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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업보와 유시민의 약한 정신력

현실의 비판 잣대를 노무현과 친노세력에게도 적용해야

필자는 이미 작년부터 민주당은 좌익정당이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강한 이미지를 키우라는 조언을 했다. 이 강자라는 이미지는 절대 극렬 투쟁의 이미지로는 안 된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개념도 모호한 ‘서민’정당이라고 하며 ‘중산층을 위한’ 정당이라고 한다. 이런 말장난 같은 것으로 뭔가를 이루어 보려 하는 것은 결국 진짜 현실 속에서 서민을 잡은 정당에게 강펀치를 한대 한대 맞아나가는 것 밖에 되지 못하는 미약한 포지션에 머무르게 된다. 정책적으로도 민노당이니 진보신당 같은 한줌 밖에 안되는 약한 정당에게 얻어맞는 포스를 보일 뿐 아니라, 한나라당이 서민에 조금만 잘해줘도 이는 민주당에게 또다시 강한 펀치로 작용하는 것이다. 현재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민주당은 직시하고 전략을 새판에서 아주 다시 짜지 않는 이상, 돈키호테 같은 정신을 기반으로 한 집단 국참당에게도 참담한 모습을 보이게 되지나 않을지 걱정해야 하는 판이다.

민주당은 스스로 신자유주의 비판을 극복하지도 못하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호도에 그대로 직격탄을 맞는 당이다. 한나라당이야 국민들이 그런 방면에서 기대조차 하지 않으니 걱정할 것이 없는 정당이다. 그리고 도덕을 이용한 가치판단이라는 권력투쟁의 도구라는 회초리에 민주당은 빨개벗은 몸에 채찍이 그대로 꽃히는 약한 상태이지만 한나라당은 단단한 철갑옷을 입고 있는 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에 치명적이지 않다. (그러하기에 더욱<희망을 위한 경제관>을 보고 새로 전략을 짜야할 것이다.)

민주당은 기존의 노무현 세력이 정치적으로 철저히 실패했던 사실에서 도망가선 안된다. 이는 마치 야만정글의 룰이 지배하는 한국적 현실에서, 거짓 선지자의 나쁜 계도에 이끌려, 더러운 공동체가 손이 더러운 자들과, 더 이상 싸우지 말자고 악수 했는데, 사실 그 손들이 더럽다며 깨끗함을 추구하는 자연의 신에 룰로 나간다고 공동체를 떠났다가, 성스럽게(?) 빨개벗고 야만정글에 나와 자연의 순수함이라는 협소한 관념 속의 성스러움을 섬기려다, 나무와 가시에 연약한 어린아이와 같은 피부는 긁히고 상처나며 해충에 물어뜯기고 하다가, 자신이 떠난 공동체의 더러운 상인이라도 그들의 물질이 필요하다며 그들을 불러왔다.(이는 인간으로써 자연스럽다.) 그리고선 하늘에 스스로 죄 많다며 용서를 빌며 엎드리고 스스로를 바치는 모습을 취하며 제례나 드리다, 그 와중에 결국 그들에게 물질을 받은 듯했지만 발가벗고 신에 빌 당시 능욕당하고 겁탈당하고 발가벗겨진채로 내버려져 진후, 부모가 다시 와서 건사해주길 동정해주길 빌며 그대로 있다가, 이제 온갖 육식동물 야수에 살이 물어뜯기는 처지에 몰려있다가 그 내장은 대머리 독수리가 가져가고 남은 뼈는 하이에나가 핥아 발라먹었고 남겨진 뼈는 가끔 지나가다 핥아봄을 당하는 처지에 몰렸던 것을 이제 인식하고 직시해야만 그 자연적 룰에 의한 거친 잔혹한 결과의 무한반복의 순환의 역사를 깰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미약한 정신으로 사실을 외면하고 도망가려 하지 말고 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속하며 행했듯 깨어서 그 고통을 다 짊어지고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예수의 전 인류에 대한 죄의식은 현실 속에 권력자들이 죄의식을 통해 지배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인지해야 한다. 곧 거친 자연 속의 살아온 것이 죄받던 상황이었음을 인지해야 하나, 그 죄의식 때문에 부채감을 가져선 안 된다는 것이다. 죄의식과 부채감을 갖는 순간 지배받고 정복당하고 죄 받는 처지밖에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결국 촛불이나, 국회 깽판, 아내들의 신경질 발악과 같은 일발적 신경질 등 근본적 문제는 해결이 없이, 일발적 소동으로나 열악한 정서적 상황을 극복해 볼까 하는 행동 밖에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의 죄 인식을 통해 보아야 하는 것은 이제 우리는 예수가 우리의 죄를 씻어 줌으로 인해 죄의 부채를 벗어 자유를 얻었다는 인식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자신들이 타겟으로 정한 지지자들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마치 수염깎고 여성들에 휘둘리는 중심뿌리가 물렁한 남성의 모습을 노정하고 있는 것이다.

