이여영씨는 이전에 KBS 라디오에서 섹션을 맡은 일도 있고, KBS 인터넷 '차정인의 세상읽기‘에 게스트 출연해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다”면서 “그런 관계로 해당 팀에서 이여영씨를 발굴해 프로그램을 맡긴 것으로 알고 있으며, 이여영씨의 배경에 대해선 보고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여영씨는 이미 KBS '책을 읽는 밤‘이라는 지상파 프로그램에 자신의 전문영역도 아닌 소재에 패널로 출연하는 등, KBS 인터넷 뿐 이나라 시사교양 파트에서도 상식 이하의 특급 대우를 받고 있는 중이다.
이에 이병순 KBS 사장이 “충분한 답변이 아니었던 것 같다. 발탁 경위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적절한 답이 아니었다”며 제지, 보도국장에게 이여영이 절차적으로 합당한 과정을 거쳐 발탁된 것인지 묻고, “만약 KBS에 적합지 못한 경력을 지닌 인물이 발탁됐다면, 이를 엄격히 조사해서 엄정한 조치를 취할 것”을 보도국장에 지시했다. 이여영에 대한 KBS 측 답변은 11월 시청자위원회 정례회의 때 재보고되기로 했다.
그러나 KBS 측은 10월 15일 현재 KBS 측이 자체 편집한 네이버뉴스 캐스트에 이여영 관련 프로그램을 사진과 함께 메인에 띄우며 도발에 나섰다. 법적으로 KBS 프로그램에 시정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 시청자위원이 지적한 사안에 대해 사장조차도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한 상황에서, 문제가 된 이여영의 프로그램을 띄우는 것은 명백한 도발행위.
이문원 시청자위원, “KBS 인터넷 편집 문제삼겠다”
이문원 KBS 시청자위원은 “이번의 KBS 인터넷 편집은 시청자위원의 의견을 그대로 무시하고 촛불선동의 주역을 띄우겠다고 나선 것”이라 규정, “다음 시청자위원회 때, 이번의 뉴스편집은 물론 KBS 뉴스의 선정적 인터넷 편집까지 문제삼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이여영 기자는 본지 변희재 대표와도 기사의 진위여부로 논쟁이 붙어있는 상황이다. 이여영씨는 2009년 3월 18일, 매체비평 전문 사이트인 미디어스에 ‘연예부 기자의 5대원죄’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이 중 이여영씨가 지적한 다섯 번째 원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는 것. 문제가 된 이여영 기자의 칼럼 대목은 다음과 같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죄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죄다. 최근 몇 년간 유독 연예인의 자살 사건이 많았다. 연예계 관련 의혹도 많이 제기됐다. 그러나 연예부 기자들은 연예계의 잘못된 구조와 관행과 관련해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연예계에 정통한 그들이 누구보다도 더 해법을 잘 알았을 텐데 말이다. 정작 다른 분야 언론인들이나 경제학자들이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매니저나 연예 기획사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이들과 연예인간의 계약을 제대로 규제하면 된다.
미국의 경우만 봐도 1930년대까지 연예 기획사의 횡포가 기승을 부렸다. 그러다 캘리포니아 주 정부의 개입으로 정화된 예가 있다. 우리의 경우도 이런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연예인 매니지먼트 사업법’ 입법을 준비중이다”
변희재 대표 이여영에 허위사실 칼럼 정정 요청, 이여영은 버젓히 재게재
이여영 기자의 주장과 달리 변희재 대표와 이문원 편집장, 현 쿠키뉴스 조현우 기자, 스포츠월드 김용호 기자 등등 연예 기자들은 2005년부터 방송영상산업진흥원의 하윤금 박사, 열린우리당 노웅래 의원, 한나라당 고진화 의원 등과 연예산업 개혁을 위한 입법 작업에 착수 2008년 3월 ‘공인연예관리자법’을 입법 발의했다. 또한 장자연 사건 당시 바로 이 법을 중심으로, 헤럴드 경제 서병기 기자, 스포츠월드 김용호 기자, 본지 변희재 대표 등이 국회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연예산업 개혁 토론회 때, 구체적인 입법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여영씨의 주장대로 연예산업 개혁에 대안을 내놓은 다은 분야 언론인들이나 경제학자들은 없었다는 것. 결국 이여영 기자의 칼럼은 아무런 근거없이 전체 연예기자들을 모독한 셈이다.
특히 이여영 기자의 칼럼 중에 “미국의 경우만 봐도 1930년대 이후 캘리포니아 주 정부의 개입으로 정화된 예가 있다”는 부분은 이여영 기자의 전문실력을 의심할 수 있는 대목. 미국의 뉴욕주와 캘리포니아주가 연예산업 정화를 위해 공인예이전시 제도를 도입한 해는 1970년도이다.
