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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리, 김예슬 20대들에게 묻고 싶은 것

대학에서 돈과 시간이 없어 책을 읽지 못한다는 게 진실인가

4월 8일자 조선일보 아침논단에 ‘20대 반란 더 프로답게 하라’는 칼럼이 게재된 뒤, 4월 13일자에 이화여대 법학과 4학년인 이혜리씨가 ‘20대의 반란이 투정이라니’라는 반론글을 게재했다. 이혜리씨는 그 글에서 “프로 수준의 실력이 없으면 혁명은커녕 반란도 시도할 수 없다는 게임의 법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라는 조언에 마음이 아팠다. 현재 20대들의 앞에는 '실질적인 선택권'이 놓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가 스스로 정책 시장의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낙오하는 것을 받아들이라는 식의 논리는 선(先)세대로서의 무책임함을 보여줄 뿐이다”라고 나의 주장을 반박했다.

현재의 20대 담론은 88만원세대론과 G세대론으로 양분되어있고 각각 구조와 개인을 상징한다. 88만원세대론은 사회구조 개혁을 강조하고 G세대론은 개인의 능력을 강조한다. 반면 실크로드CEO포럼이 일찌감치 주장한 실크세대론은 구조와 개인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

사회구조를 바꾸는 것이야말로 가장 탁월한 능력을 필요로 한다

내가 조선일보의 칼럼에서 주장한 것은 청년세대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대학과 취업, 창업시장 등의 사회구조의 변화가 필요한데, 사회구조를 바꾸는 것이야말로 가장 탁월한 능력이 필요한 작업이라는 것이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한민국의 게임의 법칙을 청년세대에 유리하게 바꾸는 작업은 오직 정책시장의 경쟁을 통할 수밖에 없고, 이를 위해서는 청년 개개인들의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혜리씨는 이에 대해 “지금 이 순간에도 당장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생활이 힘들어지는 대학생이 많다. 그런 학생들에게 반란을 프로답게 하려면 책이나 많이 읽으라는 조언은 사치로 보일 뿐이다. 그것은 돈 걱정 없이 여유롭게 책 읽을 수 있는 사람의 행복한 고민밖에는 안 된다. 프로만이 사회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한다면 아마추어들은 입을 열지 말라는 것인가”라며 문제제기를 했다.

나는 한 명의 학생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대학 등록금 문제와, 대기업과 공기업을 제외하곤, 인생의 꿈과 희망을 걸고 취업할 만한 중소기업 혹은 청년벤처기업의 시장이 너무나 좁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치열한 정책에 대한 학습을 하여, 정부의 정책 관료들이나 국회를 설득해야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2001년도에 대학을 졸업한 94학번으로서 지금의 대학생들이 돈과 시간이 없어서 책을 읽을 수 없다는 주장만큼은 아무리 이해하고자 해도 전혀 공감할 수 없다.

학생들과의 토론을 피하는 대학교수가 있는가

2001년도 이후에 아무리 대학이 초고속으로 상업화되었다 해도, 여전히 인문대학과 사회대학이 존재하고 있고, 수많은 인문사회 및 자연과학 관련 교양강좌가 개설되어있다. 나의 대학시절을 돌이켜봐도, 굳이 따로 독서를 하지 않아도, 프랑스 고전의 이해, 독일고전의 이해, 대중예술의 미학, 경제학원론, 커뮤니케이션 이론, 대중문화의 이해 등등 인문사회 강좌를 통해서 사회구조와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학습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이런 강좌들이 2010년에는 다 사라졌다는 말인가.

최근 자퇴 대자보를 게재했던 김예슬씨가 관련 책자를 출판하며 “그래도 젊은 시절을 바쳐서 대학에 들어갈 때는 캠퍼스의 낭만도 꿈꾸고, 진리탐구도 꿈꾸고, 또 사회 불의에 저항하는 뜨거운 젊음도 꿈꾸고 했는데, 꿈이 깨지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던 것 같아요”라는 식의 주장을 한다.

물론 취업난이 가중되면서 대학의 분위기 각박해지는 흐름 자체는 인정할 수 있으나, 한 개인이 대학에서 진리탐구 혹은 사회적 저항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아무리 고민해봐도 과장된 측면이 있어보인다. 심지어 친노좌파 성향의 한 교수는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이 토론하는 문화도 사라졌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그럼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교수와 학생들이 진리탐구를 위한 토론을 벌이는 문화를 조성할 수조차 없다는 말인가.