2. 민주당은 당세를 키우기 위해 촛불난동과 용산시위 사망사건, 미디어법 등으로 잡고 당 지지율을 올려보려고 하고 있지만 그 어느 시기 때도 민주당이 제대로 지지받은 적은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 지지율이란 것도 한 때 반짝이었을 뿐이지 절대 충성도 있는 지지자들로부터 지속되는 지지율은 나올 수 없음을 이제는 보아야 한다. 한나라당은 다시 97년 금융위기보다 더한 것이 와도 38%는 기본으로 먹고 들어간다는 평가를 받는 반면 말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눈치보고 환심을 사보려는 세력이 바로 이런 된장녀 같은 심성의 국민들이다. 된장녀에게 아무리 값을 높여가며 비싼 선물로 해 봐야 결국 원하는 것은 더 비싼 선물이고 남자로썬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요구를 하며 시험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다 결국 모자라다며 욕먹고 버려지는 것이다.

이러한 소수의 지지자들에 휘둘리며 자신의 가치조차 깎아먹고 민주당이라는 독특한 위치의 정당으로써의 성장과 발전은 방기되는 것이다. 동시에 그들의 요구는 사실 파괴적인 것이며 민주당은 마치 그러한 외형만 그럴 듯한 지지자들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싶어하지만 결국 사람들의 인상에 남는 것은 그들을 만족시켜 주지 못하고 내팽겨쳐지는 모자란 남성의 모습인 것이다. 결국 투자대비 남는 것은 없고 결국 이미지 손상과 발전만 저당 잡힌 결과만 남는다.

그리고 현 젊은 여성의 대다수가 미수다 발언 사건 등을 통해 된장녀인 듯 보이지만, 그 대다수가 결국 현실 속에서 된장의 길을 버리고 현실성을 갖추게 된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렇게 현실에 의해 교정당하는 것이 말없는 대다수의 여성의 상황이지만, 민주당은 항시 이런 된장녀에만 귀기울이고 기호를 맞추려 한다는 말이다. 그 된장녀들의 주장과 요구는 일순간의 극복 대상일 뿐이다. 결국 된장녀의 선택도 끝내 받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사귀어줌을 당하고, 그 방기된 대다수의 현실적 여성들에게 나쁜 인식을 주고 외면도 받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현 정권에선 기존의 친 호남(湖南)이자, 친서민적인 정책은 현 정권에 소리없이 빼앗기고 있다. 여기에 양심적인 정치인들이 영산강 사업이든 새만금이든 잘 되길 바란다고 솔직한 이야기를 하자 배척하고 그들을 내쳐야 한다는 친 된장녀적 정신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런 목소리가 당의 정신에 횡행하고 행동을 지배하면 기다리는 것은 여자한테도 휘둘리는 모자란 사내인 것이다. 사무용 컴퓨터 스펙 밖에 안되는 정당이라면 일단 무리하게 쓸데없이 깔려있는 인터넷 게임은 다 지워버리고 정말 필요한 사무용 유틸리티만 제대로 깔아 잘 사용해야, 가장 적합한 가치있는 산출물을 제대로 내놓는 것이 되고 이것이 정당으로써 강한자로 인식되는 첫걸음이다.

