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1980년 이후 27년만에 대사급 회담을 실시함에 따라 28일로 예정된 만남이 단순한 '외교 쇼'의 수준을 넘어설지 주목된다.
각종 현안을 대화로 풀어야 할 필요성은 양측 모두로부터 제기되고 있지만 의미있는 성과가 회담장에서 도출되려면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반드시 풀고 넘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란은 전날 미국 이익대표부를 겸하는 테헤란 주재 스위스 대사를 초치했고 미국은 이날 이라크 극단주의자들이 어떻게 이란 군수물자를 사용했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하겠다고 나서는 등 양측 모두 회담 직전까지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번 회담이 '탐색전'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예상한 중동문제 전문가들은 정말 미국과 이란간 대화 창구 가 열릴지 여부는 추가 회담 일정을 양측이 어떻게 정하는지에 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미는 있다 = 회담을 앞둔 미국과 이란의 분위기를 전한 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양국이 회담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다.
지난 27년간 양국 관계는 비난과 설전으로 점철돼 왔으며 최근 국제회의에서 양국 고위관리들이 마주앉을 수 있는 환경이 여러번 조성됐었음에도 불구하고 양국간 감정의 골은 깊어만 갔었다는게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미국이 이란에서 핵무기 개발을 시도한다고 간주하고 이란에서 미국을 중동 문제의 주요 원인으로 놓는 시각이 팽배하다는 점 또한 회담의 시작 자체가 중요함을 반증한다.
특히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금까지 이란에 대해 강경 입장을 고수해 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핵개발 문제를 비롯한 양국간 문제가 돌파구를 찾는게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가능한 부분이다.
직접 회담을 통한 문제 해결 필요성은 양국 내부에서 모두 제기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라크연구그룹(ISG)이 보고서를 통해 이란과의 직접 대화 필요성을 제기했고 이란 언론들도 자국 지도부 안에서 대미 정책에 대해 이견이 나오고 있다고 최근 여러차례 보도한 바 있다.
◇필요는 하지만 양쪽 모두 소극적 = 하지만 이번 만남보다는 향후 회담에서 어떤 형태로든 성과가 나올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의견이다.
두시간 가량 진행될 예정인 이번 회담의 의제는 이라크 문제로 국한돼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이란에 이라크 내 무장세력 지원 중단을, 이란은 미국에 대 이라크 전략의 오류에 대한 시인을 각각 요구하겠다는 복안이어서 자신들의 이야기만 한 채 회담이 끝날 가능성이 높다.
양측은 이후의 계획에 대해서도 서로에게 먼저 한발 물러서기를 바라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고위관리는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이번 회담이 생산적으로 끝나고 이어질 회담에서도 가치있는 성과가 있을 것이라는 약속이 나온다면 두번째 대화에 합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마누셰르 모타키 이라크 외무장관은 전날 테헤란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이 대 이라크 정책을 바꾸고 자신의 책임감을 존중하는 자세를 보인다면 협상 지속에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P통신은 이란이 이번 회담을 핵문제의 돌파구로 삼을 가능성 때문에 회담 창구를 조금만 열어놓으려 할 공산이 크며 이 경우 결국 뚜렷한 회담 성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회담 앞둔 양측의 기싸움 = 27년만의 회담이 성사됐음에도 불구하고 걸프 해역에는 긴장감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미국은 지난 23일 걸프 해역에서 2개 항모전단을 동원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이에 이란은 지난 26일 '이라크 점령자'들이 이란 내에 조직한 간첩망들을 적발했다고 밝혔고 전날에는 스위스 대사를 외무부로 불러 항의했다.
이란이 지난해 말 미국 우드로 윌슨센터의 이란 태생 미국 학자 할레 에스판디아리를 체포, 기소한 것을 비롯해 현재 4명의 미국인이 이란에 억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니컬러스 번스 미국 국무부 차관은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민간 금융기관들에 의한 금융 제재 방안들을 구상했으며 그를 통해 이란을 국제적 기아(pariah)로 만들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smi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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