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레시안과 오마이뉴스에서 진보담론과 진보논객의 활동에 대한 기사를 다루었다. 전자는 진보의 몰락을 대중의 보수적 욕망 탓으로 돌렸고, 후자는, 진보 논객이 다시 구두끈을 매고 뛰자는 상투적인 내용이다.
이미 진보는 2004년 총선 이후, 모든 선거에서 패배하면서, 몰락의 위기에 빠져있었다. 갑자기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럼 대체 무려 4년 간 진보는 뭐 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다시 해보자는 뒷북을 치고 있는 것일까? 아니, 그래도 조금이나마 현실적 실천적 대안이라도 제시하면 봐줄만하지만,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낡은 레코드 돌리는 수준의 반복, 또 다시 반복 뿐이다.
논자에 상관없이, 진보논객들이 진보의 위기를 진단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노무현 정권은 진보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정권인데, 노정권의 실패가 진보의 실패로 오인되고 있다.
둘째, 대중의 물질적 욕망 탓에, 정신 근간을 뒤바꿀 만한 의식개혁이 없이는 백약이 무효이다.
이러한 하나하나한 이야기를 해대고 있으니, 진보는 더 이상 위기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진보의 위기는 이러한 공론으로 해결될 수 없다. 누구라도 한 명 나서서, 진보진영에 발을 담그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 부분을 논쟁의 소재로 올려야 한다.
첫째, 현재 진보진영 주류들의 담론이 사실 상, 유럽의 철지난 낡은 이론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진보진영에 유독 유럽 유학파가 많으며, 설사 유학을 가지 않았어도, 그들이 내세우는 담론은 대부분 독일이나 프랑스 학자들의 것을 표절한 수준이다. 우리와 전혀 환경이 다른 유럽의 철지난 진보담론을 그대로 가져왔으니, 현실에 적합하지 않고, 현실에 맞지 않으니, 정치에 적용되지 않으며, 대중에 외면을 받는 것이다.
둘째, 진보진영의 인맥은 386패거리들이 중심이 되어, 자유로운 사상적 경쟁이 전면 금지되어있다. 진보의 네트워크가 학연과 지연에 따른 인맥으로 구성되면서, 이미 대중에 외면받던지, 아니면 진보의 세불리기에 절대적 악영향을 끼치는 인물들이 퇴출되지 않고, 여전히 진보의 주류로 활동한다.
셋째, 바로 위와 같은 문제 때문에, 진보 진영 내에서는 386세대가 무려 10년 이상 장기집권하며, 전혀 새로운 세대의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는다. 88만원세대라는 20대를 위하겠다는 진중권이나 우석훈조차도, 여전히 386세대의 위대함을 예찬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런 수준의 진영에서, 차세대들이 활동한다는 것은 사실 상 불가능하다. 한번 진보진영 내에서의 학계나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보라. 지겨울 정도로 똑같은 사람들이 맨날 비슷한 단체 만들어서, 회장 해먹고, 이사장 해먹고, 감투 돌리기에 여념이 없다.
넷째, 진보는 자신들의 현실 부적합한 이론에 대해서, 단 한 번도 본질적 성찰을 한 바 없다. 그들이 내놓은 반성문이라는 것은 “우리가 이토록 좋은 사상을 갖고 있는데, 이를 대중에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반성할 줄 모르는 세력에 대해 민주화 시대의 대중들이 손을 내민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만약 진보의 재건에 뜻이 있는 사람들 중에 위의 문제점에 대해 동의한다면, 오히려 진보의 재건은 매우 빨라질 수도 있다. 우선적으로 위의 네 가지 문제점에 모두 걸리는 진보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을 진보 주류에서 내몰아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진보진영의 차세대들이 그 공간을 채우며, 새로운 진보 흐름을 주도할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위의 네 가지 문제점 때문에, 이와 같은 해결책은 실천될 수 없다. 지금까지 진보진영의 주류들이 보여준 행태는 바로 네 가지 문제점을 악용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데 혈안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고로, 필자와 같은 사람은 진보진영 내부에서 새로운 동력을 찾는다는 건 이미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진보진영의 거의 대부분의 권력자들은 진보가 아니라, 기득권에 안주하는 수구적 퇴행권력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보진영의 내부의 386세대 이하의 차세대의 반란 혹은 혁명을 기대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진보진영이 학계와 정계, 그리고 시민운동 영역에서 차세대의 새로운 반란을 철저히 통제하고 억압하는 시스템을 공고히 갖추고 있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래저래 진보의 부활은, 기존의 진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는 수구세력들의 영역을 좁혀들어가며, 그 내부에 있는 새로운 동력을 바깥으로 끌어내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즉, 진보의 부활은, 바로 진보라는 계급장을 달고 있는, 사이비 진보들, 직접적으로 말하면 수구세력들의 정체를 낱낱이 밝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문제는 이러한 일을 할 주체가 있느냐는 것이다. 솔직히 필자 같은 경우는 그냥 말조차 섞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그냥 놔두어도 알아서 자멸할 텐데, 왜 쓸데없이 이런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느냐 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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