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일개 SNS 이용자에 대한 네티즌들의 마녀사냥을 부추겨 빈축을 사고 있다.
전남대병원에서 전공의로 근무하는 조모씨는 지난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라도 섬노예 사건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했다.
그는 ‘문화상대주의가 특수한 문화의 자생적 질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모든 문화를 용인하는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그것이 사실은 인간답지 못하게 살 권리를 존중하겠다는 얘기일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라며 포문을 열었다.
'문화상대주의'로 섬노예 문제를 정당화하는 것을 비판한 조모씨
27살에 전라도 한 섬의 보건지소장으로 근무하며 섬노예에 관련한 지역 주민들의 인식을 접할 수 있었다는 그는, 당시 지역 유력인사들에게 섬노예 문제의 부조리를 얘기했다가 “현실을 네 생각으로 재단하지 말라”는 면박을 당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지역민들이 인권착취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한 ‘지역적 특수성’을 문화상대주의라는 포장으로 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들의 인권 보다 나의 돈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화 상대주의의 본질이다”라며 인권을 유린하는 기득권자들이 문화상대주의라는 방패를 내세운다고 비판했다.
그는 말미에 “이것에 대처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들만의 삶이 있는 것이라고, 문화는 상대적인 것이라고 눈 감고 넘어가는 것이다.”라며 당시 면박을 줬던 사람들과 문제를 인식하고도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은 공권력을 비난했다. 또 섬노예의 이면에는 특수한 상황들이 복잡하게 얽혀있기에 인권의식 신장과 함께 지역경제발전이 이루어져야만 악순환을 끊을 수 있으리라고 진단했다.
문맥 상 조씨의 글 여러 곳에서 섬노예 문제를 정당화하는 ‘문화상대주의’를 비판하는 논지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섬노예 문제가 발생하는 구조적인 원인에 대한 소개와 그가 비판하려는 대상의 주장이 뒤섞여 있어 일부 독자들은 그의 논지와는 정반대로 그가 비판하고자 하는 주장을 그의 주장으로 오해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더구나 ‘전라도 의사’라는 특수한 신분이 오해에 더해져 글의 일부가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등 온라인상에 퍼져 네티즌이 맹비난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섬노예 문제 관련 공익제보자였던 조모씨, 조선일보에 의해 섬노예 옹호자로 돌변
여기에 8일 저녁 조선닷컴도 가세했다. 조선닷컴은 해당 사태와 관련 “‘노예제도’는 자생적으로 생겨난 하나의 질서일 뿐…”이라는 요약과 함께 “현직 의사가 '전라도 섬노예' 관해 페북에 올린 글 보니…”라는 제목의 기사를 메인에 걸었다.
조선닷컴 허자경 기자는 조씨의 글이 “‘똑똑한 척 하면 재수없냐? 아니면 남자로서 지적매력이 돋냐(있어보이냐)? 부디 후자이길 빈다.ㅋㅋ’며 말문을 열었다.”고 소개해 악의적인 의도를 드러냈다.
허 기자가 만약 글의 내용을 온전히 전달할 생각이 있었다면 지인들에게 하는 농담이 아니라 “(문화상대주의라는 것이) 사실은 인간답지 못하게 살 권리를 존중하겠다는 얘기일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라는 글의 실질적인 서두부터 옮겼어야 옳다.
그러나 허 기자는 조씨가 글에서 시종일관 문화상대주의라는 명분을 내세우는 사람들을 비판했다는 사실은 숨긴 채, 섬노예 현상에 대한 설명과 그가 비판의 도마에 올려놓은 사람들의 생각을 그의 것으로 오해하게끔 적어놓고는 ‘사회 전체적인 인권의식의 신장’과 ‘경제적인 발전’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며 마무리를 지었다. 조씨가 글을 통해 비판하려는 핵심이 ‘문화상대주의’라는 섬 사람들의 자기정당화였다는 점은 조씨에 대한 마녀사냥을 부추기기 위해 일부러 감춘 것으로 보인다.
