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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유칸후지, 한국 반일좌파가 공개한 ‘위안부 학살 영상’ 반박 칼럼 게재

위안부 안전 위해 후방배치 지시했던 일본군, 학살할 동기 없었다...일본군 장교 회고록 제시

일본 산케이신문의 자매지 ‘유칸후지(夕刊フジ)’가 근래 한국에서 반일좌파 언론을 중심으로 집중 보도한 ‘일본군의 위안부 학살 영상’에 대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유칸후지는 3월 3일자로, ‘‘위안부 학살 기록’ 신빙성 의문 “새로운 발견 아니다”, 저널리스트 이시이 다카아키 씨 긴급 기고’ 제하의 칼럼을 게재했다. (원문 바로가기: 『慰安婦虐殺記錄』に大疑義 「新発見ではない」ジャーナリスト・石井孝明氏緊急寄稿)



안보와 전쟁사를 전문으로 하는 언론인인 이시이 다카아키(石井孝明) 씨는 이 칼럼에서 우선 ‘위안부 학살기록’과 관련하여 “사진은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 발행한 〈‘위안부’ 문제 조사보고·1999(「慰安婦」問題調査報告・1999)〉 에 수록된 논문, ‘윈난·버마 최전선의 위안부들 - 죽은 자는 말한다(雲南・ビルマ最前線における慰安婦達-死者は語る)’에서 이미 소개된 것이며 새로운 발견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서울시와 서울대 인권센터는 지난달 27일 ‘일본군 위안부 국제컨퍼런스’에서 이들 사진과 함께 20초짜리 흑백영상을 공개했다. 사진과 영상은 동일한 장소에서 촬영된 것들이다. 영상 발굴자는 반일좌파 학자로 알려진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강성현 교수이며, 국내 언론은 이 자료를 두고 ‘최초’, ‘처음으로’ 등의 수식어를 붙여가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다카아키 씨는 또 “이 논문에 의하면 사진 설명에 ‘(시체의) 대부분은 일본군 기지의 조선인 여성들’이라고 기재되어 있다”며 “중국 국민당군과 동행한 미국인이 촬영한 것으로 정확한 정보라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군 측 자료에는 조선인 위안부를 살해한 기록은 없다”면서 “앞서 언급한 조사보고에 의하면 이곳에서 위안부 18명 (대만인 3명, 조선인 2명, 그 외는 일본인)이 중국 국민당군의 포로가 되었다. 이것은 일본군이 위안부를 조직적으로 살해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특히, 다카아키 씨는 버마 작전에 참전했던 일본군 장교의 회고록에서 관련 대목을 소개했다. 

“북 버마에서 싸운 육군 제33군의 참모인 노구치 세이키(野口省己) 소좌는 수기 ‘회상 버마작전(回想ビルマ作戦)’ (고진샤(光人社))를 남겼다. 이 수기에 의하면 “위안부 약 20명이 라모(拉孟)에서 사망한 듯”이라는 보고를 받은 군작전참모 츠지 마사노부(辻政信) 대좌는 충격을 받아 반대를 무릅쓰고 위안부를 비롯한  민간인을 후방으로 옮겼다고 한다. 츠지는 전사에 빈번히 등장하는 유명한 군인으로 유능한 반면, 포로에 대한 잔학행위로도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 인물조차 위안부를 학살할 발상이 없었다. 일본군에 그 동기는 없다.”


실제 이 지적처럼 여러명을 죽이는 ‘학살’은 우발적 ‘살인’과는 다르므로, 역사적으로 모든 학살에는 분명한 정치적 동기가 있다. 그런데, 당시 일본군이 일본 국적의 여성(일본인과 조선인)이 대다수인 종군 위안부들을 학살할 동기는 찾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다카아키씨는 공개된 사진과 영상은 유기된 시체를 촬영한 것으로 그 정확한 사망 원인은 알 길이 없다는 점도 환기시켰다. 그는 “조선인 위안부는 전쟁터 근처에서 전투에 연루되어 사망한 가능성이 있다”며 “애도의 뜻을 표하고 싶지만 학살의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유칸후지는 다카아키씨의 입을 빌어 일본정부의 공식 문제제기도 촉구했다. 

“서울시의 기록 공표는 덩위에(騰越) 전투의 일본군 전사자 약 2800명 및 버마 전선의 전사자 약 16만4500명의 ‘명예 문제’와 직결한다. 일본 정부는 실태를 조사하여 서울시의 발표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한편, 서울시와 서울대 인권센터가 공개한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의 ‘위안부 학살 기록’과 이를 보도하는 언론의 보도가 상당한 논리적 비약과 왜곡을 범하고 있다는 지적은 우리 한국 내부에서도 잇따르는 상황이다. 

특히 조갑제닷컴의 논객 필명 '펀드빌더'가 ‘<위안부 학살 영상>이라는 견강부회(牽强附會)’라는 제목의 기고를 통해 관련 문제를 설득력있게 지적해 네티즌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상한 점이 있다. 중국(국민당)군이 윈난성을 함락시킨 것은 14일이라고 보도에는 나온다. 그런데 “13일 밤 일본군이 성 안에서 조선여성 30명을 총으로 쐈다”는 작전일지 내용은 그 다음 날인 15일 자로 기록된 것으로 나온다. 따라서 정확히 하자면, ‘14일 원난성을 함락시켰는데 성 안에 들어가 보니 조선여성 30명이 총에 맞아 죽어 있었다’라고 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13일 밤 ‘일본군’이 성 안에서 조선여성 30명을 총으로 쐈다”는 기록은 증명된 팩트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여성 30명이 총에 맞아 죽어 있었다는 팩트 외에는, 13일 밤에 총에 맞은 것인지? 총을 쏜 것이 정말 일본군인지? 죽어 있는 사람들이 정말 조선 여성들인지? 그리고 그들이 ‘위안부’였는지? 아무 것도 확실한 것이 없다.“

““일본군은 패전 직후 그동안 끌고 다녔던 위안부 여성들의 존재를 은폐하기 위해 유기했고, 유기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학살이었다.”고 한국 언론(경향신문 보도: [단독]“일본군, 조선인 여성 30명 총살” 위안부 학살 기록 원본 찾았다)은 보도했는데, 코미디 수준이다. 위안부가 존재한다는 것은 당시 만천하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뭐하러 (일본군이) ‘위안부 여성들의 존재를 은폐’하려고 애쓴다는 말인가? 만약 그렇다고 치면, 위안부 여성들의 존재를 은폐하려고 기껏 총으로 쏴 죽여놓고 시체는 왜 보란듯이 놔두고 가나? 최소한 상식에 맞고 개연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이야기를 해야 먹히는 법이다.”



* 본 기사에서 이시이 다카아키 씨의 기고문 내용 번역은 박아름 씨의 도움을 받아서 이뤄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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