자꾸 내 개인의 이야기를 해서 하나의 체험을 일반화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도저히 납득이 안 되니 자꾸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2001년도까지 이어진 나의 대학시절 중 내가 어떤 주제를 갖고 교수에게 공식 강의 도중이든 혹은 사적으로든 질문공세를 편다거나 토론을 하자고 했을 때, 이를 거부한 교수를 나는 만나본 적이 없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의 한 교수, 언론정보학과의 한 교수, 불문학과의 한 교수, 독문학과의 한 교수, 미학과의 한 교수 등등 수업시간이든 사적으로든 귀찮을 정도로 이것 저것 물어봐도 단 한 명의 교수도 이를 기피한 사례가 없다. 이미 대학 2학년 때부터 학비 (서울대의 학비가 워낙 저렴했던 측면도 고려한다)와 생활비를 모두 스스로 벌어서 다녔고, 3학년 이후에는 사실 상 직장생활을 했음에도, 끝까지 4학년까지 마쳤던 이유도 바로 이런 교수들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럼 2010년도에는 이런 대학교수들이 다 사라졌는가. 책을 읽는 것을 방해하는 교수가 있는가, 책을 많이 읽었다고 입사시험에서 떨어뜨리는 기업이 있는가.

대학의 토론문화를 막는 주범은 운동권 사회

나의 체험으로 볼 때 오히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대학이 자본화되었다고 비판하기 이전에 이미 80년대부터 한국의 대학에서 자유로운 진리탐구와 토론을 하는 문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몇몇 소수의 의지있는 학생들이 스스로 찾아서 했을 뿐이지, 대학이 바뀐 게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진리탐구든 사회적 저항이든 다 할 수 있지 않냐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대학에서 이른바 사회저항을 한다는 운동권류의 학생들이야말로 대학의 진리탐구와 토론문화를 막는 주범이라 보고 있다. 수십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낡아빠진 운동권 교리나 주입식으로 세뇌교육을 시킬 뿐이지, 스스로 현대사회 문제를 풀어나간다거나 역사를 탐구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내가 대학 4년 내내 고민했던 것은 대학사회의 아젠더를 장악한 운동권 학생들이야말로 어떻게 저렇게 공부를 하지 않고 자기 주장들을 마음대로 하느냐는 문제였다.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면서 신자유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학생조차 만나본 바 없다. 기업의 구조조정을 반대한다면서 기업이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을 경우 부도는 어떻게 막을 것인지 고민하는 학생도 만나본 바 없다. 소수의 운동권 학생들이 대학가의 아젠더를 장악하고, 대다수의 학생들이 무관심 속에 자신의 개인의 관심에만 매몰되어있는 것이 현재이든 과거이든 한국의 학생사회의 모습이 아니던가.

지금의 20대들의 목소리에는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내용들이 빠져있다. 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데 무엇 때문에 못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꿈과 희망과 구체적인 정책대안이 결여되어있다는 것이다. “교수와 학생과 함께 진리탐구를 하고 싶어요”, “대학에서 낭만을 즐기고 싶어요”, “사회적 저항을 하고 싶어요” 이런 것들은 의지있는 사람들이라면 얼마든지 하면 된다.

그러니까 내 입장에서 지금의 20대들의 반란이 운동권 신입생들의 어린아이 투정이라고 비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의 공교육과 사교육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여 공교육을 확장하여 누구나 저렴한 학비로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면서도, 사립대학에는 기여입학제를 포함한 100% 자율권을 주는 정도의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려면 밤새 공부해야 한다. 또한 공기업의 비효율성을 제거하여, 민간영역을 활성화시키고, 대기업은 글로벌기업으로 치열한 경쟁을 하도록 사회분위기를 만들어주면서, 청년기업을 육성하여 신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문제도 밤새 공부해야할 사안이다.

김예슬씨는 경영대학 학부 폐지 운동을 해보면 어떨까

이와 더불어 경영학과가 학부에 존재하여 전체 학생들을 경영학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을 하도록 조장하는 문제, 이것도 시급히 해결해야할 문제이다. 이 점에서 김예슬씨에게 고등학교 시절 무엇을 배우고 싶어서 대학의 기업화를 위한 첨병 경영대학에 입학을 했고, 경영대학에서 무엇을 안 가르쳐주어서 불만이었는지 묻고 싶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공부가 더 필요하지만 학부의 경영대학만 최근의 법과대학처럼 최첨단 대학원 MBA 과정으로 다 끌어올려도 대학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크게 변할 것 같으니 말이다. 이왕 대학의 문제점을 짚어낸 김예슬씨에게 학부에서 경영대학을 폐지하는 운동을 한번 해볼 것을 권해본다. 무엇을 하나 하더라도 구체적인 정책을 하나 잡으라는 말이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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