단편적으로 소비되는 인터넷의 특성상 네티즌들은 글의 내용을 오해할 수도 있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오해한 부분을 해소시켜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양방향이 아닌 단방향의 막강한 언론 권력을 가지고 글의 내용을 의도적으로 왜곡해 마녀사냥을 유도하는 조선일보의 태도는 미디어윤리 측면에서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손석희 논문 표절도 1면에 못다루는 조선일보, 정작 일개 SNS 이용자는 만만한가?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안티조선 운동이 벌어졌던 과거에도 제기됐던 조선일보 특유의 ‘억약부강(抑弱扶强, 약한 자를 억누르고 강한 자를 도와줌)’에서 빚어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JTBC 손석희 사장의 논문 표절 문제도 1면에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조선일보가 정작 일개 SNS 이용자의 글 하나에 분노를 부추기는 기사는 주말 내내 1면에 계속 걸어놓는 의도가 뭐겠냐는 분석.
조씨는 미디어워치와의 전화통화에서 “섬에서 근무하던 당시 섬노예 인권유린을 저지하기 위해 SBS 방송사 등 외부에 사실상 가장 먼저 제보해 공론화시켜 언론의 관심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었지만, 금세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져 같은 문제가 되풀이 되어 좌절했다”며 “현상의 본질을 알리고 해결방법을 도모하고 싶어 지인들이 주로 보는 공간에 글을 적었는데 의도가 잘 못 전달돼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조씨는 조선일보와의 대응과 관련해서 "언론중재위 제소는 물론 조선닷컴 내에서 기사에 명예훼손성 댓글에 대해선 쓴 당사자와 조선닷컴 양측에 소송을 제기할 것이며, 포털사이트에 송고된 기사의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 댓글에 대해서도 포털과 조신일보 양측에 소송제기할 예정"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제 글이 이렇게 논란이 될지 몰랐네요. 제 글의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되고 있어, 억울한 마음이 좀 듭니다. 부족한 글 실력으로 길게 쓰다보니, 오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처음부터 천천히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제 글을 요약하면 이러합니다.
*
인권 유린은 문화상대주의로 옹호해서는 안된다.
노예제도는 섬 환경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질서이다.
그곳의 모든 사회 시스템과 사고방식은 이것을 옹호한다.
(긴 이야기는 이것의 형성과 유지 이유를 살펴 본 것)
- 이것을 상대주의로 눈감아서는 안된다.
본질적인 해결은 인권신장+경제발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
섬 노예 문제에 저만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본 사람은 얼마 없을 것입니다. 수 차례 언론에 다루어져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모습을 보며 한숨 쉬었던 날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저 또한 언론에 이 문제를 제보하여 방송 나간 적도 있습니다.)
방송이 나가면 논란이 되었다가, 수일이면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져 또 다시 지속되는 악행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이런 제도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사회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와 공권력은 알면서도 건드리지 않고 있으니까요.
이런 일회성의 뉴스와 관심이 아니라, 본질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예제가 유지되는 근본 이유를 살펴보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해 보려함이었습니다.
저는 공인이 아닙니다. 제 개인적인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제 허락없이 기사화 시킨 것에 대하여 유감입니다. '입맛에 맞는 발췌'라는 편집으로, 제 의도와는 다르게 기사화 한 것에 유감입니다.
우리는 지금 소수자의 인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제 직장과 직업까지 거론하며, 제 의도와는 전혀 다른 내용의 기사를 통해, 저는 지금 사회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한 개인의 인권이 무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기자님께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가능한 모든 후속조치를 밟아 주십시오. 그렇지 않을시, 저 또한 가능한 모든 공적 방법을 통해 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똑똑한 척 하면 재수없냐? 아니면 남자로서 지적매력이 돋냐?
부디 후자이길 빈다. ㅋㅋ
#
하나의 폐쇄된 집단은 자신만의 독특한 자생적 질서를 가진다. 이는 그 집단이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외부의 자극이 없다는 전제하에 유지된다.
