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미디어워치에서는 고려대 경영학과 김예슬 학생의 자퇴서, 서울대 채상원 학생의지지 대자보, 또한 청년세대 노조 조직인 청년유니온 등을 소개하며, “20대들의 사회주의적 반란이 시작되었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바로 한 주가 지나면서, 20대들은 지자체 출마를 선언하고, 정치단체를 창립하고,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제 연합단체를 구성했다. 미디어워치의 예상대로, 20대들의 움직임이 6월 지자체 선거를 목표로 매우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5일 민주노동당 20대 기초의원 후보 5명이 오는 6·2 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민노당 20대 기초의원 후보자들은 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 자리에는 민노당 강기갑 대표를 비롯해 서울시의원 비례후보 추성호 한국외대 총학생회장, 부산시의원 비례후보 김진성 부산대 총학생회장, 경남도의원 비례후보 유은주 경상대 총학생회장, 대전 유성구 가선거구 후보 박찬 카이스트 총학생회장, 충북 청주시의원 비례후보 장우정씨 등이 참석했다.
추 비례후보는 "88만 원 세대의 미래를 바꾸려면 20대의 고통을 대변하는 20대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며 "대리인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마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20대를 절망으로 내모는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려면 힘을 모아야 한다"며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권리는 투표권 뿐"이라고 강조했다. 20대들은 정치권에 도움을 요청하는 차원을 넘어 스스로 정치를 하면서 사회 변혁을 이끌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진보신당 심상정 전 대표, “88만원세대 적극 끌어안을 것” 공언
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으로 분당되기 전부터 이른바 88만원세대를 적극 끌어안겠다는 선거전략을 짜놓고 있었다. 이러한 의사를 가장 적극적으로 표명했던 인물은 현재 진보신당의 심상정 전 대표이다. 즉, 민주노동당이 현재까지 5명의 20대 지자체 후보를 내세웠다면, 심상정 전 대표가 이끄는 진보신당은 훨씬 더 많은 20대 후보를 수도권에 내보낼 가능성이 높다. 지역구 당선까지는 어렵다 하더라도, 현 정부에 매우 비판적인 현재의 20대의 여론 구조 상, 의미있는 득표와 비례대표의 경우 당선까지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20대들의 정치참여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 2월 창립한 한국청년연대는 이번 지방 선거에서 20대들의 투표율을 88%까지 올리겠다는 88%세대 운동본부도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이 주목한 것은 20대들의 낮은 투표율이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의 투표율을 보면, 20대 후반 남성유권자의 투표율은 27.4%이지만, 최고의 투표부대인 60대 이상의 투표율은 70.9%에 달했다. 2008년 총선의 경우는 더 심각해서 20대 후반은 24.2%, 60대 이상은 무려 78.7%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들은 바로 이러한 투표율 탓에 20대들의 권익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판단, 이번 지자체 선거 때 20대의 투표율을 88%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정했다. 더불어 이들은 청년들의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전자투표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전자투표제는 이미 시스템이 완료되어 정당 간의 협의만 있다면 시행 가능한 것이라, 6‧2지방선거에서 최소한 시범실행이라도 하자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20대들의 투표율 50%만 넘어도, 당락 결정 수준
이들은 단순히 투표율만 높이는 운동을 넘어서 정책토론회와 공동행동을 통해 청년실업의 올바른 해결과 위협받고 있는 민주주의와 민생을 지키기 위한 정책과 공약을 생산하고, 이를 청년들의 목소리로 후보들에게 요구하는 운동을 펼칠 것을 공언하고 있다. 이들의 움직임은 지자체 선거의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20대의 투표율이 88%까지는 아니더라도 50%만 넘더라도, 당락을 결정할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20대들의 활동은 실질적인 경제영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청년실업 100만시대’를 해결하겠다며 청년연대, 청년유니언 등 전국 106개 청년·학생·시민사회단체들은 청년실업네트워크를 발족했다. 이들은 발족선언문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300만 일자리 창출은 실현되지 않았고 정부는 청년실업에 대해 근본 대책과 해결책 없이 청년들의 눈높이 탓만 하고 있다”며 현 정부의 청년고용 정책을 비판했다. 이와 함께 정부에 청년고용의무제 도입과 청년고용예산 확충, 1회용 청년인턴제 폐지, 청년실업자에 대한 구직촉구 수당 지급 등을 요구했다.
