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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세대의 등장, 한국사회에 긍정적 영향 미쳐

기존의 88만원세대보다 더 의미있는 분석

한국사회에서 소위 G세대의 출현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G세대들이 한국사회의 내일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으로 광범위한 관심은 G세대에 포함되는 20대 초반 정도의 젊은 세대들이 얼마나 큰 비율로 존재하는가 등의 의심을 일으키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20대 초중반의 인구 중 G세대에 분류될 수 있는 사람이 어느 정도의 비율이냐를 논하는 것은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다고 본다. 필자는 오히려 한국사회에서 G세대의 등장은 일종의 필연이다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G세대들이 20대 초반의 인구 중에 얼마나 많은 비율로 존재하느냐는 사실 보다, 중요한 것은 G세대적인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사회의 변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가 더욱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이는 마치 김옥균 등의 개화파가 당시 조선인구 비율로 볼 때 극소수이나, 역사상 영향을 평가하기에 언급되는 것과 유사하다. 아니 그보다 훨씬 명확한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곧 분명한 것은 G세대라고 일컬어지는 부류의 사람들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존재한다는 사실이고, 이들이 한국사회의 긍정적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사실 G세대적인 특성은 30대 초반인 필자의 세대에도 중상류층이 아니더라도 이미 존재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지금의 G세대적인 특성은 필자의 이해하는 바로는 중산층 출신이 아니더라도 이미 가지고 있을 특징으로 여겨지는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이기에 그렇다. 이는 기존의 <88만원세대>라는 인식과 전혀 다른 인식이기도 하다. 사실 88만원세대가 존재한다고 인식하는 부류의 사람들조차도, 그 인식에 대해 거칠음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산층 이하 계층의 부류에서조차 G세대의 특성을 보이는 것은, 어찌보면 G세대들이 대한민국은 기회가 충만한 땅이라는 인식을 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곧, 20대 스스로 조차 88만원 세대라는 주장에 사실은 현실적으로 그리 공감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G세대에 속하는 것은 많은 비율로써 공감을 할 수 있는 사실이, 한국사회에 G세대라는 진단이 88만원세대라는 진단보다 더욱 중요하고 의미있는 진단으로써 다가오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기존의 88만원 세대 등의 주장은, 20대들의 어려움을 지난 세대 보다 부각시키며 그들이 정치세력으로써 위의 386세대들의 그것을 따라 짱돌을 던지는 가두시위 식의 정치연대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이는 이미 언급했듯 현실에 대한 편협한 인식일 뿐만 아니라, 그 해법에서 조차 편협한 역사인식을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88만원세대의 짱돌시위보다, G세대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한국사회에 결핍되어있던 부분을 보충하는 면에서의 장점이 훨씬 실현가능성이 있고, 현실적으로도 부작용이 적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제 폭동과 유혈시위를 통한 체제전복, 정권교체를 통한 진보는, 지구상의 좌익진영에서조차 더 이상 효율적인 방법인지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기에 그렇다.

G세대가 88만원세대 담론과 비교하여 한국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지고 올 수 있는 점에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들은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받는 명예라는 가치 추구가 아닌, 독특한 개인으로써의 자아실현에 더 가치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 기존의 시장을 더욱 분화되어 다양하게 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포화되어 있는 시장에 보다 많은 틈새시장과 블루오션 시장을 낳을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며 이는 사회적 부의 크기를 크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동시에 이렇게 분화된 시장과 보다 많은 진입자는 더한 경쟁을 낳아 상품의 질을 높힐 뿐만 아니라 해외시장 진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둘째로는 기존의 학생운동이 노정했던 문제인, 하나의 노선과 구호를 중심으로 모든 개인이 희생하고 뭉쳐야 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변혁을 도모하는 방법이 아닌 보다 다양한 부류의 개인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변화의 능동적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긍정적이다. 이는 기존의 주류적 집단에서 벗어나면 마치 인생이 끝날 듯 생존에 위기에 봉착한 듯여겨 극렬 투쟁을 도모하던 것을 벗어나, 보다 다양한 부류의 개인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뭉칠 수 있음을 알게 되고, 자신스스로의 컨텐츠를 키움으로 인해 커다란 생산을 올릴 수 있다는 진보적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학연, 지연, 혈연 등의 둔탁하고 적절치 못한 인간적 유대관계방식을 해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렇게 자신의 장점을 살려 자신의 경쟁력 있는 컨텐츠를 만들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배경에는 이미 중산층 비율이 두터워진 한국사회가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들은 당장에 88만원이나 비정규직 직종에 연연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컨텐츠를 키움으로써 훨씬 생산력 높은 인재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이러한 모험을 해도 생존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중산층에 속해있다는 안정감이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눈앞의 현실 논리에 연연하는 것이 아닌, 도전하고 모험하는 개인들에 의해 역사의 진보와 혁신적 부의 창출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제 관(官)주도의 경제발전에 한계가 다다른 한국사회에서 훨씬 긍정적 현상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셋째로 이들의 특성 중 지적 받는 점은 섬세한 감성이다. 곧 기성세대들은 크게 불만으로 느끼지 못하는 부분에 있어 이들은 보다 섬세한 감성으로 문제를 느낀다는 점이다. 이는 작은 정부와 경쟁력 있고 효율적이며, 수요자를 찾아가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목표가 맞추어진 세상에서 더욱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앞선, 섬세한 행정서비스는 한 사회, 국가의 경쟁력을 대변하는 것이듯이, 이러한 것에 민감한 부류가 생성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 내부적으로 바뀔 수 있는 역량이 생겨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단 국제 경쟁력과 이를 통한 부의 창출을 논하는 것만이 아닌, 인간 개개인의 삶의 만족, 행복도라는 측면에서 더욱 긍정적 기여를 할 수 있는 감성을 가진 세대라는 점에서 기대되는 바가 크다 하겠다. 현 시대의 법과 제도는 하나로 뭉뚱그려진 집단의 이익을 보장하고 지키는데 있지 않다. 어떤 집단의 극렬한 투쟁과 이를 통한 이익의 확보는 필시 목소리가 작고 연대되지 않는 수많은 인식 받지 못하는 소수집단,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소수집단의 불평등을 낳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법, 제도, 행정 서비스는 이러한 부류의 사람을 찾아내고 찾아가 서비스 하는데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는 상황인데, 여기에도 88만원세대라는 둔탁하고 커다란 집단을 설정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집단의 이익이라는 기치 하에 짱돌 던지며 법과 제도를 만들어 내도록 종용하는 방식보다, G세대의 섬세하고 다양한 감성이, 보다 섬세하고 조심스런 법과제도, 행정 서비스를 창출해 낼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생산적이고 진보적이라 하겠다. 이는 마치 둔탁한 칼로 고기를 써는 것과 보다 예리한 칼로 고기를 써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각종의 섬세한 요리를 창출해 내는 것과 비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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