문화상대주의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서로 다른 집단의 자생적 질서를 이해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한다. 하지만 안타깝지만 딱 거기까지다. 우리가 문화상대주의를 고려해야 할 부분은 다른 문화를 바라보는 자세에 국한되어야 한다.
흔히 문화라고 표현되는 이 자생적 질서는, 사실 문화마다 그 가치에 절대적인 차이가 있다. 상대적으로 모두가 옳다라고 할 수 없다. 역사는 진보하고, 인간은 더 나은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다. 인권이 억압된 구시대의 문화를 접한다면, 그들이 우리와 동등한 인간의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함이 진정한 인도주의다.
상대주의란 그런 구시대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을 비난하지 말자는 것이지, 결코 그들의 문화이니 건드리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이해하고 더 나은 세상으로 이끄는 것이 올바른 것이다.
현재는 문화상대주의를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어, 모든 문화를 터치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것이 사실은 인간답지 못하게 살 권리를 존중하겠다는 얘기일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여기에는 어떤 불순한 의도가 끼어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간다.
#
27살에 나는 어느 외딴 섬의 보건지소장으로 근무했다. 지소장 명함 덕분에 섬의 유력자들 모임에 낄 수 있었다. 파출소, 우체국, 농협등 기관장들의 모임이었다. 파출소장과도 친분이 쌓여 '노예'문제에 대해 말을 꺼낼 수 있었다. 하지만 코가 삐뚤어지게 밤새 술을 마시며 내가 들은 충고는, 현실을 내 생각으로 재단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열정으로 가득한 20대였고, 세상을 바꾸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다. 실제로 '노예'를 부리고 있는 염전주인과도 친해져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섬의 수 많은 일반 주민들과도 얘기를 했다. 심지어 내 진료실을 찾은 실제 '노예'들의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만난 누구도, 나쁜 사람은 없었다. 그 곳 또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노예'제도는 그들이 살고 있는 환경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하나의 질서일 뿐이었다. 한국 사람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며 '개고기'를 먹듯, 그 곳 사람들은 '노예'를 부릴 뿐이었다.
#
인권의 기본은 경제력에서 나온다. 오늘 먹을 점심을 걱정해야 할 사람은 자유를 꿈 꿀 수 없다. 우리가 어떤 다른 문화에 참견할 수 없는 이유 또한 경제적인 부분에 있다.
그들의 문화에 손을 댄다는 것은, 그들 또한 우리만큼의 인권을 누리게 해줘야 함을 뜻한다. 어떤 문화를 보편적인 인권 차원에서 잘못되었음을 고치려 든다면, 보편적인 인권을 보장해 주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 기본은 주로 경제적인 것이다.
자생적 질서는 주어진 환경에서 수많은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다. 이는 그들의 일상에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외부 자극에 의해 이 중 어느 하나가 부서진다면, 그들의 모든 삶은 엉망이 되고 만다.
염전은 섬의 주요 산업이다. 여기서 생산된 소금으로 섬에 돈이 유통된다. 이 돈이 섬의 경제를 유지하는 근간이다. 이 염전은 노동집약적이다. 염전으로 인한 이득은 통상적인 인건비를 넘어서지 못한다. 즉, 노예를 싼값으로 부리지 못한다면 염전은 수익을 낼 수 없다. 염전은 문을 닫아야 하고, 이는 섬 경제의 초토화로 이어진다.
노예제를 근절하려는 외부자극은, 섬의 톱니바퀴를 파괴한다. 그들 입장에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이의 해결은 경제적인 대책밖에 없다. 이들이 다른 방식으로 경제적인 이득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우리는 그것이 쉽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렇다. 문화상대주의는 대부분 이렇게 해서 득세한다. 그들의 경제를 책임질 수 없기에, 우리는 그들 나름의 문화를 인정해야 한다는 변명을 댄다. 그리고 그들끼리 먹고 살도록 내버려둔다. 그들의 인권 보다 나의 돈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화 상대주의의 본질이다.
