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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孫鶴圭) 전 경기지사의 19일 한나라당 탈당 선언이 대선정국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으나 최근 정치사에서 유력 대선주자들의 경선 불참과 탈당선언 전례는 생각보다 드물지 않다.

대표적 인물은 현재 국민중심당 소속인 이인제(李仁濟) 의원. 이 의원은 지난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열린 신한국당 후보 경선에서 이회창(李會昌) 후보에게 패했으나 결과에 불복, 당을 박차고 나가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권에 도전했다 고배를 마셨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정부'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은 한 이 의원은 이후 국민회의에 합류해 두번째 기회를 노렸지만 2002년 대선때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중도포기를 선언했다.

지난 97년 신한국당 경선에서는 9명이 출발선을 떠났으나 김윤환(金潤煥), 이홍구(李洪九), 박찬종(朴燦鍾) 고문이 잇따라 후보를 사퇴해 6명이 완주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특히 박 고문의 경우 이인제 의원과 함께 탈당해 국민신당에 참여했다.

또 2002년 대선에서는 박근혜(朴槿惠) 당시 한나라당 부총재가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1인 보스체제'에 반발, 탈당을 전격 선언하고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으나 이 총재가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후 대선을 한 달 앞두고 합당 형식으로 한나라당에 복귀했다.

앞서 지난 1992년에는 이종찬(李鍾贊) 의원의 민자당 경선 거부가 대선정국에 적지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민정계와 민주계는 치열한 세 대결을 벌이다 김윤환(金潤煥) 의원을 주축으로 한 이른바 주류파가 김영삼(金泳三) 대표를 후보로 옹립했고 반(反) 김영삼 진영에서 진통 끝에 이종찬 의원을 경선후보로 확정했으나 막판 세 불리를 느낀 이 후보가 일방적으로 경선을 거부한 것.

이밖에 지난 1987년 대선에서는 통일민주당 임시전당 대회에서 김영삼(金泳三) 총재가 대선후보로 지명되자 김대중(金大中) 고문이 이에 반발해 탈당하고 그해 11월 평화민주당을 창당해 대선후보로 출마했다.

성격은 다르지만 고 건(高 建) 전 총리가 지난 1월 지지도 하락 등 장애물을 넘지 못하고 "대결적 정치구조 앞에서 역량부족을 통감한다"며 대권 중도포기를 선언한 것도 '2007년 대선정국'의 중요 사건 중 하나.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매번 대선에서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유력 대선주자들의 탈당도 심심찮게 벌어진다"면서 "배신과 화해로 점철된 한국정치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성공한 사례는 별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huma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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