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학생들의 움직임이 범상치 않다. 20대 대학생들은 높은 등록금과 취업난에 시달리며, 잠재적 사회적 불만세력으로 편입되어왔다. 현 정부에 대해서도 20대는 30대 바로 다음으로 가장 비판적인 세대이다. 이런 20대들의 불만은 우석훈 박사의 ‘88만원세대론’으로 이론적 기틀이 잡혀왔다. ‘88만원세대’라는 책이 사회과학 서적으로는 보기 드물게 10만부가 팔려나가는 흥행 대박을 터뜨리기도 했다. 2010년 들어 물밑어서 확산되어왔던 20대들의 사회 불만의식은 김예슬씨의 고려대 경영대 자퇴 대자보, 서울대 채상원씨의 지지 대자보가 이어지면서 점차 공론화되고 있다.
지난 10일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김예슬씨는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제목이 붙은 전지 3장 분량의 글에 취업경쟁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의 현실을 호소했다. 그는 글에서 “이제 나의 적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이다. 국가와 대학은 자본과 대기업의 '인간 제품'을 조달하는 하청업체가 되었다”며 자퇴를 선언했다. 김예슬씨의 글은 고려대학교 내에서는 물론 인터넷상에서 큰 논란이 되었다.
곧이어 서울대학교의 사회과학대생 채상원씨가 같은 취지의 대자보를 학교에 게재했다. 채상원씨의 경우 자퇴가 아닌 싸움을 선택했다. 채씨는 29일 오후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건물 앞에 붙인 '오늘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 아니 싸움을 시작한다'는 제목의 대자보에서 "대학이란 곳은 본격적인 무한경쟁의 닫힌 공간일 뿐, 우리에게 어떤 삶의 의미도 방향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예슬에 이어 채상원, 신자유주의와의 싸움 선언
그는 “세상은 이미 변화의 물결을 타기 시작했다. 보수적 인사들이 아무리 사회주의적 발상이다, 포퓰리즘이다 해도 우리 국민 대다수는 이제 무상급식이 아주 상식적인 정책이고 필요한 정책임을 느끼고 있다”, “경쟁 일변도의 신자유주의의 피해들이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뿐 아니라, 이 기존의 가치들이 더 이상 아무런 대안도 제시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이 싸움은 더욱 절실하다”고 호소해했다.
채씨는 "격변의 시기,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우리를 구속하는 대학 내의 모든 구습과 싸워야 한다"며 "대학생들이 병든 대학 사회의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고 스스로 대학의 주인으로 거듭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힘을 합쳐 (대학과 자본의 거대한) 탑을 흔들고 우리들의 새로운 탑을 세우자"고 덧붙였다.
현재 20대들의 움직임이 단지 이 두 명의 학생의 대자보로만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4월 1일 민주노동당의 김진성 대학생 후보는 부산시의원에 출마할 것을 선언했다. 김씨는 “이미 이 사회가 만들어놓은 고액의 등록금과 88만원 세대라는 굴레는 대학생들에게 끊임없는 희생만 강요하고 있는 것”,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꿈을 꾸는 대학생들의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있으며, 얼마 전 많은 대학생들의 지지를 받으며 사회의 큰 논란이 되었던 고려대 김예슬 양의 자퇴 선언 또한 이 사회가 강요한 선언이라 생각한다”며, “대학생들의 정치 세력화를 위한 대학생 후보로서 부산 지역 모든 대학의 대학생들을 만나며 청년실업과 등록금 문제를 이슈화시켜내고 대학생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만들어내겠다”며 출마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기존의 운동권이나 노조와는 성격이 다른 청년세대 조직도 만들어졌다. 학원 강사를 하고 있는 김영경씨는 ‘88만원 세대 노조’라는 이름을 걸고 3월13일 출범시켰다. 기존 기업별·산업별 노조에서 소외된 아르바이트생, 인턴, 청년실업자, 취업준비생, 단기취업자, 비정규직 등 15~39살을 가입 대상으로 하는 국내 최초의 청년노조다.