#
노예들은 대부분 자유의지가 없다. 그들이 노예가 되었던 이유, 그리고 그들이 노예로 살았던 세월은 그들의 자유의지를 없앴다. 조선시대 노비들이 신분제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은 그들의 처지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자신의 의지로 노예로 살기를 택했다. 최소한 먹을 것과 잠잘 곳은 제공되지 않던가!
대부분의 노예들이 폭력과 구타로 감금당하고 일을 강요받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들은 중요한 생산도구이고, 구하기 어려운 인력이다. 농경시대에 소는 재산목록 1호였다. 소중한 소를 때리고 병들게 할 농민은 없었다. 섬의 노예들도 마찬가지다. 염전 주인의 입장에서 그들을 박하게 대할 이유는 전혀 없다. 다만, 그들 사이의 계약이 일반적인 관점에서 굉장히 불합리하다는 것 뿐. 하지만 서로의 동의하에 일어난 계약이기도 하다.
매달 받은 용돈을 수개월간 착실히 모아서, 육지에 나가 성매매를 하고 다시 돌아 온 한 노예도 있었다. 그는 얼마든지 그 신분에서 탈출 할 수 있지만,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그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지만 너무나 당연하게.
이들은 스스로 경제적인 활동을 해 낼 능력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염전 주인을 포함한 섬 사람들의 인식은, 오히려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나가봐야 굶어죽거나, 범죄를 저질러 사회에 물의를 일으킬 놈'이기에, 그런 인간들을 거둬주고 돌봐주고 있다고 여긴다. 실제로 이들 중 밖으로 나간 이들은 대부분 그러한 경과를 밟았다. 이런 관점에서 이들은 오히려 공익적인 일을 하고 있는 셈이 된다.
즉, 이 문제를 접하고 분노만 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상호동의 하에 일어난 불합리한 계약의 문제. 또한 이 불합리로 인해 실제로 사회 전체에 이득을 생산하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 대한 생각의 차이. 이런 관점을 넘어서지 않는다면 그냥 싸구려 동정을 베푸는 것에 불과하다. 사회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사람들의 생각은 정말 다양하다. 물론 그것들이 모두 옳다는 것은 아니다.
#
하루이틀 된 문제도 아니고, 공권력 차원에서도 이미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는 이유를 정리하면 이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노예 자신들이 자유의지를 가지지 않고 있다.
주민들은 노예제에 대한 죄책감이 없다. 따라서 스스로 교정의지가 없다.
- 이상이 내부적인 요인
섬 경제가 파탄 날 경우 그 경제적인 부분을 어떻게든 해결해줘야 한다.
이들이 대책없이 사회로 내보내질 경우 상당한 혼란을 야기하게 된다.
- 이상이 외부적인 요인
#
이런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이 얽혀 있기 때문에 이것이 지속되고 있다. 이것에 대처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들만의 삶이 있는 것이라고, 문화는 상대적인 것이라고 눈 감고 넘어가는 것이다. 실제로 이것은 비단 섬 노예 문제만이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본질적인 방법은, 사회 전체적으로 인권의식의 신장 + 경제적인 발전. 이것만이 끊임없는 고리를 끊을 열쇠라고 생각한다. 원론적인 얘기밖에 할 수 없어서 안타깝다. 그렇지 않다면 섬 내부에서 혁명가적인 인간이 나타나든지, 아니면 외부에서 이 문제 해결을 위해 평생을 희생할 인간이 나타난다면 의외로 빨리 해결될지도 모르겠다.
다만 지금과 같은 이런 일회적인 뉴스만 가지고는 변하지 않을게 틀림없다. 현실도 모르는 먹물들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 쯤으로 치부될게 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시간이 흘러 한 두 세대가 더 교체된다면, 저절로 사라질 문제이기도 하다. (어차피 농어촌은 사라진다.)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