적어도 친 호남 정당이자 지지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라면, 예를 들어 4대강 사업이면, 투자금액이 지나치게 영남 쪽에 몰려있음을 지적하고 새만금으로 압박하고 얻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산강과 금강이 낙동강보다 다르게 특화시켜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 전국가 차원에서 더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 방법을 찾아 만들고 알리고 얻어내야 하는 것이다. 세종시 수정이라면 마찬가지로 세종시 대신 새만금을 제대로 하자고 해야하는 것이다. 지금 사실 새만금으로 가야 마땅할 것이 세종시로 가도록 하고 있는 모습은 보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새만금 개판치는 것은(이대로 가다간 새만금은 또다시 송도 신도시 등에 밀려 잉여일 수 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이미 욕 먹을대로 먹고 딱정이가 져 상관없는 수준이 되어 정치 지지면에선 더 이상 마이너스일 것도 없지만 민주당은 그렇지 못할 것이다. (세종시와 새만금에 대한 논설은 이 대통령 사과문과 토론을 본 후 다음 회에)
외지의 호남인들이 어떻게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투표로 넘어갔는지 노무현 정권의 땅값 폭등이라는 실책을 통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3.이렇게 보았을 때 현 정국에서 유시민씨는 어떠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가?
일단 필자는 올해 나온 그의 <후불제 민주주의>를 보고서 이미 정치권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싸인(sign)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싸인이라는 것은 그의 정신의 퇴폐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있는 것이다. 누구나 정치인은 될 수 있지만 적어도 최고의 자질의, 최고의 정치인이기 위해선 굳건한 지식인, 철학인이어야 한다. 정치인에 수요되는 자질이 보다 다양해지고 고대와 같이 혹독히 높은 것에서 내려온 것에 대해 동의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최고의 정치인이라는 덕목에 고대로부터 내려온 그 요구사항이 필요 없어진 것이 아니고, 여전히 요구되어지는 것이다.

필자는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한 때 유시민과 영적으로까지 통하는 면을 느낀 적도 있고 어린시절 많이 배우기도 했다. 그래서 유시민의원에 필자의 저서인 <인간혁명게릴라 경서>를 주기도 했고, 놀랍게도 <후불제민주주의>는 <인간혁명게릴라경서>와 비슷한 부분이 상당히 보인다. 특히 책 서두에 현 지구문명이, 그리고 한국의 현실이 인류역사를 통해 볼 때 그 어느 때보다도 복 받은 현실이라는 점을 강조한 점, 그리고 이렇게 되어오기까지 역사정신을 짚어 내려한 점, 그리고 그러한 역사의 신의 계명을 잘 수행해내야 한다는 점, 그리고 필자 또한 헌법으로 에세이를 써볼까 하는 필요가 있다는 생각까지 했었던 점 등 비슷한 면이 많고, 한때 무뇌빠로 오인 받을 만큼 노무현 대통령을 선의적으로 이해하려는 모습도 그처럼 보인 바있다. 아무리 탄핵 당시 스스로 사퇴해야 한다고 부르짖고, 이랔 파병은 범죄라고 비판했으며, 애초에 민주당을 깨고 나간 것부터 잘못이었다는 말을 했어도, 그가 대통령인 상황에 있던 만큼 노무현에 대해, 국민으로써의 응원과 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의 선의에서의 해석과 옹호는, 유시민과 유사하게 있어왔던 것이다.

동시에 한국사회의 문명 수준에 대한 깊은 회의라는 면에서, 그 인식의 비슷한 면에서 까지 비슷하여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이는 소위 진보라지만 민족과 국수주의까지 나가는 현실과 사못 다른 점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인식을 끝까지 인식의 틀 속에 가지고 있으면서 매 순간 한국사회에서의 상황을 격물하는 데에서 이를 외면하느냐 하지 않느냐라는 면에서, 유시민씨는 그 인식의 고통 때문에 자꾸 도망가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면은, 마치 그토록 정교한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기에 한국사회의 모자란 면을 깊숙이 통찰하고 있는 사람이 왜 지난 정권에 대해선 그 잣대를 그대로 적용해 보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것만 제대로 해도 유시민의 지금과 같은 돈키호테적 모험은 무리임을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돈키호테는 혼자서 오류를 겪고 해답을 얻었는지 모르지만, 한국의 민주주의와 개혁세력에게는 그 혼자 치르면 모르겠을 비용을 전부 치러야함은 사회적으로 그 기회비용이 너무 방대하기 때문이다. 돈키호테처럼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깊고 통찰력도 있지만 눈앞에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선 현실감 없는 친호적 감성이 앞서 전혀 현실성 없는 모험을 한다는 것이다. 그의 정신의 근육의 굳건한 발전을 위해 다시 한번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의 잣대를 노무현과 그 세력에도 그대로 해주길 바란다.

