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민주당' 인식 팽배..`盧心' 둘 명분 갈수록 위축
(서울=연합뉴스) 성기홍 기자 =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합당추진을 바라보는 청와대의 시선은 부정적이다.
무엇보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주창하는 `원칙을 지키는 정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두 당의 합당은 2004년 열린우리당 창당의 대의를 헌신짝처럼 던져버리고 `도로 민주당'으로 되돌아가는 노선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청와대는 양 당의 합당 논의에 대한 공식적 반응은 자제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법통'을 이은 정당의 대선 후보가 추진하는 정치적 노선에 대해 찬반 여부를 떠나 청와대가 즉각적으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또 다른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1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당대당 통합 논의에 대한 논평 요청을 받고 "당장 이렇다 저렇다 입장을 표명할 계획은 없다"며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노 대통령도 이 문제를 염두에 둔 공개적인 언급을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청와대 기류다.
그렇지만 합당을 추진하는 정동영 후보의 노선에 비판적 입장이 지배적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말 부터 공론화된 범여권 통합 추진과정에서 `정당간에 제휴나 연합은 할 수 있지만 헤쳐모여식 통합, 합당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줄곧 견지해온 점에 비춰볼 때 민주당과의 통합에 부정적이란 인식은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특히 최근 광주 전남지역 주요 인사 오찬간담회에서 열린우리당 창당 배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언급 등에서도 노 대통령의 인식은 변함이 없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노 대통령은 8일 간담회에서 "지난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을 응원했던 것은 호남 안에서도 경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며 "오로지 지역만을 근거로 단결하면 반드시 반작용을 부르게 되고 영원히 큰 판에서 이길 수 없다는 점을 상기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무조건 `호남 뭉치자, 뭉치자'는 그런 갑갑한 정치를 하는 호남 출신 국회의원들하고는 정치를 같이 못하겠다"며 "이것을 핀잔으로 생각하지 말고 그동안 저한테 오해를 가졌던 분들에 대한 간절한 해명으로 너그럽게 받아들여달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창당을 `응원'했던 배경을 설명한 언급이었지만, 지역주의 정치노선에 대한 반대 신념을 재확인한 것이다.
"호남안에서도 정당간 경쟁이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기준으로 할 때 노 대통령의 입장에서 양당의 통합은 `지역주의 회귀정치' 노선에 해당된다.
특히 원칙에 대한 논의나 공론화 과정없이 불과 며칠만에 전격적으로 당대당 통합이 추진되는데 대해서도 "과연 대선후보가 당통합을 결정할 권한이 있느냐"는 문제의식도 청와대내에는 없지 않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선에서 이기기 위해 국민들 마음을 묶으려면 원칙의 문제를 풀어서 지지기반을 넓히고 외연을 확장해야 하는데 이 같은 방식의 통합을 바탕으로 상대방 후보와 차별성을 어떻게 확보하고, 과연 승리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양당의 합당이 성사될 경우 이번 대선 국면에서 노 대통령과 정 후보간의 관계가 기왕에 청와대가 밝힌 `소극적 지지'라는 입장 그 이상을 넘어서 좁혀지기는 불가능할 전망이다.
청와대가 정 후보 선출 이후 "열린우리당을 깨트린데 대해 입장을 밝히고 원칙에 대한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며 `전제와 조건을 붙인 소극적 지지'라는 입장을 천명했지만, 정 후보는 오히려 민주당과의 합당 추진이라는 정반대의 카드로 답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노 대통령이 굳이 나서서 정 후보의 합당 추진 노선에 `찬물'을 끼얹고 판을 흐트러 뜨리거나 일부러 정 후보와 각을 세우는 시도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당 경선과정에서 친노(親盧) 후보의 패배에 이어 민주당과의 합당이란 상황까지 전개됨에 따라 이번 대선구도는 명분과 진정성을 갖고 `노심'(盧心)을 둘 곳은 갈수록 위축되는 양상으로 판이 짜일 전망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9월1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대선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솔직히 말하면 나는 원칙없는 기회주의자들의 싸움에 별 관심이 없다. 원칙이 승리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sg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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