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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훈이 말하는 '남한산성'

"희망없는 세상과 더불어 싸우라"



침체됐던 국내 출판계가 오랜만에 탄력을 받고 있다.
독창적인 화법으로 찬사를 받고 있는 김훈의 새 소설 남한산성이 한국문학으로는 6개월 만에 소설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활기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남한산성의 인기와 더불어 대학과 기업의 강연 제의가 밀려들어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훈을 그의 작업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피곤한 듯 눈에 핏발이 서 있는 그에게 “남한산성이 초판본 판매가 끝나 재판에 들어갔다는 얘길 들었다”며 축하의 인사를 건네자 “그랬냐? 몰랐다”며 오히려 반문하는 게 아닌가? 어떻게 모를 수 있냐는 말에 “난 책을 쓰고 나면 두 번 다시 거들떠보지 않는다. 교정도 안보고 출판사에 던져 버린다.

꿈에 볼까 무섭고 치가 떨린다. 이게 아닌데 왜 이렇게 썼지? 이게 아닌데 왜 이렇게 썼는지 모르겠어”라며 앞에 놓인 원고를 살짝 들추었다 화들짝 덮어버리는 모양이 영락없이 소년이 짝사랑하는 여인을 멀리서 훔쳐보며 혹시 눈이라도 마주칠까 부끄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첫인상에 보였던 흔들림 없이 단단해 보이는 이면에 있는 생소한 발견이었다.

자신이 완성한 소설이 스스로 보기에 가장 부끄러운 것일까? 하지만 남한산성은 세상에 나왔고, 그의 말처럼 책 안 읽는 세대인 중년남성들을 끌어들이며 출판계에 활력이 되고 있다. 그에게 남한산성이 세상에 나온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처음 생각대로라면 남한산성은 에세이로 출판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등장인물이 너무도 많고 그들의 생각이 또 너무도 달라 에세이로는 그들을 껴안는 데 한계가 있었고, 결국 작가가 선택한 건 소설이란 틀이었다. 남한산성은 실패 뒤에 나온 역작인 셈이다.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도망을 갔다. 임금이 거기로 가니까 지식인들이 따라 성안으로 들어왔는데 성안에는 45일 식량, 약 1만 2천명의 병사, 간장이 200독이 있었고 그게 전부였다. 그러고 성 밖에는 청나라 군데 20만 명이 성을 포위하고 있었다.” 남한산성의 위태로운 상황을 숫자를 빌어 설명한 그는 “성안에는 별의 별놈이 다 있어요. 끝까지 성을 지켜서 싸우자는 자들이 있고 빨리 성문을 열고 투항하자는 자들이 있고 아무 말도 안하는 자들이 있고, 오늘은 싸우자고 했다가 내일은 투항하자는 자들이 있고, 성안에 있으면 결국 죽겠구나하고 성 밖으로 달아나는 놈들이 있고, 성안으로 들어와야 사는 줄 알고 몰래 뚫고 들어오는 놈들이 있고, 성 밖으로 나가서 적에 투항하는 놈들도 있고 투항했다가 다시 성안으로 들어온 자들도 있고” 자신이 소설 속에 담은 사람들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데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공정했다고 했다. “누구의 편도 아니야 어느 누구가 옳고 그르다고 절대 생각 안 해. 그럴 수밖에 없는 거지, 갇힌 성안에서 벌어진 인간의 운명이고 삶의 적나라한 모습이야.”
어쩌면 남한산성은 공정함 그 작업이 가장 핵심이었을 수도 있다.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동일시하지 않고 등장인물들이 선택한 삶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러므로 소설에 등장하는 그 누구도 악하단 느낌이 없다. 조선에 치욕을 준 칸과 그의 군대까지도...




남한산성과 칼의 노래

‘남한산성’은 전작인 ‘칼의 노래’와 비교될 운명을 타고 났다.
둘 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란 조선 시대 전란을 배경으로 한 탓이다. 그리고 그 둘을 비교함에 또 다른 글 읽는 재미가 숨어있다.

먼저, 말, 언어가 갖는 무게가 다르다. ‘칼의 노래’에서 실체하지 않는 길삼봉이 말로써 소문이 되어 떠돌다 실존하는 정여립을 죽이고, 또다른 길삼봉들을 괴롭힌다. 그리고 선조의 화려한 언어로 써진 교지가 군대를 빤히 보이는 사지로 내몰기도 한다. 칼의 노래에선 말은 잔혹하고 한없이 폭력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남한산성에선 언어, 말은 한없이 무기력하다. 작가는 남한산성 안에 갇혀 있는 자들이 할 수 있는 건 “목숨을 걸고 말을 하는 거”뿐이라고 하며 “주화는 화해하자는 거지만 사실 노예가 되자는 거지. 화(和)는 항복하자는 거지, 적의 노예가 되자는 건데 말이 좋아 화가 되는 거지. 전(戰), 싸움이란 것도 허우대만 있고 내용이 없는 거야 화도 그렇고. 공허한 거지 둘 다.” 라며 소설 안에 스며있는 언어의 무력함을 소개했다.

