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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성재기 대표가 애국진영에 던진 선물과 과제

성재기 대표의 빈소를 지키며

지난 7월 25일 남성연대 홈페이지에 성재기 대표 명의로 운영난 탓에 “내일 한강에 투신하겠다”는 성명서가 올라왔을 때도, 전체 애국진영에서는 “설마 목숨을 버리지는 않겠지”라는 정서가 팽배했다. 애국진영 전체적으로 워낙 재정적 어려움이 누적되어, “돈이 없어 죽고 싶다”는 말들은 수시로 주고 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몇이 직간접적으로 성재기 대표에 확인해본 결과 “투신 퍼포먼스를 통해 재정난을 극복해보려는 기획”이라는 말들을 전해들었기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필자의 판단으론 노들섬이나 잠수교 정도에서 투신 퍼포먼스를 하고, 남성연대 회원들과 “더 열심히 투쟁하겠다”는 결의 정도를 할 거라 예측했다. 그러나 26일 성재기 대표의 투신 장면이 찍힌 사진이 공개되자, 애국진영에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필자도 남성연대와 가까운 강태호 PD 등등에 확인 전화를 돌렸고, 반대로 필자에게 어버이연합 추선희 사무총장, 독립신문의 신혜식 대표 등등으로부터 성대표의 안부를 묻는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추선희 사무총장과 신혜식 대표는 애국진영에서 필자와 자주 재정적 어려움 관련 대화를 많이 나누었던 동지들이다. 이 둘은 성재기 대표와는 큰 인연이 없었음에도, 이 때문에 동병상련의 감정을 공유했던 것이다.

강태호 PD는 성재기 대표와 마지막 문자를 나눈 것을 필자에게 전해주며 “일찌감치 한강을 빠져나와 잠시 숨을 돌리고 있을 것”이란 의견을 전해주었다. 필자 역시 성재기 대표의 체력과 운동능력이라면 한강 정도는 능히 빠져나왔을 거란 믿음을 잃고 싶지 않았다. 이 상황을 트윗에 올리자, 수십여개의 언론에서 보도되기도 했다. 이제와서 밝히자면 그것은 하나의 믿음과 바람이었지, 객관적 분석은 아니었다. 그날 밤 미디어워치 사무실에서는 “어렵지 않냐”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었다.

유족들 취재 자제해달라는 요청, 조선일보 등 다수 언론 수용해줘

비가 쏟아졌던 주말을 지난 뒤였던 29일 월요일 오후 결국 성재기 대표의 시신이 서강대교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서강대교는 미디어워치 사무실에서 직통으로 보이는 다리였다. 이때까지 남성연대나 유족들과는 강태호 PD를 통해 소식을 주고 받았다. 특히 성재기 대표의 부인의 심신이 매우 불안정하다는 보고가 계속 들어왔다. 또한 장례를 치를 친족도 마땅치 않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이에 필자는 강태호 PD를 통해 장례 절차 등에 대해서는 미디어워치 직원들이 도와줄 수 있으니, 상주를 지정해주면, 바로 준비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얼마 후, 바로 강태호 PD를 통해 한승오 남성연대 사무처장이 상주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에 미디어워치 직원들은 저녁 9시경 여의도 성모병원 장례식장 6호실로 이동하여, 현장 상황을 확인하고 빈소를 차리는 등의 준비를 시작했다. 한승오 사무처장도 밤 11시 정도 도착했다.

첫날 밤의 상황에서도, 조선일보와 SBS 등 기자들이 빈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들 관심사는 유족들이었다. 필자는 유족은 상 기간 내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기자들에 설명했다. 또한 같은 언론사를 하는 입장에서 “어차피 이건 사회적인 사건인데, 나타나지도 않을 유족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말아달라”고 부탁 및 조언을 하기도 했다. 이미 성재기 대표의 부인에 대한 각종 정보들을 파악하고 있었던 조선일보의 경우 그 때문인지, 유족에 대한 보도는 일체 내보내지 않았다.

