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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신드롬, 그 정체는 무엇일까

지금 활동하고 있는 가수들의 하향 평준화가 문제

애송이의 사랑이 인기를 모은 이유

"H.O.T, 핑클 인기 못지 않았죠"

6년 만에 컴백한 양파가 5월 17일자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맞는 말이다. 1996년 말 데뷔앨범 'yangpa'를 낸 양파는 주목받는 신인가수 중 한 명이었고, ‘애송이의 사랑’은 그 해 가장 많은 인기를 끌었던 싱글 중 한 곡이었다. 당시 애송이의 사랑은 1달 만에 공중파와 케이블 가요프로그램에서 1위를 석권했고, 라디오에서도 압도적인 방송횟수를 기록했다. 앨범 판매고는 80만장에 육박했다. 애송이의 사랑에 이어 후속곡 ‘Forever With You’ 또한 높은 인기를 끌었고, 당연히 모든 연말 가요시상식 신인상은 양파의 차지였다.

양파는 막 데뷔하자마자,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H.O.T, S.E.S, 젝스키스, 핑클로 상징되는 10대 아이돌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했었다. 당시 가요계는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댄스음악이 기형적으로 범람하고 있었고, 소속사들은 아이돌그룹을 만들어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식상한 발라드 장르로 데뷔한 신인 여자가수가 단숨에 인기를 모은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이후 가요계를 살펴봐도 양파와 비슷한 신데렐라 스토리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

돌이켜보면, 애송이의 사랑은 물론 좋은 노래였지만, 그리 대단한 음악성을 갖춘 싱글은 분명 아니었다. 전통적인 팝 발라드 장르에 R&B 기교를 약간 섞었을 뿐 그리 어려운 창법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더구나 데뷔 당시 양파 소속사는 그리 대단한 홍보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송이의 사랑은 신인가수이자, 여자가수로서 실로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애송이의 사랑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것은 어렸을 때부터 노래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던 양파 개인에게서 그 이유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 우리나라 가요계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다. 당시 가요계는 사전에 준비해온 MR 반주에 입모양만 뻥긋거리는 립싱크가 대세를 이루고 있었고, 라이브를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시기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Come Back Home’이 R.ef의 ‘상심’에게 무너졌던 것도, 쿨이 H.O.T를 누르고 ‘운명’으로 1위를 차지한 것도 모두 라이브의 힘이었다. 잘하건, 못하건 라이브 실력은 중요하지 않았다. 당시 대다수 가요 팬들은 립싱크에 진절머리를 치고 있었고, 라이브 도중에 실수를 한 삑사리에 오히려 더 큰 박수를 보내주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 10대 소녀가 데뷔 무대에서부터 당차게 라이브를 소화해냈다는, 그것도 꽤나 고음 처리를 능숙하게 불렀다는 소문은 가요 팬들에게 있어 하나의 큰 이슈였다. 양파의 데뷔곡 애송이의 사랑이 그리 대단한 싱글도 아니었고, 신인가수였으면서도 큰 인기를 모을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라이브 잘하는 가수‘ 이미지 때문이었다. 이는 양파와 같은 해 나란히 데뷔해 큰 인기를 모았던 이지훈과 이기찬에게도 모두 공통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여기에 노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자신을 당당하게 애송이로 칭하면서도, 사랑을 열렬히 호소하는 노랫말 또한 당시 10대들의 코드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이처럼 신인 여자가수 양파의 데뷔곡 애송이의 사랑 히트 배경에는 라이브를 갈망하는 가요 팬들의 욕구, 가요계 전면으로 진출한 10대 가수, 본격적인 음반구매층을 형성한 10대라는 당시 우리나라 가요계의 시대적인 흐름이 있다.

애송이의 사랑, 그 후 양파

90년대 가요계에 있어 원조 10대 가수로 불릴만한 양파, 이지훈, 이기찬은 모두 나름의 성과를 냈다. 양파의 ‘애송이의 사랑’과 이지훈의 ‘왜 하늘은’은 모두 공중파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고, 이기찬의 ’Please' 또한 10위권에 진입하는 저력을 보였다. 양파는 팝, 이지훈은 락, 이기찬은 R&B로 세부 장르는 모두 다르지만, 세 명 모두 큰 틀에서 보면 발라드에 음악적 기반을 두고 있었다. 이들 세 명은 라이브 무대를 고집하는 점과 애절한 가사라는 공통적인 키워드로 같은 또래인 10대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이들도 수많은 가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소포모어 징크스를 피해갈 순 없었다. 이지훈은 2집 이후 내리막길로 접어들었고, 최근엔 연기자로 컨버젼하면서 가수 이미지마저 희석되고 말았다. 1집 프로듀서가 넥스트의 베이시스트 김영석이었고, 유능한 세션 연주자들이 참여했던 것을 아는 가요 팬들에게선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이기찬 또한 2집과 3집이 연이어 참패하면서 5집 ‘또 한 번 사랑은 가고’로 재기할 때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2집이 힘들었던 건 양파도 마찬가지였다. 2집이 발표되기 전부터 양파는 학업 성적이 뛰어나다는 소문으로 인해 안티 팬이 급증했고, 복통으로 인해 수능시험을 중간에 포기하는 악운마저 겹쳤다. 결국 양파 2집은 애송이의 사랑이 워낙 히트를 친 바람에 발매되기 전부터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김조한을 보컬 디렉터로 기용한 음악적 시도는 평가를 받았지만, 타이틀곡 ‘알고 싶어요’가 그나마 인기를 끌었을 뿐 2집 ‘Neverland'는 전체적으로 1집에 비해 음악성이나 판매고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개인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양파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대학진학 실패라는 개인적 아픔과 더불어 소포모어 징크스를 호되게 앓은 양파는 와신상담 끝에 세 번째 앨범 'His mansion in the pool ....flies'를 발표한다. 약 2년여의 두문불출 끝에 발표한 양파 3집은 지금도 그녀의 커리어에서 가장 명반으로 인식되고 있다. 타이틀곡 ‘a'ddio'의 히트도 히트였지만, 거의 앨범 내 전곡이 타이틀곡 못지않은 높은 퀄리티를 자랑했다. 이승환, 김현철, 신재홍, 조규찬, 조규만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뮤지션과 세션이 참여했고, 본인도 앨범 작업에 직접 참여하며 10대 소녀의 틀을 완전히 날려버렸다. 자신의 앨범에 참여해준 양파에게 보답하는 격인 이승환과의 듀엣곡 ’그대 아니었다면‘과 팬들이 코러스로 참여한 ’missing you'는 단연 압권인 트랙이었다.