문체 역시 비교의 대상이다. 남한산성은 칼의 노래보다 글 읽기가 수월하다. ‘칼의 노래’는 급하게 휘몰았다가 급하게 빠지는 격렬한 문체였다면 남한산성은 한결 잔잔해졌다. “남한산성의 문장은 중모리로 간 것이지요. 칼의 노래는 휘모리나 자진모리고, 난 남한산성은 중모리가 적당하다고 생각해요. 중모리를 기조로 하고 앞뒤를 변조하는 리듬을 선택한 거죠.”

남한산성에 사용된 문체는 얼핏 보면 칼의 노래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남한산성의 사용된 문체는 작가의 표현의 전략이자, 치열한 창작욕의 산물이다.

“난 내 문체를 계속 바꿔나가요. 거기에 맞는 문체를 만들어서 쓸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것은 글쓰기의 전략이에요 작전이죠. 글에다가 리듬을 부여하는 거죠. 음악처럼 근데 작품을 쓸 때마다 그런데 작품을 쓸 때마다 문체를 바꾼다는 건 매우 힘든 일이죠. 정말로 나한텐 어려운 일이지요. 작품을 쓰려고 구상을 다 해놓아도 그 문체가 떠오르지 않으면 하자도 쓸 수가 없는 일이지요. 글로 쓸 수밖에 없는 데 글의 리듬과 박자가 확보되지 않으면 쓸 수가 없는 거잖아요.”

적어도 김훈의 이야기를 엮어내는 문체는 치열한 고민 속에서 탄생했으며, 그 자체가 하나의 미학이다.




인간 김훈에게 없는 세 가지 혹은 네 가지.

소설마다 변하는 그의 문체와 달리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다. 바로 “희망 없는 세상에서 희망 없이 사는 것” 기자 생활을 하며 몸으로 받아들이게 된 김훈의 사상이라면 사상인데 이것이 김훈을 허무주의자로 불리게 한다. 과연 김훈은 허무주의자일까?

“허무주의자라.. 그렇게 보인다는 건 그 세계가 희망이 없기 때문일 거예요. 내 주인공들이 희망 없는 세상에서 희망이 없다고 해서 죽어버리는 게 아니고 그 희망이 없는 세상과 더불어 싸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에요. 허무주의의 반대되는 거예요.” 김훈의 대답이다.

또 그런 오해들에 한 방을 날린다. “(내 책에는) 희망이 없는 세상의 허무를 때려 부수고 그걸 뚫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고, 물론 뚫고 나오다가 실패하는 경우도 있어요. 좌절하는 경우도 있고 그것을 허무주의라고 말한다는 것은 그런 사람들은 내 책을 안 읽었으면 좋겠어요.”

인간 김훈은 허무주의자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호흡하는 시간동안 긴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에겐 3가지가 없다고 한다. '하품, 트림, 방귀' 진짜냐는 물음에 “돈도 없다. 네 가지가 없다”라고 응수했다.

그리고 “난 늘 몸을 긴장하고 있고, 몸을 깨끗하고 단정하고 바르게 가지려고하는 사람이에요. (책상 앞 벽에 걸린 미니 칠판에 적힌 문구를 가리키며)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군대에서 배운 거야 한 40년 전에 육군에서 총을 닦고 조이고 기름 쳐서 항상 쏠 수 있는 맞출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라는 거거든요. 난 저걸 평생 써놓고 살아요. 저걸 실천 못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삶에 치열한 사람에게 허무주의는 가당치 않다.


당대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연인지 김훈의 소설은 정치적인 상황과 얽히기도 한다. “칼의 노래”의 노래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과 이순신 신드롬으로 이어져 주목을 받았었고, 남한산성은 한미 FTA와 연계해서 화자 되고 있다.

남한산성 안에서 벌어졌던 실리와 명분 싸움이 마치 한미 FTA 체결에 투영되었기 때문인데 이에 대해서 김훈은 냉정했다. “정치적인 해석을 가한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지요. 논리적 맥락도 없는 거예요. 독자들이 자기 나름대로 책을 읽어내는 것을 어쩔 수 없어요. 하지만 매우 위태로운 방식의 책읽기죠.”라며 정치적으로 연결되는 걸 경계했다.

그러나 정치적인 입장을 밝히는 데는 과감했다. 최근 그는 386세대에 대해서 사회의 물적 토대를 건설한 경험이 없는 세대로 도덕적이고 낭만적이지만 현실을 변화시킬 길을 모른다고 비판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세대가 물적 토대를 건설하면서 자행한 수많은 악을 제거하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한 가지 희망을 잊지 않았다. 여전히 사회 밑바닥에 깔려있는 악을 바로 젊은 세대들이 이를 바로 잡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의 세대가 저지른 악행의 무게를 덜어내고 싶어서일까?

김훈은 차기작으로 자신이 살아온 시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분명 사회적 물적 토대를 건설하면서 자신의 세대가 저지른 악행들이 희망 없는 세상으로 나올 것이며, 희망 없이 살아가는 당대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허무주의가 아닌 치열하고 격렬한 삶의 이야기가 그만의 독특한 문체로 노래될 것이란 기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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