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효(孝)와 복지 공약
한나라당 대표 시절 박근혜 당선자의 눈빛 속에 서늘한 고독이 자리잡고 있음을 본 적이 있다. 항상 웃음 띤 얼굴이었지만, 큰 눈과 눈빛은 어떤 외로움을 말하고 있었다. 후일 필자(筆者)가 그 외로움을 이해한 것은, 지난 여름 아버님이 타계하시면서, 두 분 양친을 모두 여윈 이후였다.
부모님이 없다는 것은 뿌리가 사라진 나무와 같다. 서 있어도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은 의지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부모 없는 자식은 휴가 때나 명절 때 찾아갈 곳이 없다. 때론 안식을, 때론 위로를, 때론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안식과 위로와 사랑이 사라진 자식의 삶은 오래도록 외로움이 지배하는 법이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랄까. 필자(筆者)는 박근혜 당선자의 눈빛 속에서 찾아낸, 님의 아주 오래된 고독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헛헛한 쓸쓸함에서 갈망하는 것은 그리움이었고, 그 그리움은 부모님 연배의 노인들을 뵐 때마다 더욱 애틋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동네어른들을 뵐 때면 웃음이 일어나고, 길거리에서 만나는 노인의 무거운 짐을 받아드는 것은 모두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마치 우리 어머니 같게 느껴지기에 시장터 할머니 단골이 된 적도 있었고, 우리 아버님을 잘 안다기에 단골로 다니는 정육점도 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었을까. 자식이란 그렇게 오래도록 부모님을 잊지 않는다는 것을, 박근혜 당선자의 그 큰 눈빛을 보며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당선자께선 선거 유세를 다니면서도 노인들을 만나면 그렇게 환한 웃음을 지었는가 싶다. 노인들 앞에 서면, 마치 내 부모님을 보는 듯한 안도감이 온 얼굴과 몸짓에 나타나던 박근혜 당선자. 환갑이 지난, 풍상 많은 얼굴이 앳된 어린아이처럼 느껴지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부모님 앞에 선 어린아이, 그리고 주위에 퍼지던 천진스러운 웃음.
당선 후 박근혜 당선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온갖 노고를 다하여 자식을 길러내고 조국을 수호해 주신 어르신들의 노후는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노인복지의 각오를 다짐하던 그 얼굴에서 필자(筆者)는 마침내 효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못 다한 효,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가득한 그리움의 표현은 아니었을까. 불의의 사고로 양친을 잃은 당선자는 어쩌면 다하지 못한 효에 대한 서러움을 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필자(筆者)의 방안엔 부모님 두 분의 영정을 모신 영실(靈室)이 있다. 비록 돌아가셨지만, 매일 아침 얼굴을 뵙고 있다. 그립다. 오늘 아침은 박근혜 당선자의 복지에 대한 약속을 생각하면서, 그 속에 스며있는 효성스러운 마음을 읽고 있다.
아침이 새로운 하루이듯이, 박근혜 당선자의 지금은 새로운 날일 것이며, 님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부디, 나라를 부(富)하게 하시어, 이 나라에 님의 효(孝)가 가득하기를 바란다.
정재학
전국논객연합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인, 전추연 공동대표. 자유지성300인회 회원, 전국자유교조 고문, 데일리저널 편집위원, 프론티어타임스 . 인사이드월드 . 라이트뉴스 칼럼니스트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