이에 변희재 대표는 지난 3월 19일, 이여영 기자에게 이메일로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이여영 기자는 기사 정정을 하기는커녕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못한 이 문제의 칼럼을 4개월이 지난 2009년 7월 3일 서울신문NTN에 ‘장자연 사건으로 본 연예부 기자의 5대 원죄’라고 제목만 바꿔 재 게재했다. 이에 변희재 대표가 재차 이여영 기자에 해명을 요구하자, 이여영 기자는 “서울신문NTN 측과 블로그의 글을 가져갔고, 이 회사와 관계를 정리했으니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 해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여영 기자의 해명도 거짓으로 드러났다. 서울신문 NTN 측은 “이여영씨와 외부기고 계약을 맺어, 모든 글은 이여영씨가 직접 올리고, 검토한 뒤 승인하고 있고, 계약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다른 입장을 전했다. 실제로 이여영씨는 여전히 서울신문NTN에 기고하고 있다.
이여영, 허위사실 유포 반복에 거짓말 해명까지, 기자 자질 없어
변희재 대표는 KBS 측의 입장과 별개로 “기자로서 잘못된 사실을 적시했고, 당사자가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었음에도, 이를 반영하기는커녕 잘못된 칼럼을 그대로 재게재하는 행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다른 연예기자들과 상의하여, 허위사실 칼럼을 게재한 미디어스와 서울신문 NTN 측을 언론중재위에 정정보도 요청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편 이여영 기자는 미디어워치에서 자신의 자질 문제를 거론하자 블로그에 “요즘 몇몇 보수단체와 보수단체가 주도하는 언론사가 제게 많이 가르쳐줍니다. 악의적인 인신공격도 서슴치 않고, 별 것 아닌 저까지 표적 삼아 공격을 해주시고. 뒤에 누가 있고, 누군 또 악용당하는지 알지만, 참고 또 참아 봅니다. 그들도 보수라는 기치 뒤에 숨어 사익을 추구하는 '완장 찬 사람들'일뿐인 걸. 그러다 나중에는 또 다른 쪽의 완장 찬 사람들로부터 똑같은 공격을 당할 것을 모르는 것 뿐인 걸. 인내하고 용서하고 사는 삶이 인간다운 삶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미디어워치의 지적을 정치적 음모론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변희재 대표는 “어떻게 서른도 안 된 젊은 기자가, 왜 이렇게 시종일관 정치적 음모론으로 접근하는지 마음이 아플 지경”이라며, “우리가 제기하는 문제는 이여영 기자는 공영방송의 고정 프로그램을 맡을 전문적 자질이 없다는 것과, 기자로서의 사실확인의 의무라는 기초능력도 안 된다는 것”, “그에 대해 본인의 자질을 입증하면 끝나는 것인데, 중앙일보와의 싸움에서 효과를 봤다고 판단해서 그런지, 정치세력의 뒤에 숨는 모습은 젊은 세대가 아니라 전형적인 낡은 386세대의 습성”, “이런 행태를 용납하면 진짜 실력있는 젊은 세대들이 정치꾼들에게 기회를 빼앗기는 격”이라 비판했다.
이여영의 지난 촛불 당시 블로그 게재글이 문제가 된 것은 집회 현장을 심층취재하지도 않고, 하루 정도 돌아본 뒤, "촛불집회에 배후세력이 없다"고 단언한 뒤, 촛불 비판 언론을 당파적이라 매도한 것. 당시 이여영 기자의 글은 다음 아고라에서 베스트로 오르며 인터넷에서 큰 논란이 되었지만, 기자로서 정확히 취재도 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판단을 내리며 언론사를 비난한 것은 기자로서의 기초 자질 부적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그러나 이여영 기자는 이 건 뒤에 권력에 맞서 싸우다 해직된 기자로 포장되며, 이병순 사장의 KBS 측의 지원을 받아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다.
다음은 이여영 기자의 논란의 촛불 선동글 전문
29일 오후 4시 정부가 미국산 수입 쇠고기 위생조건을 고시했다.
이 사실을 발표하러 온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짤막한 발표문만 낭독하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 후 농수산식품부 공무원의 지리한 브리핑이 이어졌다.
답답했다.
TV로 이 장면을 지켜보며,
‘복어 독’과 관련한 기사를 막 온라인으로 출고하던 참이었다.
마치 복어 독을 삼킨 것처럼 온 몸에 경련이 일었다.
저녁에는 선배들과의 회식이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참석해 흥을 낼 기분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흥을 깰 자신도 없었다.
그냥 카메라를 둘러메고 무작정 광화문을 향했다.
이때가 오후 7시경이었다.
택시를 탔다.
서울시청역 앞 광장은 아직 비어있었다.
대신 이른바 ‘닭장차’와 전경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탓에 프레스센터 앞에서 택시는 꼼짝 못하게 돼 버렸다.
내려서 무작정 걷기로 했다.
파이낸스센터 빌딩에서 청계천 광장으로 도는 거리 초입에서,
하필이면 ‘언론연대’가 세운 입간판을 보고야 말았다.
‘조중동 구독 거부 명단’이었다.
조선·중앙·동아 일보 구독을 거부하려는 사람들의 명함이 달려 있었다.
그 명함에는 거부 사유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 앞에 잠시 서서 생각에 잠겼다.
거부 명단에 올릴 명함을 달라고 조르는 이에게,
중앙일보 로고가 선명한 명함을 내밀고 취재를 해볼까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그만두기로 했다.
