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작년 12월로 돌려보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대선 캠프는 시간을 그야말로 초 단위로 계산하며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계속 앞섰던 박근혜 후보는 문재인 후보의 막판 뒷심을 경계해야 했고, 문 후보는 안철수 바람까지 보태 마지막 총력을 기울였던 시기였다. 특히 막판 세몰이와 그 파급 효과는 대선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만큼 민주당 캠프는 여론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웠을 터다. 당연히 언론 보도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른 게 우리말이라고, 방송과 신문 기사 토씨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했을 것이라는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문 후보에 대한 사소한 기사, 문장, 단어 하나가 어떤 폭풍을 일으킬지, 그 ‘나비효과’를 ‘경계’하고 ‘기대’했을 것이다.
민주당의 그런 초조함이 겉으로 드러난 사건이 MBC 대선보도 개입 사건이었다. 작년 12월 15일 폴리뷰는 문재인 후보 측이 MBC 보도에 개입한 사건을 특종으로 보도했다. 문 후보 측이 뉴스데스크 방송도 안 된 내부 송고 상태의 기사 내용을 훤히 알고,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기사 내용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꿔달라는 요구를 했다. 누가 봐도 정치권력이 언론에 개입한 사건이고, 명백한 외압이었다. MBC 측 인사는 이 사건에 대해 누군가 실시간으로 내부 정보를 빼돌려 민주당에 제공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기막힌 소감까지 털어놨다. MBC 노조 측이 이전에도 데스크 뉴스 편집에 종종 간섭을 한 사실이 있다는 증언과 민주당과 MBC 노조 측의 긴밀한 관계를 볼 때, 우리는 그 ‘누군가’가 누구일지는 확증은 없지만, 심증으로 충분히 추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무관심과 냉소에 빠진 보수언론이 외면하고, 언론노조와 한패거나 눈치를 보는 모든 언론이 외면했던 이 사건이야말로 권언유착의 전형이었다. 정부여당의 언론개입은 나쁜 개입, 야당과 언론노조의 개입은 착한 개입이라는 시대착오적이고 멍청한 도식에 빠진 이가 아니라면, 모든 상식인들이 들고 일어날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군사정권 시절 정부여당에 대항하기만 하면 모든 면죄부가 주어지던 그 시절에서 아직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시적 굴곡은 있지만, 국민의 민주의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성숙해가는 반면 정작 국민보다 반걸음 이상 앞서야 할 언론의 민주의식은 아직도 쌍팔년도에 머물러 있는 수준임을 보여줬다.
YTN 국정원 SNS 보도 중단을 놓고, YTN 노조와 언론이 쌍심지를 켜고 오버하고 있는 모습이 그래서 우습고 황당하기만 하다. 정권 교체기마다 힘 있는 권력자를 사장으로 데려오기 위해 발 벗고 나섰던 정치노조의 추악한 면모가 폭로된 마당에 YTN 노조가 국정원 외압을 떠드는 것도 민망하기 짝이 없고, 작년 민주당 대선 보도 외압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됐을 것으로 의심되는 MBC 노조가 그 주제에 YTN 보도 건에 끼어들어 편들고 나선 것도 어이없는 일이다. MBC 노조는 YTN과 국정원 비난에 침을 튀길 게 아니라, 작년 MBC 대선 보도에서 노조가 어떤 일들을 벌였는지 양심고백부터 해야 한다. YTN 노조도 멀리 갈 것 없이 이명박 정권 때 정권 실세를 접촉해 사장으로 모시려던 자신들의 권력 해바라기 짓부터 반성해야 한다.
언론에 대해 한마디 더 보태고 싶다. 미디어 비평 웹진 미디어스는 3일
국정원 문제는 정보기관의 잘잘못을 떠나 이미 여야의 정쟁 도구가 돼 버렸다. 그렇게 된 데에는 언론노조의 정략적 국정원 때리기도 한 몫하고 있다. 정쟁의 도구가 돼 버린 상황에서는 ‘국정원이 만든 대통령’ ‘박근혜 당선무효’ ‘3·15 버금가는 부정선거’ 등 구호를 아무리 떠들어봐야 다수의 국민 눈엔 진영싸움으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국정원 나쁜 놈들”이라고 비판하는 국민 중에서도 댓글 73개로 대선 결과가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언론이 국정원이 국내 정치 개입에서 손 떼고 국가안보를 담당하는 전문가 집단으로 거듭나길 정말로 원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정쟁의 소모품으로 전락한 국정원을 더 심한 똥통으로 끌어들이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YTN 노조, MBC 노조, 더불어 KBS 본부노조 등 언론노조 집단과 미디어스 등 언론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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