김영경씨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시간당 최저임금인 4110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한 달 월급이 4인 기준 최저생계비인 136만원에도 못 미친다. 내년 최저임금을 오는 6월 결정하는데, 최저임금을 현실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 “장년층은 실직하면 대부분 실업급여를 받는다. 청년이 구직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정부에 요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영경씨는 진보정당에 대해서도 “진보 진영도 청년을 이용하려고만 하지 실질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 청년실업에 대해 청년들의 입장에서 말하고는 있지만 정말 청년을 위해서인지 청년의 표를 얻으려는 건지 확신이 안 선다. 진정성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최근 20대들의 움직임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인터넷에 익명으로 불만을 털어놓는 수준을 넘어, 자신의 실명을 걸고, 대학을 그만둔다거나, 출마를 선언한다거나, 조직을 건설하는 등 실천적 단계로 들어섰다는 점이다. 97년 IMF 이후 대기업과 공기업이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20대들이 안정적이라 판단되는 직장의 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그뒤 10여년이 지난 뒤 20대들이 본격적으로 사회적 참여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90년대의 20대들 혹은 2000년대 초반의 20대들과 달리 2010년도의 20대들이 앞다투어 자기 선언, 혹은 운동적 실천을 하는 데에는 다양한 사회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일단 대학 등록금 수준이 20대들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울 정도로 높아졌다. 인문대학을 기준으로 국립대학의 경우 한 학기에 300만원 정도이고, 사립대학의 경우는 600만원 정도 된다. 등록금의 과도한 인상은 20대들의 자립성을 크게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스스로 등록금을 벌어서 대학을 다닐 수 있는 시대가 끝나고, 20대가 되어서도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오히려 더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예슬씨가 자퇴서에서 부모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한 것도 이 때문이다.
비명문대생들은 벌써 학업 포기하고 있어, 명문대생들의 뒤늦은 선언은 넌센스
이와 반면 대학 졸업장이 줄 수 있는 특혜는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 학생 입장에서 부모에 고통을 주면서까지 고액의 등록금을 낸 뒤 얻을 게 없기 때문에 대학에 대한 회의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채상원씨와 김예슬씨의 경우 서울대와 고려대라는 이른바 스카이 대학 출신이어서 화제가 되었지만, 지방 사립대의 경우 이미 90년대 벤처붐 시절부터 수많은 학생들이 자의와 타의로 학교를 그만두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이 서울대와 고려대까지 뒤늦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사립대학을 다니다 사업을 시작하며 대학을 그만둔 실크로드CEO포럼의 한 회원은 “이미 비명문대 학생들은 자신이 내는 등록금에 비해 교육서비스나 사회적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어, 학업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명문대생들이 뒤늦게 그만두게 되니,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넌센스”라며 문제점을 꼬집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을 가볍게 보기에는 20대가 처한 현실은 객관적 지표로도 매우 척박하다. 지난해 6월 전경련의 조사결과 취업과 학업 자체를 포기한 15세 이상 29세 이하의 청년인구가 무려 113만명으로서 공식적 청년실업자인 약 30만명의 세 배를 넘어섰다. 또 지난해 8월 한 구직 사이트의 조사결과 20대의 47.2%가 현재 뚜렷한 목표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5년 후 당신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있습니까'를 묻는 질문에는 전체의 65.4%가 '잘 모르거나 없다'고 답했다.
중소기업과 청년창업기업이 제 때 성장하지 못해, 사태 악화
치열한 글로벌 경쟁을 해야하는 대기업이 더 이상 청년층 고용창출의 부담을 떠안을 수 없고, 공기업 역시 끊임없이 구조조정을 해야하는 상황을 맞으며, 이제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게 존재하기 어려워진 반면, 이를 밑에서 떠받쳐주어야 할, 중소기업과, 청년창업기업이 제 때에 성장해주지 못하면서, 20대들이 취업에 있어서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이다. 또한 각 기업에서는 명문대학 간판만으로 인재를 뽑는 방식에서 실질적 능력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흐름이 바뀌고 있다. 더구나 로스쿨의 도입으로 명문대생들이 택할 수 있었던 고시의 길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즉 대기업과 공기업 이외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20대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놓지 못했기 때문에, 20대들이 차라리 국민세금으로 모든 걸 해결하자는 사회주의적 노선으로 급격히 쏠리고 있는 것이다.
청년유니언노조의 김영경씨도 “임금 격차부터 근로조건, 안정성 등에서 너무나 차이가 난다. 먼저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를 줄여야 하지 않을까. 정부 대책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고 본다”며 이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있다.
이러한 20대들의 반란이 6월 지자체와 교육감 선거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 정치권에서는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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