청년실업네트워크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년고용대책 공약을 의제화하는 활동도 추진 중이다. 이들은 유권자운동 단체들과 연대해 지방선거에 청년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실업대책을 촉구하는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년 관련 일자리 정책 개혁을 내세우고 있지만, 선거 기간에는 정치조직형 활동을 하겠다는 의지도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민주노동당의 20대 후보로 출마를 선언한 추성호 후보는 청년실업네트워크 발족식에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는 이 노량진에서 여러 젊은이들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살아가고 있다. 떨어지면 또다시 아르바이트와 취업을 준비하며 회색빛 삶을 살아간다”며 “지방선거에서 20대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해결하자”고 20대들의 단합을 주문하기도 했다.
중앙대 학생들 기업식 구조조정 반대한다면 고공시위
이들 이외에 이미 투쟁을 시작한 20대들도 나오고 있다. 지난 8일 오전 서울 한강대교에서 중앙대 국어국문과 표모씨(20)와 철학과 김모씨(20)는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 중앙대 기업식 구조조정 반대'라고 적힌 현수막을 걸고 고공시위를 벌였다. 중앙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오늘 10시에 학교 구조조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이사회가 열렸다"며 "이사회 결정이 나면 교과부에 구조조정안이 보고돼 더 이상 막을 도리가 없어서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중앙대는 지난달 학교 산하 18개 단과대, 77개 학과를 10개 단과대, 46개 학과·학부로 통폐합하는 내용의 구조조정안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학과 통폐합과정에서 통폐합 혹은 폐지 대상이 된 모집단위를 중심으로 논란이 일고 있었다. 이번 중앙대 학생들의 고공시위는 단지 이러한 단과대 통폐합 뿐 아니라, 1년에 천만 원이 넘는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다녀도, 변변한 일자를 구하지 못하는 20대들의 불만이 표출된 사건이다. 즉 향후 이러한 유형의 대학 관련 시위는 빈번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의 이러한 20대들의 움직임은 전체 사회개혁이 아니라 20대 본인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러 나섰다는 점에서 기존의 좌파 운동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러니 조직도 스스로 구성하고 있고, 정치권 진출도 스스로 선언하고 있다. 대학등록금과 취업난이라는 20대는 물론 30대까지 피부에 와닿는 공감할 만한 주제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지지층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오히려 이들의 움직임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 친노좌파 정당이 뒤에서 받쳐주며 상호 도움을 주고 받고 있다. 386세대의 낡은 정치조직이 선동하여 이끌어냈던 광우병 촛불시위와는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한겨레, 고려대 자퇴생 김예슬 사르트르에 비유
또한 한겨레신문, 시사IN, 경향신문 등 친노좌파 매체들은 이들의 움직임을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한겨레21과 시시IN은 지난 3월 20대들의 반란을 특집기사로 기획하기도 했다. 한겨레신문은 고명섭 책팀장의 칼럼을 통해 고려대를 자퇴한 김예슬 학생을 지식인 사르트르에 비유하면서 “이 땅의 수많은 김예슬들과 함께 ‘불의에 대한 저항’의 꿈을 꾸어야 한다. 대학이 죽은 지식인들의 묘지여서는 안 된다”며 각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친노좌파 매체들이 20대들의 움직임 거는 기대는 사실 상 올인 수준이다. 친노좌파 매체 입장에서는 민주당, 평민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등으로 분열되고 있는 기존의 친노좌파 정치세력으로는 정권을 탈환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 판단하고 있다. 이럴 때 20대들이 스스로 나와주었기 때문에 친노좌파 매체로서는 이들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는 셈이다.
20대들이 처한 환경, 20대들이 그간 익혀놓은 네트워크 실력, 친노좌파 매체와 정당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20대들은 6월 지자체 선거를 전후로 막강한 세를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바야흐로 불쑥 사회 중심으로 들어서게 될 20대들을 어떻게 받아들여할 것인지, 중도우파진영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워야할 시대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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