대학진학 실패라는 아픔을 겪고 발표한 3집 이후 양파는 버클리 음대 유학을 결심한다. 베스트앨범 격인 3.5집 'a letter from berklee'의 ‘다 알아요’ 뮤직비디오로 숙녀가 되었음을 알린 양파는 4집 'perfume'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내공을 선보인다. 타이틀곡 ‘Special night'는 조용히 히트했고, ’My song'으로 자신의 작사, 작곡 실력을 선보였다. 그 와중에 김동률 2집 ‘벽’에 듀엣으로 참여하며 뮤지션과의 교류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음을 알렸다.

양파 신드롬 그 정체는 무엇일까

정규앨범 4장을 포함해 총 6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양파는 2001년부터 종적을 감춰버린다. 물론 미국 내 행사와 국내 드라마 O.S.T 참여, 타 가수와의 작업을 통해 가끔 근황을 듣곤 했지만, 전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인해 자신의 정규앨범을 무려 6년 넘게 발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파는 오랜 공백을 깨고 지난달에 발표한 5집 'The Windows Of My Soul'으로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비롯해 많은 가수들이 활동중단, 잠적이라는 이벤트를 통해 다음 앨범에서 이득을 보아 온 것이 사실이지만, 양파처럼 무려 6년이 넘는 시간동안 대중에게 잊혀져 있던 가수가 컴백해서 많은 인기를 얻은 경우는 거의 없다. 10년 만에 돌아온 015B 7집이 시장에서 실패한 것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한 마디로 재기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양파는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현재 양파가 기록하고 스코어를 간략히 살펴보면, 5집 앨범이 발매되자마자 앨범판매량 1위를 차지했고 타이틀곡 ‘사랑... 그게 뭔데’는 공중파 3사 가요프로그램에서 1위에 비견하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 온라인과 모바일 순위에서도 마찬가지다. 비록 예전 양파가 활동하던 시기에 비해 판이 많이 작아지긴 했어도 양파는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연말 가요시상식에서 양파가 올해의 대상을 차지할 지도 모를 일이다.

이토록 높은 인기를 양파가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타이틀곡 ‘사랑... 그게 뭔데’에서 그 이유를 찾으려하지만, 곡으로만 따진다면 ‘사랑... 그게 뭔데’는 양파의 데뷔곡 애송이의 사랑보다도 음악성이 떨어지는 전형적인 마이너 팝 발라드 장르의 곡이다. 여전히 미숙한 고음처리와 좁은 음역은 양파가 가지고 있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앨범 내 참여한 뮤지션들도 3집에 비하면 비할 것도 아니다. 한 마디로, 지금의 양파 신드롬은 앨범 퀄리티나 개인의 음악적 성장 때문이 아니란 얘기다.

양파 신드롬의 이유는 우선 현재 우리나라 가요계의 하향 평준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TV, 라디오 할 것 없이 90년대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고, 추억팔이에 한창인 모습은 90년대 한국 가요계가 전성기였음을 그대로 나타내주고 있다. 가요는 BGM으로 전락한지 오래고, 열광적인 팬클럽 문화도 사그라들었다. SG워너비를 주축으로 한 소몰이 가수들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양파는 신인가수 못지않게 신선하고, 기대감을 품게 해주었다.

또 하나는 양파의 이미지메이킹이다. 양파는 데뷔곡 애송이의 사랑으로 립싱크 하는 ‘가짜 가수’가 아니라, 라이브를 고집한 ‘진짜 가수‘란 이미지를 획득했다. 이는 우리나라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 90년대 가요계가 달아준 훈장이자, 자랑스러운 상장이다. 여기에 학업성적은 우수했지만 정작 대학진학엔 실패한 가슴 아픈 사연과 버클리 음대란 스마트한 이미지까지 더해 ’왕년에 잘 나갔던 머리 좋은 진짜 가수‘란 이미지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나아가 90년대 가요계 황금기에서 자란 과거 세대들에게 함께 자라고, 다시 만났다는 행복감도 안겨줬다.

이처럼 현재 양파 신드롬은 음악적 성공이 아니라, 다분히 과대포장된 부분으로 인한 기형적인 인기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오랜만에 돌아와서 노래를 불러준다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인기를 차지할 수 있고, 모조리 무너져버리고 마는 현재 가수들의 하향 평준화된 수준이다. 양파만큼, 아니 양파보다 더 대단한 뮤지션이 널리고 널렸던 90년대인 것을 감안하면, 지금 가수들은 가수도 아니다.

이제는 팬들도 알아야 한다. 지금 자신들이 열광하고 있는 언니, 오빠, 형, 누나들이 과거에 비하면 얼마나 수준이 낮은 가수들인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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