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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는 미국 콤플렉스를 떨쳐냈다"

우석훈 박사의 <88만원 세대>에 덧붙여


반드시 정독해야할 책 <88만원 세대>

노무현 정권 들어, 필자는 강준만, 최장집, 김만흠 등의 책 이외에는 진보 지식인들의 책을 정독하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그 누가 글을 쓰든 성찰과 반성도 없이, “수구세력의 준동을 막자” 이런 천박한 수준의 정략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우석훈 박사와 전 말지 기자 박권일씨가 펴낸 <88만원 세대>라는 책이 화제가 되어도, 관련 기사만 읽을 뿐, 들쳐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냥 “신자유주의에 맞서 싸우자”며 젊은층을 선동하는 내용일 것이란 선입관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필자의 판단은 그야말로 선입관이었다. 책의 내용 구구절절, 경제영역에서 소외된 채, 하루살이를 연명해나가는 젊은층의 좌절과 아픔을 구체적인 예시와 해외사례를 비교하며, 절실히 표현하고 있었다. 저자들이 평소부터 젊은층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문장들이었다.

필자 역시, 최근 몇 차례에 걸쳐서 세대론에 관한 칼럼을 기고한 바 있다. 90년대 느닷없이 나타난 신세대와 X세대가 이미 서른이 넘었는데, 아무런 사회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해보자는 내용이었다.

우박사 역시 <88만원 세대>에서 프랑스의 경우 20대가 각기 다른 정당 소속으로 세 명이나 대선에 출마하는데, 한국에서는 20대 국회의원조차 없다는 현실을 비판했다. 그는 실제로 대통합민주신당에 20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만들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었다. 필자 역시 민주당에 언론담당 비서관으로 20대 여성을 추천한 바도 있다.

우박사는 젊은세대가 경제영역과 정치영역에서 밀려나 있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점차 심화되는 고용구조의 모순과, 주거정책 등을 들고 있다. 안정된 직장을 갖지 못하고, 고도한 주택비용으로 젊은 세대는 늦은 나이까지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한다. 스스로 서지도 못하니, 자기 발언권을 갖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필자가 세대론에서 비판한 내용도, 90년대 중반 그토록 개성적이고 창의적이라던 신세대가 지금 2007년도에 대체 뭘 하고 있냐는 것이었다.

<88만원 세대>의 내용에 대해서는 워낙에 많은 언론보도가 있었으니, 생략하겠다. 물론 세대와 혁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사서 직접 읽어보기를 권하겠다.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그 메시지를 끌어내는 논의 과정 하나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필자가 우박사와 똑같이 고민한 내용을 덧붙여, 혹시라도 우박사가 생각하는 대안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겠다.

88만원 세대, 선진국 콤플렉스를 벗어난 최초의 세대

우박사의 책의 내용에서 필자가 제기하고 싶은 내용은 과연 88만원 세대에게, 386세대나 유신세대와는 다른 장점은 없냐는 것이다. 우박사가 언급한 대로, 세대 간의 전쟁이 벌어진다면, 88만원 세대의 장점이 있어야 한다. 장점이 없다면 세대 간의 전쟁은 불가능하고, 영언히 386세대의 밑에서 얻어먹는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

우박사의 책에는 바로 이 점이 언급되어있지 않다. 90년대의 신세대 논쟁과 같이, 창의력이나 개성, 이런 것은 없다는 점은 이미 드러났다. 88만원 세대 내에서의 엘리트들은 다들 고시원으로 향한다. 결과만 보자면, 88만원 세대는 가장 개성도 없고 용기도 없고, 조직력도 없는 열등 세대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88만원 세대의 장점을 뽑아보라면,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강대국이나 선진국에 대한 사대적 근성이 없는 첫 세대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88만원 세대가 뛰어놀고 있는 인터넷 등 뉴미디어나 대중문화는 현재로서도 대한민국 선진국에 전혀 뒤지지 않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박사나 박권일 기자는 이 점에 대해서는 그다지 중요하다고 보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한미FTA에 대해 열렬한 반대자이기 때문이다. 한미FTA는 경제영역에 관한 것이긴 하지만, 대중문화와 방송개방의 측면에서 보자면 문화영역이기도 하다.

