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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도광산, 강제노동 아니다 (히라이 에이이치 편집의 ‘사도광산사 제2’)

사도광산이 조선인 강제노동의 현장이 아니었음을 나타내는 1차 사료, ‘사도광산사 제2(佐渡鉱山史其ノ二)’


※ 본 자료는 일본 역사인식문제연구회(歴史認識問題研究会) 홈페이지에 2022년 7월 29일자로 게재된, 사도광산과 관련 ‘역사인식문제연구회가 공개한 ‘사도광산사 제2(佐渡鉱山史其ノ二)’에 대하여(歴史認識問題研究会が公開した『佐渡鉱山史 其ノ二』について)’ 보고서 사료를 역사인식문제연구회 측의 허락을 얻어 완역게재한 것입니다. (번역 : 미디어워치 편집부)



역사인식문제연구회가 공개한 ‘사도광산사 제2(佐渡鉱山史其ノ二)’에 대하여

(歴史認識問題研究会が公開した『佐渡鉱山史 其ノ二』について)



역사인식문제연구회(역인연)은 2021년 1월 26일에 사도광산이 조선인에 대한 강제노동의 현장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1차 사료인 ‘사도광산사 제2(佐渡鉱山史其ノ二)’ 원본 사진을 입수해 공개했던 바 있다.


이 책은 1950년에 정리된 고본(稿本)으로, 출판되지는 않았다. 편저자인 히라이 에이이치(平井栄一) 씨는 전 사도광산 채광과장으로, 사도광업소를 경영하고 있던 미쓰비시광업(三菱鉱業)(주) 하니 미치유키(羽仁路之) 사장의 의뢰를 받아 사도광산의 역사를 에도시대부터 쇼와시대까지 두 권으로 정리했다.


복사판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지만 원본은 소재 불명이었다. 역인연은 목차와 844~846쪽에 있는 ‘(9)조선 노무자 사정((九)朝鮮労務者事情)’이라고 하는 항목의 원본 사진을 입수해, 연구회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그 후, 니시오카 쓰토무 본회 회장이 사도 현지에 가서 주식회사 골든사도(株式会社ゴールデン佐渡)에서 고본 원본의 실물을 확인했다. 종이가 매우 얇고 쉽게 찢어져 버리기에 일반인에게 공개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원본은 2011년까지 소재 불명이었는데, 사실은 주식회사 골든사도의 금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이 금고는 화재로 열쇠와 다이얼 번호를 적은 종이가 사라져 오랫동안 열지 못했고, 고본 원본이 그곳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이 잊혀져 있었다.


2011년 니혼TV(日本テレビ) ‘불가사의 탐정단(不可思議探偵団)’의 ‘열리지 않는 금고’ 제8탄! 황금산 사도금산에 잠들지 않는 금고를 조사하라!(不可思議探偵団」の「『開かずの金庫』第8弾!黄金の山・佐渡金山に眠る 開かずの金庫を調査せよ!)’(5월 16일 방송)에 의해 금고가 열려 고본 원본(‘사도광산사 제1(佐渡鉱山史 其ノ一)’, ‘사도광산사 제2(佐渡鉱山史 其ノ二)’([사진 1])이 발견된 것이다.




소유자의 주식회사 골든사도는 금고에 있던 것이 바로 원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 역인연도 그 생각을 지지하고 있다. 그 근거는, ① 보관되어 있던 고본에 당시의 소장 외 광업소 간부의 날인이 있는 것([사진 2]), ② 곳곳에 수정의 기술이 있는 것([사진 3]) 등이다.


또한, ‘제2’의 목차 페이지에 “예비(控)”의 표시와 메모지로 “25, 8, 4, 발송 안내로 총무부에 송부했다(二五、八、四、発送案内で総務部へ送付した)”라고 되어 있다([사진 4]). 고본은 2권이 만들어져 1권을 1945년 8월 4일 도쿄의 하니 미치유키(羽仁路之) 사장 앞으로 송부하고, 다른 1권을 ‘예비(控え)’으로 사도광업소에 보관했다고 생각된다. 즉, 금고에 보관되어 있던 고본은 사본의 원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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