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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수 교수에게 답한다 ②] “작업배치에서의 민족차별”과 ‘노예적 일상’의 문제

‘작업배치에서의 인위적 민족차별은 없었다는 사실’과 ‘조선인 중에는 채탄부가 많았다는 사실’은 모순되지 않아



[이우연 ·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전강수 교수의 말을 계속 옮겨보자.
  
“이 박사는 ‘반일종족주의’ 82-4쪽에서 조선인이 작업 배치에서 불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는 바로 뒤 85-6쪽에서는 위험한 작업을 맡은 조선인의 비율이 일본인보다 2배나 높았고 그 결과 사망률도 높았다고 말한다. 이건 자가당착 아닌가?”


타인을 주장을 비판하려면, 힘써 그를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진정한 비판은 그 뒤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하지만 전 교수는 논리적 모순을 찾겠다는 욕심이 과하여 필자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조선인 전시노동자 중 가장 많은 것이 탄광의 채탄부였다. 그들의 작업은 2:1의 비율로 일본인들과 함께 작업조를 구성하여 공동으로 작업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형태였다. 

채탄 작업에서는 작업의 안전과 효율을 위하여 경험이 풍부한 광부가 탄을 캐는데, 그들을 선산(先山)이라고 한다. 선산이 캐낸 석탄을 모아 담고 컨베이어까지 운반하는 사람들을 후산(後山)이라고 했다. 일본인들은 선산, 조선인들은 후산이었고, 선산과 후산의 비율은 대체로 1:2였다.



작업조의 구성과 역할분담은 첫째, ‘조선인을 의도적으로 위험한 작업에 배치했다’는 통설이 사실과 다름을 말해준다. 조선인과 일본인이 같은 곳에서 일하는데, 어떻게 조선인만 위험할 수 있겠는가? 

둘째, 조선인 채탄부가 일본인 채탄부보다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채탄부는 갱내부 중에서도 가장 센 완력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그러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일본인 청장년층은 모두 전장으로 나갔고, 그 자리를 메운 것이 조선인이었다. 일본 탄광회사들은 애당초 조선에서 그러한 작업에 맞는 건장하고 근력이 좋은 20대 젊은이들을 선발하였다.

탄광 사고율이 갱외보다 갱내가 높음은 더 이상의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또 갱내부 중에서도 채탄부의 사고율이 가장 높았다. 채탄부는 낙반이나 가스누출과 같은 고위험의 막장(채탄면)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인의 사고율이 일본인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인위적 차별의 결과는 아니었다. 탄광의 노동수요는 젊고 건장한 젊은이에 집중되었고, 조선의 노동공급은 그러한 수요에 부응하였던 것에 불과하다. 

‘작업배치에서의 인위적 민족차별은 없었다는 사실과 ‘조선인 중에는 채탄부가 많았다는 사실은 이와 같이 모순없이 양립하였다. 전 교수는 탄광의 노동력 구성과 작업 실태에 대한 필자의 서술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부족하였기에, 이를 모순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동남아 노동자는 3D업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두고 “차별”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른 연구자의 결과물을 평가할 때는 오류를 지적하려는 의욕보다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앞서야한다. 그래야 합리적인 비판이 가능하다.


다음으로 일상생활의 문제다. 필자는 연구자의 통설이나 “국민적 상식”과 달리 조선인 전시노동자들은 일상에서 자유롭게 생활했다고 주장하였다. 전 교수의 비판은 다음과 같다.

“이우연 박사는 조선인 노동자의 생활이 대단히 자유로웠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 근거가 어처구니없다. 밤새워 화투 치고, 과음하고, 특별위안소에서 월급을 탕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노동자가 고된 노동에 찌들어서 범한 일탈로 봐야지 어떻게 그것을 자유로 이해할 수 있는가? 조선인 노동자를 사용한 탄광업주로서도 그런 '자유'쯤은 얼마든지 허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 교수는 조선인 전시노동자들의 생활에 대한 학계의 통설을 모르는 것일까? 영화 ‘군함도’를 굳이 보지 않아도 될 만큼 일반 국민들에도 익숙한 것이 ‘아우츠비츠 수용소와 같은 곳에서 노예와 같은 감금생활’이라는 신화다. 높은 담장을 치고 철조망으로 둘러싸고, 망루 위에 군인이 서치라이트를 켜고 총을 들고 감시하고, 월장을 시도하는 조선인이 있으면 사격하고, 외출의 자유는 전혀 없는 노예적 생활‘을 그만 모르는 것일까?

필자가 바로잡고자 했던 것은 그러한 신화였으며, 극단적인 사례로서 주색잡기로 수입을 “모두 탕진할 정도로 그들은 자유”로웠다고 썼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전 교수는 이러한 취지를 살피려하지 않았기에 ‘일탈을 자유로 볼 수 없다’거나 ‘그 정도 자유는 얼마든지 허용할 수 있었다’고 횡설수설하였다. 

만약 필자의 주장을 비판하고자 한다면, 무자유의 감금과 노예적 구속의 증거를 제시하면 될 일이다. 그것이 정직한 비판이다. 

물론 필자는 이경우에 우선 피동원자들이 자신의 피해를 입증한다면서 한국 정부에 제출한, 외출하여 사진관에 가서 근사한 옷을 빌려입고 촬영한 수백 장의 사진부터 먼저 보여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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