말다툼으로 번질 게 빤하기 때문이었다.
다시 한 번 자신의 용기 없음을 자책하면서.
7시 45분경.
서울 시청역으로 서서히 인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주요 대학의 대학생과 공공 부문 노조들,
그리고 퇴근 길의 3,40대 직장인들이었다.
촛불 집회의 오랜 주역인 10대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광화문빌딩 앞에서 오래 전부터 자리를 잡고 있던 3백여명은
시청 쪽보다 인적 구성이 더 다채로워 보였다.
교복 차림의 여학생 10여명은 ‘우리가 무섭지 않은가’라는
사제 구호판을 들고 있었다.
유모차를 앞세운 주부들도 몇몇 눈에 띄었고,
가족 단위 참가자도 적지 않았다.
예비군복 차림의 참석자들도 눈길을 끌었다.
‘이명박은 물러가라’는 구호가 가끔 터져 나오기는 했지만,
‘고시 철회’라든가 ‘협상 무효’ 구호가 더 자주 등장했다.
막간에는 젊은 참석자들이 나서서 제각기 집회에 나온 이유를 설명했다.
격려의 박수와 소탈한 웃음이 빈번하게 터져 나왔다.
전형적인 거리 시위라기보다는 월드컵 거리 응원에 가까웠다.
8시30분경 시청 앞 광장은 촛불 바다와 같은 장관으로 변했다.
냉철한 기록자가 되기에는
서울시청 맞은 편 플라자호텔 고층이 최적의 장소였을 것이다.
그러나 난 이도저도 아니었다.
참여자도, 기록자도 아닌 채 광화문 일대를 부지런히 쏘다닐 뿐이었다.
촛불의 물결을 쫓아서.
시청 앞을 떠난 시위대는 을지로와 종로 3가를 돌아, 광화문으로 향했다.
시위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즐거웠다.
그리고 또 평화로웠다.
일부 참가자가 차량이나 지하철 지붕 위로 올라가
구호를 외치려고 하기도 했지만,
주변의 만류로 이내 잦아들었다.
시위대 일부는 오히려 전경들을 밀치는 다른 참가자들을 적극 제지했다.
전경들에게 물병을 건네는 참석자들도 적지 않았다.
10시 30분 이후 집회 참석자들의 진로가 안국동 쪽을 향하자
경찰들의 연행이 시작됐다.
그러나 듣던 대로 특별한 저항은 없었다.
집회 내내 긴장 상태를 유지한 것은 정작 시위대를 둘러싼 전경들이었다.
청와대행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용으로 활용한 닭장차만이
묘한 적막감에 휩싸여 덩그라니 놓여있을 뿐이었다.
촛불 집회에는 배후 세력은 물론 지도부도,
심지어도 주최측마저 없어 보였다.
물론 행사를 진행하는 이들이 있었고,
참여자들에게 간단한 음료수를 나눠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각 정당과 시민사회 단체 등도 참석했다.
그러나 그들은 시청과 청계광장 곳곳에
각 단체의 팻말을 내걸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건 전시회에 얼굴을 내민 기업의 부스로 비칠 뿐이었다.
관람객인 대중들이 전시회를 이끌어가는 것처럼,
대중들이 철저하게 자율적으로,
촛불 집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었던 것이다.
그건 희한한 광경이었다.
8,90년대의 거리 시위를 예상했던 내가 오히려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이 일을 두고 좌파 세력이 배후라거나,
10대와 20대의 철부지 짓이라고 매도한다면
그건 결코 온전한 진실이 아닐 것이다.
그 반대로 촛불 집회야말로
한층 성숙해진 우리 민주주의의 징표가 아닐 수 없었다.
허기를 채울 요량으로 인근 식당에서 꽤 늦은 저녁을 시켜 먹었다.
그런데 허기가 가시는 게 아니라 속이 더 쓰렸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에 대해,
내가 몸담고 있는 중앙일보가 최근 기록한 것과
민심은 다시는 맞닿을 일이 없을 것처럼
멀어지고 말았다는 데 생각이 미쳐서다.
물론 언론은 단순한 민심의 기록자는 아니다.
그렇다고 민심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거나
훈계할 특권을 갖고 있지도 못하다.
진실은 과연 어느 쪽에 더 근접해 있을까?
우리 나라를 뒤엎은 정치적 당파주의와 사회적 냉소주의가
가장 가까워야 할 언론과 대중을 이분법적으로 갈라놓았다.
비록 나 자신은 직접 간여하지 못했지만,
지난 한 달여간 조중동의 보도가
다분히 당파적이고 냉소적이었다는 사실을
이제 나는 안다.
대중 역시 그에 당파적이고 냉소적으로 대응했지만.
쓰린 속을 달래려고 소주를 한 병 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안타까워서,
기어코 소주 한 병을 다 비우고야 말았다.
격변의 세월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하게 서 있는 광화문 네거리 교보빌딩.
그 빌딩 벽에 걸린 문구가 흐릿하게 눈에 들어왔다.
“사랑이여, 건배하자.
추락하는 모든 것과 꽃 피는 모든 것들을 위해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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