한국은 자국영화가 50% 이상을 점유한 얼마 되지 않는 나라이다. 인도와 최근의 일본 정도를 제외하곤 없다. 또한 미국 영화는 20%대에 불과하다. 방송 드라마와 음반 시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금 이른바 ‘미드’(미국 드라마)가 뜨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의 프라임타임은 평일 밤 10시이다. 미드나 일드 모두 마니아층에서나 인기가 있을 뿐, 감히 프라임타임에는 들어올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음반시장은 그 자체로 노무현 정권 들어 사분의 일 토막 났지만, 그 내에서의 한국음반의 점유율은 무려 90%이다. 경제적으로 미국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 나라에서 자국의 대중문화 시장을 지켜내고, 한류수출까지 이루어냈다는 점은 매우 득톡한 현상이다.

우박사는 <디워> 논쟁에 대해서, 마치 쇼비니즘에 열광하는 나찌들이라는 진중권의 생각에 동의한 바 있다. 필자는 우박사가 이 점을 다시 한번 고민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젊은 세대는 미국에 대해서 그다지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작정 반미의식을 갖고 있지도 않다. 사안에 따라서 판단하며, 미국영화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얼마든지 미국시장 진출도 가능하다 판단한다. 이러한 의식이 <디워>에 대한 관심으로 촉발되었다.

진중권은 <디워>에 대한 열광을 비판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곤 했다. “프랑스와 독일도 하지 않는데 우리가 어떻게 미국시장에서 성공하느냐”부터, “미국영화는 대자본과 미학적 가치를 담고 있다”는 등, 사실 상 미국 영화 예찬자가 되어버렸다.

88만원 세대, 대기만성의 가능성이 크다

필자가 88만원 세대에 주목하는 점은 바로 여기이다. 386세대가 미국을 두려워하고, 유럽의 담론을 그대로 베껴온 반면, 88만원 세대는 얼마든지 독자적인 담론을 만들어낼 수 있는 성장적 배경을 갖고 있다. 지금의 88만원 세대가, 정치나 학계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이유도 어찌보면, 386세대처럼 유럽을 그대로 따라하지 않고, 독자의 길을 준비하는 과정 때문일 수도 있다. 경제의 80% 이상을 해외와의 교류에 의존하는 대한민국의 특성 상,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어떻게 보느냐는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 될 수 있다.

우박사는 20대의 거점으로 커피점과, 시민단체 등을 거론했다. 20대가 직접 커피전문점을 운영하고, 이러한 경험을 통해 새로운 대안경제론을 제기하는 시민단체 등을 조직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에도 진출하자는 것이다.

필자는 이에 더해, 대중문화와 뉴미디어 영역을 포함시킬 것을 우박사에 제안하겠다. 그러기 위해선 이 두 영역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 개혁정책이 필요하다. 필자가 직접 하고 있는 것은 포털 독점 해소 정책과, 연예인 매니저 자격증 제도이다. 이렇게 시장을 투명하게 해주어야만, 젊은층이 마음놓고 이 영역의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우박사가 한 가지를 더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최근 지방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몽골과 우크라이나 등 아시아지역의 IT 자원봉사단이 활동 중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도 역시 한국의 대중문화와 IT 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의 대중문화가 보급되지 않은 곳이 없고, 더 많은 교류를 위해, IT와 인터넷 발전이 필요하며, 한국의 대학생들은 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봉사활동 정도이지만, 만약 수년 후에, 이것이 경제영역으로 자리잡게 되면, 88만원 세대는 사상 최초로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적 주체로 자리잡을 수도 있다. 이는 386세대와 유신세대는 꿈도 꾸지 못하는 일들이다.

필자는 우박사와 이념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 일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필자가 뉴미디어와 대중문화 영역에서 국한되어 세대를 보는 반면, 우박사는 훨씬 더 깊고 넓게 88만원 세대를 보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다만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자신을 명랑 공산주의자로 칭하는 우박사가, 공고한 운동권 패거리주의에 맞서 싸울 수 있을지이다. 필자가 보기엔, 우박사의 88만원 세대 기획의 성공여부는 그가 운동권 패거리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냐는 여부에 달려있다. 그가 이를 인지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쨋든 우박사의 꿈이 반드시 성공하기를 바란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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