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선진당 이회창 전 대표가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내년 총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하고 나선 것. 이 전 대표 본인은 "한미FTA 피해대책을 먼저 마련한 뒤 비준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당론을 정하고 이를 진두지휘해 왔지만 결과적으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 책임을 통감한다"며 총선 불출마 선언 이유를 댔지만, 정가와 언론의 분석은 다르다.
정치지형 변화를 앞둔 상황에서 이 전 총재가 마지막 대선 출마를 위한 회심의 승부수를 던졌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 전 대표는 특히 "(총선 불출마가) 정계 은퇴와는 상관없다"고 했고, 내년 대선역할과 관련해서는 "그것은 이 자리에서 말씀드릴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향후 정치적 역할에 대해 해석의 여지를 충분히 남긴 셈이다.
현재 보수우파 진영은 기존 한나라당 중심의 통합작업 보다는 ‘박세일 신당’ ‘보수신당’ 등 분화 조짐이 뚜렷하다. 한나라당이 덩치만 큰 ‘초식공룡’의 이미지로 제 역할을 못하자 소위 애국진영과 중도보수 진영이 각각 신당창당을 모색하면서 물밑 작업이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보수우파 진영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이 전 대표가 자연스럽게 이 흐름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전 대표가 선진당 당론을 깨고 거친 몸싸움이 예상되는 한미FTA 국회 비준안 표결에 참석해 찬성표를 던진 것도 이 전 대표의 의지를 확인하는 하나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선진당 창당 후 세종시 고수 등 그간 지역 정치인으로서 이미지가 굳어졌던 이 전 대표는 한미FTA 찬성표를 던짐으로써 과거와 같은 위상과 면모를 되찾았다는 평가다. 선진당의 이상민 의원은 그런 이 전 대표를 향해 “한나라당으로 떠나라”며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내면서 탈당까지 요구했다.
야권에서 안철수, 문재인, 한명숙, 유시민 등 각기 개성을 달리하는 대선후보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반면, 상대적으로 여권이 박 전 대표를 제외하고 현재 눈에 띄는 후보가 없다는 점도 이 전 대표에게 유리한 점이다.
여권의 잠룡으로 꼽히는 김문수 경기도지사, 정몽준 전 대표 등은 최근 여론조사에서(리얼미터) 각각 3.0%, 2.0%를 얻어 차기 대선 경쟁에서 야권 후보에 한참 밀리고 있다. 이 전 대표 역시 같은 조사에서 1.9%란 미미한 지지율을 기록하고는 있지만, 세 번의 대선출마를 통해 얻은 인지도와 특히 지난 대선에서 무소속으로 15%의 득표를 얻었던 저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많다. 2040 젊은 우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으로 알려진 ‘디시인사이드’ 정치.사회 갤러리에서 ‘이회창 향수’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 정치분석가는 “비박·반한나라 신당이 만들어지는 등 보수진영이 헤쳐모이는 재편 과정에서 친이계가 합류하고 여권의 대선주자들이 계속 지리멸렬할 경우 이 전 대표가 대표주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그런 뒤 단일화 경쟁에 뛰어들어 박근혜 전 대표와 경쟁한다면, 이 전 대표가 예상을 깨고 깜짝 스타가 될 수도 있다. ‘조건만 만들어 진다면’ 이라는 전제가 붙긴 하지만, 어려워 보이는 이 전 대표의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다. 흔히들 정치는 생물이라고 하지 않나”고 전망했다.
실제로 조선일보는 22일 ‘이회창 총선 불출마… 보수 대연합 승부수?’란 제목의 기사에서 친이계 핵심 인사들이 최근 이 전 대표와의 만남을 타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하면서, 이 전 대표가 이재오 전 특임장관을 비롯한 한나라당 친이계나 중도 신당론을 설파 중인 박세일 한반도선진화 재단 이사장과 함께 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이 전 대표측 관계자는 "이 전 대표는 합리적 보수와 중도층을 포괄하는 '보수 대연합'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다만 박근혜 전 대표가 이끄는 한나라당에 입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여권의 대권후보 자리를 놓고 박 전 대표와의 경쟁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해석이 충분히 가능하다.
정치권이 이른바 정계개편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드는 가운데 그 과정에서 이회창 전 대표가 과연 어떤 역할을 하게 될 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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