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됐던 국내 출판계가 오랜만에 탄력을 받고 있다. 독창적인 화법으로 찬사를 받고 있는 김훈의 새 소설 남한산성이 한국문학으로는 6개월 만에 소설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활기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남한산성의 인기와 더불어 대학과 기업의 강연 제의가 밀려들어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훈을 그의 작업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피곤한 듯 눈에 핏발이 서 있는 그에게 “남한산성이 초판본 판매가 끝나 재판에 들어갔다는 얘길 들었다”며 축하의 인사를 건네자 “그랬냐? 몰랐다”며 오히려 반문하는 게 아닌가? 어떻게 모를 수 있냐는 말에 “난 책을 쓰고 나면 두 번 다시 거들떠보지 않는다. 교정도 안보고 출판사에 던져 버린다. 꿈에 볼까 무섭고 치가 떨린다. 이게 아닌데 왜 이렇게 썼지? 이게 아닌데 왜 이렇게 썼는지 모르겠어”라며 앞에 놓인 원고를 살짝 들추었다 화들짝 덮어버리는 모양이 영락없이 소년이 짝사랑하는 여인을 멀리서 훔쳐보며 혹시 눈이라도 마주칠까 부끄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첫인상에 보였던 흔들림 없이 단단해 보이는 이면에 있는 생소한 발견이었다. 자신이 완성한 소설이 스스로 보기에 가장 부끄러운 것일까? 하지만 남한산성은 세상에 나왔고, 그의 말처럼 책
지난 8일 김지하 시인 주인격으로 있는 문화 사랑방 “싸롱마고”에서 낯 선 듯 익숙한 음악들이 흘러나왔다. 이날은 “왜 필리핀 음악에 열광하는가”란 주제로 변희재 빅뉴스 대표의 강연이 있었던 날로 ‘생명과 평화의 길’ 회원들이 함께 해 아시아 음악을 공유하고, 아시아 문화 교류 채널 확보에 대한 공감대를 만드는 자리가 되었다. “한류가 아시아에 퍼지고 세븐, 비가 태국, 말레이시아 차트에서 1위를 했다는 기사들을 접하면서 그럼 2위는 어떤 가수일까? 그 나라에는 어떤 음악들이 있을까? 란 호기심이 생겼고, 더불어 왜 언론은 그런 정보에 무심한가란 의문이 생겼었다”고 포문을 연 변희재 대표는 "지난 2년간 아시아 음악을 조사하면서 수준 높은 음악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고 밝힌 후 한국의 정서와 가장 가까운 필리핀 음악을 위주로 아시아 음악을 소개했다. 변희재 대표는 “지난해 가수 비가 메디슨 스퀘어 가든과 카네기 홀에서 공연한 것을 두고 한류가 미국에까지 퍼졌다란 부풀려진 보도들이 있었는데 사실 필리핀 가수들은 빌보드차트 1위는 물론이고 미국 활동과 국내 활동을 겸할 정도로 이미 미국 시장 내의 활동이 활발하다”며 국내의 아시아 대중문화에 대한 무지를 지
‘보수파도 중도, 진보파도 중도, 중간파도 중도를 주장한다. 중도는 이제 마치 하나의 시대정신, 하나의 스타일로까지 번져갈 추세다. 중도란 무엇인가? 그리고 중도주의가 무엇인가?’ 이상은 3월 24일자로 김지하 시인이 조선일보에 게재한 칼럼의 도입부다. 김지하 시인이 지적했듯 지금 정계에선 중도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손학규 전 경기지사부터 진보로 대표되던 노무현 대통령조차 스스로를 좌파신자유주의자라며 한미 FTA를 적극 지지했듯 사안에 따라 보수와 진보란 넓은 스펙트럼 사이에서 유연한 결정을 내리는 이른바 중도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동안 중도정치는 재기를 위해서 은신처가 필요한 정치인들이 잠시 머무는 쉼터였고, 중도정치가들은 기회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기 일쑤였다. 때문에 대선을 앞 둔 시점에서 불거져 나오는 중도의 외침은 잠깐의 연극으로 끝날 신파로만 보기엔 한계가 있다. 중도는 이미 하나의 돌파구이자 대안이자 정책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 왜 중도일까? 무엇보다 중도에 대한 정확한 개념 정리가 선행될 필요성이 있다. 중도란 무엇인가? 다시 김지하 시인에게 묻는다.* 다음은 김지하 선생의 4월 8일 강연을 요약 발췌한 것입니다.
늦은 저녁, 창덕궁 돌담길을 따라 걸으면 창으로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유난히 지붕이 높은 한옥 한 채가 있다. 바로 시인 김지하를 만날 수 있는 ‘싸롱마고’이다.사실 더 이상 시인이란 수식어만으로 김지하를 설명하기란 어렵게 됐다. 민중의 수난에 함께 맞섰던 저항시인에서 생명사상가, 또 삼남지역에서 발생한 동학, 정역, 증상을 아우른 남조선사상의 전도사이자, 동양사상가, 그리고 전통문화와 대중문화에 대한 혜안을 내놓는 문화사상가로 사상의 영역을 확장한 지 오래기 때문이다. 현재 사단법인 “생명과 평화의 길” 이사장이란 직함까지 거느린 그가 문화 사랑방 ‘싸롱마고’를 연 건 올 2월이었다. ‘싸롱마고’는 깊어진 그의 사상을 대중과 나누는 열린 공간이다. 학자와 문화예술인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불문하고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한국의 미래와 문화, 한류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담론들을 펼치도록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바로 우리네 사랑방 문화와도 맞닿아있는 셈인데, 유독 ‘싸롱’이란 이국의 이름을 붙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중세 프랑스 루이 14세 때 성행했던 ‘싸롱’ 문화가 르네상스문화에 큰 기여를 했듯, ‘싸롱마고’ 역시 우리 문예부흥에 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