남성연대 측에서는 빈소에 촬영금지문을 붙여놓는 등 취재를 거부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언론사를 운영하는 필자의 입장에선, 취재를 거부해봐야, 어차피 기사가 쏟아질 텐데, 차라리 유족을 제외한 다른 취재에 적극 협조해주면서, 긍정적 보도를 이끌어내야겠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필자가 빈소 현장을 지키게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진중권의 음해로 시작된 친노종북 언론의 부관참시 막는데 총력

29일 당일 친노종북 논객 진중권은 성재기 대표의 죽음을 조롱하며 “표창원과 공지영만 말렸다”는 거짓선동을 시작했다. 진중권이 노린 점은 애국진영 전체를 성재기 대표의 죽음을 방관 및 이용하는 사이비 종교와 같은 세력으로 음해하려는 것이었다. 실제 인터넷언론에서 이 관련 보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에 필자가 주력했던 홍보 방향은 성재기 대표는 자살을 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위험한 퍼포먼스를 기획했다가 사고사를 당한 것이고, 강태호PD 등 주위의 여러사람들이 우려하고 만류했으며, 단지 돈 1억원 때문이 아닌 남성연대가 추구해온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한 시도였다는 점이었다.

빈소를 찾는 기자들에게도 이 지점을 수차례 강조했고, 직접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또한 상주 역할을 하느라 정신이 없던 남성연대 직원들을 대신하여, 남성연대 공식 성명서 초안을 작성해주기도 했다. 미리 남성연대 직원들에 양해와 동의를 구해 성명서는 국민사과문의 형식으로 구성했다. 어쨌든 성재기 대표의 죽음을 막지 못한 남성연대 직원들이 국민들 앞에서 사과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어떤 경우도 성재기 대표의 죽음이 미화될 수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다만 성재기 대표가 죽기 전에 추구했던 남성연대의 가치만큼은 남은 직원들과 애국진영이 승계하여 더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 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취재에 협조를 하면서, 각종 보도들도 조금씩 유족과 남성연대의 취지를 반영해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빈소에는 전국의 2030 남성청년들이 몰려들었다. 이에 대해선 성재기 대표의 강한 캐릭터가 그 원동력이라 보지만, 트윗과 인터넷을 통해, 친노종북 매체들의 음해를 막는데 힘을 모은 황장수 소장 등 애국논객, 뉴데일리, 올인코리아 등 애국언론들의 역할이 컸다고 본다. 2030세대 청년들이 당당하고 떳떳하게 빈소를 방문할 수 있을 정도로 여론이 호전되었던 것이다.

성재기 대표 빈소엔 애국진영에서 볼 수 없었던 젊은 에너지 모여들어

성재기 대표와 큰 인연은 없었으나, 빈소를 방문한 어버이연합의 추선희 사무총장, 박성현 뉴데일리 주필, 시민협의 최인식 상임집행위원장 등등은 어떠한 조직 동원도 없이 자발적으로 몰려든 2030세대 청년들의 모습에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애국진영에서 늘 60대 이상의 원로들이 주를 이루는데 반해, 성재기 대표의 빈소에는 90%를 2030세대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어버이연합에선 회장단까지 빈소에 방문하기도 했다. 분명히 성재기 대표의 빈소에선 그간 애국진영이 놓치고 있었던 젊음의 활력이 모여들고 있었다.

이튿날 밤 한 종합일간지의 문화부 차장이 방문했다. 필자와는 오랜 인연이 있고 기사 기획에 대해서도 자주 의견을 주고 받는 사이였다. 그는 밤 12시부터 새벽 3시까지 줄곧 빈소 복도에 앉아, 이를 오가는 청년들을 관찰했다. 그 역시 친노종북 진영 이외에 애국진영에서 젊은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것에 대해 시종일관 놀라고 신기해 했다. 필자는 그에게 더 이상 한반도 남쪽 땅에 안주하지 않고, 진취적인 자유통일을 통해 자신의 삶을 찾으려는 새로운 청년세대가 등장한 것이라 설명했다. 당연히 이들은 친노종북 세력이 가두어놓은 박제와 같은 여성성에서 자유롭게 벗어나게 된 것이다.

이튿날부터는 민주당의 최민희 의원, 개그맨 남희석, 이철희, 최영일, 곽동수 시사평론가들이 빈소를 방문했다. 주로 성재기 대표와 국회 토론 및 방송에서의 인연이 있었다. 그 다음날에는 전원책 자유경제원 원장,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 하태경 의원, 강용석 전 의원, 채널A 앵커 이언경, 레이싱모델 김나나, 넥센의 투수 김영민 등등도 방문했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청년들 이외에 그래도 유명인사들이 참여해주면서, 필자는 안도를 하기도 했다. 생전에는 제대로 못챙겼지만 그래도 가는 길을 외롭게 하진 않았다는 안도감이다. 성재기 대표는 빈손으로 갔지만, 애국진영에 큰 선물과 과제를 던져준 셈이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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