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과 이인제의 후보 단일화를 매개로 한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합당작업이 삐걱대는 모양이다. 국민원로는 양당의 당 대 당 통합에 대해 별로 논평하고픈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영양가, 즉 파괴력 자체가 없는 탓이다. 범여권의 단일화 논쟁을 접할 때마다 떠오르는 문구가 있다. 6년인가 7년 전쯤에 길거리에서 주운 단란주점 홍보용 전단지에서 목격했던. “만지나 안 만지나 3만원!”
합치나 안 합치나 19프로!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범여권이 자력으로 얻을 수 있는 득표율이다. 추가로 표를 얻는 일은 범여권이 아닌 이명박 하기에 달렸다. 이회창과 박근혜 또한 범여권의 득표수에 만만치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나는 이회창이 이명박에게 역전승을 거두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이회창을 응원하는 동기는 다른 국민들과 비슷하다. 이회창이 집권할 경우 노무현을 비롯한 친노세력 수뇌부 전원이 무조건 콩밥을 먹을 테니까. 진짜로 이회창이 개과천선해 노무현에 더해서 이건희까지 구속시킨다면 더더욱 좋겠고.
정책선거? 순전히 개 풀 뜯어먹는 소리다. 정책선거를 부르짖는 인간들의 면목을 찬찬히 뜯어보자. 대학교수들이 주류다. 문제는 정책선거를 그토록 강력히 주장하던 교수들이 정권에서 한 자리 차지하자마자 강단에서 외쳤던 색채와 노선이 희미해진다는 데 있다. 강단에서만 목소리를 높이는 부류는 그나마 양심적인 편이다. 언론매체를 빌려 이런저런 이론과 대안을 늘어놓는 학자와 전문가들은 일단은 사기꾼으로 분류해도 무방하다. 그들이 신문에 올린 칼럼은 그들의 자기소개서다. 그들이 출연한 TV 토론프로그램은 그들의 면접장이다.
오마이뉴스에 강금실씨가 나타났다. 강금실에 이어서는 박주현이 등장할 예정이란다. 이회창이 확실히 거물은 거물이다. 덩달아 여러 사람 무대로 복귀한다. 강금실의 이야기는 대체적으로 동감할 만한 내용이다. 그러나 제목에 압축된 얘기의 요지는 4차원스럽다. 후보 단일화야 범여권 진영 전체의 여론이니 그렇다 치고 ‘공개토론’은 대체 뭐란 말인가?
제목을 강씨 본인이 뽑았는지 오마이뉴스 편집국에서 정했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허나 이것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범여권은, 외연을 확장하면 개혁세력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렸다는 거다. “토론이 밥 먹여 주냐?” 2007년 대선정국을 관통하는 민심의 도저한 흐름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를 간파하지 못한 채 공개토론을 운위하다니? 노무현이나 강금실이나 불 난데 기름 끼얹기는 피차일반인 셈이다. 차이점이라면 노무현은 휘발유를 붓고 강금실은 식용유를 부린다는 것이다. 불이 꺼질 리 만무하다.
한국사회에서 토론의 중요성을 제일 강조하는 집단은 두 개다. 첫째는 토론프로그램으로 재미 좀 보려는 언론사들이다. 둘째는 신문방송학, 요즘의 언론정보학 교수들이다. 토론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죽을 쑤면서 언론사들은 토론회 유치에 크게 열의를 보이지 않는 추세다. 반면 그러면 그럴수록 신방과 교수들은 애가 탄다. 자신들의 밥그릇이 확 줄어드는 이유에서다. 대권후보들의 토론회가 열리면 신방과 교수들은 당연히 전무가 자격으로 토론준비에 참여하게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후보자와 교수들 사이에 싹트는 교분과 스킨십이 교수들한테는 매우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 특히 나름대로 진보개혁 성향이라고 으스대는 사람들일수록 토론회에 목을 매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토론회를 철저히 기피하는 이명박은 공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를 거꾸로 해석하면 이명박이 그만큼 선거운동을 영리하게 한다는 의미다. 이는 얄팍한 정치공학적 발상이 절대 아니다.
토론회에서 후보의 자질을 가리자는 주장을 제일 많이 하는 집단이 누구인지를 따져보시라. 토론회를 진행하는 관계자들이다. 주로 언론과 관련학과 교수들이 이런 소리를 많이 한다. 나는 미국식 토론회의 섣부른 도입이야말로 대한민국 정치를 말아먹은 주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믿는다.
정치인은 민심의 현장과 멀어질 때 어리석어지기 마련이다. 정치 9단이라던 김대중의 사례를 보시라. 10년 동안 힘있고 유명한 사람들과 만난 결과 정치적인 오판을 끊임없이 양산하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참단함 말로와 이명박 대 이회창으로 엉뚱하게 조성된 1 대 1 구도는 DJ의 오산을 입증하는 구체적 물증들이다.
나는 후보들에게 토론회 준비할 시간 있으면 거리로 나아가 평범한 유권자들과 악수라고 한 번 더 하라고 권유하겠다. 물론 후보자들의 동선은 사전에 치밀히 짜여진 각본에 의거한 것이다. 그들이 만나는 유권자와 방문하는 곳 역시 기본적 스크린을 거친 인물과 장소들이다. 그러나 아무리 연출된 이벤트라 하여도 현장에는 스튜디오에서는 결코 느끼고 경험할 수 없는 진실이 존재하는 법이다. 정동영과 문국현이 토론회 준비하는 동안 이명박과 이회창은 재래시장을 누빈다. 누가더 민심의 소리를 정확히 포착할지는 물으나 마나다.
범여권 주자들이 마의 10프로에서 벗어날 의향이 약간이라도 있다면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후보와 당과 국민이 아닌 자기들 밥그릇을 위해 존재하는 토론팀을 즉각 해체해라. 그리고 공중파를 위시한 모든 토론프로그램에 불참한 방침임을 통보해랴. 이거야말로 최고로 효과적인 차별화 전략이 될 것이다. 이명박과 이회창은 순대 아줌마하고 서민적 분위기로 농담 따먹기 하는데, 정동여과 문국현은 소위 명문대의 신방과 교수들과 어울려 골방에서 예상문답 외운다. 한나라당에 일방적으로 기운 지지율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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