그러면 결국 결론은 장성민씨도 이야기 했듯 유시민씨는 민주당에 들어가 국회의원정도나 하면 알맞다. 돈키호테도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현실의 장에서 토로하고 또 교정받았으면 그 많은 오류를 낳지 않고 생산적으로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광증을 가진 사람을 현실의 장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현실감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 중요한 것과 같이 말이다.

그래서 민주당을 가르치려 들고 매우 다양한 진보개혁세력을 가르치려 들지말고 그 안에서 배우고 수정되어 더 높은 정신의 발전을 이루길 바란다. 이는 마치 근육을 키울적에 의도적으로 한 부위의 근육만 단련시키는 것이 아닌, 어떤 특정 운동 경기를 잘하기 위해 전체적 유기적 근육을 모두 발전시키는 것과 같다. 이는 현실 상황에서 훨씬 생산적이고 안정적이며 보완이되는 근육의 발전을 낳아 더욱 생산적이고 강건한 육체(여기서는 정신)와 같은 정신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한 근육만 지나치게 발전하면, 스스로 지탱하지 못하고 오히려 근육과 해당 신체 부위를 손상시키는 것과 같이 말이다.

소통을 중시하듯, 민주당 안에 있는 수많은 개혁의 목적을 위해 나온 목소리를 듣고, 집단 지성을 이용하란 말이다. 그 안에 그의 정신의 퇴폐기운을 지속적으로 청신하여 정신의 근육을 다시 세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자연적 감정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노무현과 그 세력들의 큰 과오를 직시하지 않고, 이것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패착을 낳았는지 그 과정과 요인을 하나하나 짚어서 분석하여 아는, 가장 기초적인 지식인이자 정치인으로써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활동을 운작시키지 않으면 그와 그를 감정적으로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세력과 함께 몰락으로 빠져들어갈 것이다. 곧 정서적 판타지를 위해, 외면을 습관처럼하여 시야가 좁아진 눈으로는 더욱 눈에 보이지 않는 블랙스완의 위력은 더욱 거대해져 당신들을 지배해버리고 삼켜버릴 것이라는 것이다.

마치 노무현, 386, 참여정부가 강폭한 정글의 질서가 많이 남아있는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피터팬을 꿈구는 어린아이같은 정신을 유지하며 거짓선지자의 계도에 따라 어린아이의 순진한 미약한 정신과 몸으로 하늘에 성스러움을 높인다며 옷벗고 열대의 정글에 빨개벗고 들어가다 거친 식물에 상처받고 해충에 물어뜯기고 잘못했다고 하늘에 빌다 따먹히고 몸은 그대로 내팽겨쳐져 혹시 하늘이 동정하며 구원해주겠지 하며 불쌍하게 있다가, 살은 야수에 물어뜯기고 내장은 대머리독수리와 하이에나가 발라먹고, 그 발라진 뼈는 하이에나가 가끔 와서 혀로 핥고 가는 상황으로 되었던 역사를, 스스로 외면하여 이를 자신들의 블랙스완으로 만들어버리면, 그것이 다시 도래하여 자신을 삼켜버리고 그 질서를 반복하여 지배해 줄 것이다.

이제 이를 인식 속에 기록하고 이를 세세히 분석하고 반성하는 회개를 하지 않고선 자연의 거친 질서에 의해 또 패배하고 피해받으며 결국 정복당할 것이다. (필자는 줄곧 촛불 난동, 용산 시위, 미디어 법 깽판 모두 어린아이같은 미약한 정신의 일발적인 감정적 발로였다고 했다. 이러한 모습은 결국 문명에 대적하고 도망가다 사라져버린 야만종족, 매번 신경질적 반항하다 얻어맞고 정신의 해리 기능을 돌려 망각하고 계속 같은 행태를 반복하여 뭔가를 일시적으로 얻어내려하는 낮은 수준의 여성적 정신의 민중들, 그리고 대부분의 어린이가 어른의 정신인 사회에 결국 통합되고 미성년당시의 일탈 청소년 무리의 일진은 결국 사라지고 마는 것임을, 지금 어느 곳에 자신의 정치 지지세력을 줄대고 서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자. 이 분석은 필자의 블로그에서 해당 글들을 찾을 수 있다. http://rbnkim.tistory.com)

친구에게 조언이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배는 이미 떠나버린 것은 아닌지 싶어 못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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