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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산업유산국민회의] 군함도 관련 유네스코 결의에 이의를 제기한다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역할은 정확한 1차사료 제공...역사 해석은 연구자들에게 위임해야”



※ 본 콘텐츠는 군함도 문제와 관련 일본 측 정보센터 전시 내용의 시정을 요구한 제44차 유네스코 결의에 대한 가토 고코(加藤康子) 일본 산업유산국민회의(産業遺産国民会議) 전무이사의 반박 입장문(‘가토 고코 전무이사의 제 44회 유네스코 결의에 대한 의견(加藤康子専務理事の第44回ユネスコ決議に関するコメント)’)이다. 일본 군함도(하시마) 측 당사자의 정확한 입장을 알린다는 차원에서 입장문 전문을 번역 소개한다. 가토 고코 씨는 하시마 탄갱을 포함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의 세계유산등록 추천서 원안을 집필한 인물로, 산업유산국민회의를 설립, 1차 사료를 기본으로 생존한 옛 하시마 도민, 탄갱 관계자들의 증언을 수집하며 정확한 역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번역 : 요시다 켄지)




유네스코 결의, 유네스코・이코모스 전문가 보고서에 관하여: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을 유네스코에 등록한 지 6년, 그리고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를 공개한 지 1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44차 유네스코 결의 및 유네스코(세계유산위원회)・이코모스(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전문가 보고서는 “일본 정부가 대체적으로 약속을 충족하고 있으나, 제39차 유네스코의 관련 결의를 충분히 실행하고 있지 않다”라는 지적을 했습니다.

특히 보고서는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전시가 “의사에 반하여 연행되고 강제로 노역을 당한 조선반도 출신자에 대한 기재가 충분하지 못하다”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전제로 “(산업유산정보센터에) 전시된 정보를 보면, 타국에서 징용된 노동자를 당시 일본 국민으로 간주하고 있고, 일본 국민으로 취급했다는 인상을 준다(The information displayed gives the impression that conscripted workers from other countries were considered to be Japanese nationals at the time and were treated as such.)”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실(史實)에 반합니다. 



현지 조사에서 전문가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그들로부터 조선반도 출신자를 POW(전시(戰時) 포로)라고 표현한 말이 나왔습니다. 전문가분들에게 조선반도 출신자는 POW가 아니라고 누차 설명을 드렸듯이, 당시 조선반도 출신자는 일본 국민이었으며, 일본 국민으로 징용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전시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국가총동원법(1939년 4월)에 의거하여 1942년 2월2일부터 조선총독부 주선하에 조선반도 출신 근로자의 모집을 실시하였습니다. 그리고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1944년 4월부터 국민징용령(1939년 7월)에 의거하여 조선반도인의 노무동원을 실시하였습니다.

제39차 유네스코에서는 한국 정부 및 시민단체가 배포한 문서로 인하여, ‘하시마섬은 강제노동에 의해 학살까지 이루어진 지옥의 섬이었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었고, 남독일신문 등에서는 사실과 동떨어진 정보가 기재됨으로써 많은 하시마섬 전 도민의 인권이 손상되었습니다. 문화유산 등록이 된 후, 하시마섬이라는 전전(戰前)부터 기계화된 거대한 해저 탄광에서, 전시(戰時) 증산 체제를 지탱하는 산업 전사들이 어떻게 작업장을 지탱하였는지, 그리고 작업 현장과 생활 환경은 어땠는지, 당사자의 증언이나 1차 사료를 토대로 정확한 전시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조사에 임하였습니다. 2015년 시점에서는 작업장에 대한 기억이 충분히 정리되어 있지 않았으며, 또 1차 사료 보관 장소가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던 터라, 전쟁 당시의 하시마섬에 대해 알고 있는 당사자들의 증언은 영상으로 수록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지난 6년간 하시마섬의 전 도민과 함께, 전시 탄광(산(ヤマ))의 기억과 증산 체제를 지탱하였던 산업 전사들의 작업장 및 생활에 관한 기억을 수집하였습니다. 출처가 명확한 자료와 도민 여러 분들이 주체가 되어, 함께 기억을 되새기며, 전화(戦禍) 속 작업현장을 지탱해 오신 분들의 육성 녹취를 토대로 현재 센터의 전시에 이르고 있습니다. 또한, 몸이 편찮으신 와중에도 온 힘을 다하여 작업환경과 생활에 관한 증언을 해주신 당사자의 목소리는 귀중한 일본의 재산입니다. 전쟁 말기의 일본 산업현장에서는 식량 사정도 안 좋았으며, 물자도 부족하여, 노동자들의 상황이 몹시 혹독하였다는 것은 일기나 증언을 통해서도 파악이 가능합니다. 전화(戦禍) 속에서도 하시마섬의 조선반도 출신자들도 함께 일하고, 함께 생활하며 모두가 한 가족(全山一家)으로 증산 체제를 지탱하였다는 것은 이번 전시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전문가와 저희의 ‘희생자’의 정의에 관한 인식 차이입니다. 저희는 산업유산의 전시(展示) 과정에 사용되는 희생자에 대한 규범에 따라, 출신지와는 무관하게, 탄광이나 공장 같은 시설에서 전쟁 당시 노무에 종사하다 사고·재해 등을 당하신 분이나 돌아가신 분들 모두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애초에 ‘희생자’에 관한 해석은 사람에 따라, 국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희생자라는 단어를 일반론으로 취급할 경우, ‘가해자는 누구인가’라는 논의로도 번지기 때문에 신중해야 합니다.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에서는 현장에서의 산재와 관련된 명확한 사고의 기록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서는 희생자의 국적을 불문하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신문 기사, 수기, 사고의 기록 등 출처가 분명하고, 또 증거가치가 높은 사료나 증언을 중심으로 아카이브화를 진행하면서 전시과정에도 반영할 예정입니다. 하시마 전 도민의 증언이나 일기에도 탄광 사고의 실질적인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탄광 사고의 진실 또한 향후 전시해 나가겠습니다. 

역사의 해석은 ‘정치’ 또는 ‘운동’에 의한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1차 사료나 증언을 기본으로 전시되어야 하며, 역사에 있어 100명의 연구자가 있다면 100가지의 해석이 있을 것입니다. 정보센터의 역할은 정확한 1차 사료를 제공하는 것이고 해석은 각각의 연구자들에게 위임해야 합니다. 현지 조사 때, 국제기관도 과거의 입장표명을 준수하기 위해 ‘허위의 전시를 하라고는 할 수 없다’고 언명하고 있습니다. 향후 계속해서 유네스코 관계자나 다양한 견해를 가지신 분과 대화를 거듭하면서, 정치가 역사에 개입하는 악순환을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정확하고 증거가치가 높은 1차 정보나 당사자의 목소리를 전하는 정보센터를 목표로 하겠습니다. 유네스코의 결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앞으로도 성실히 이행해 나가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끊임없는 협력과 지원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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