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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옥의 티, '중천'

시네마 컨설팅 컨소시엄이 필요한 시점


좋은 소재

영화 '중천(조동오 감독)'에 나오는 중천(中天)은 저승과 이승의 중간계이자 환타지적 세계다. 참 좋은 소재다. 49재(四十九齋)라는 우리의 전통 의식을 단초로 활용한 점은 매우 탁월한 발상이다. 시공을 초월하여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나드는 환타지적 요소를 살린 점도 뛰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가 화려한 CG를 사용하고 또 2007년 청룡영화제에서 <디 워>를 제치고 기술상을 받았기에 <디 워>랑 비교하고 싶을 것이다. 영화 '중천'을 종합적인 견지에서 제대로 분석하려면 <디 워>가 아니라 무려 20년도 넘은 홍콩 SF영화 촉산(蜀山- 신촉산검협, 1983)과 천녀유혼(?女幽魂, 1987)과 비교해야 더 많은 점을 얻을 수 있다. 중천과 촉산의 마계(魔界)는 모두 이승과 저승의 중간계라는 점이 닮았고 이곽과 소화의 러브 스토리는 천녀유혼의 영채신과 섭소천의 이야기와 닮았기에 더욱 그렇다.

대사의 어색함

'중천'의 전반기에 표현된 극중 인물들의 대사는 너무 정보전달에만 치중하다 보니, 극적 리얼리티가 많이 떨어졌다. 몰입을 방해했다. 마치 여자가 쥐를 보고 "어맛! 쥐, 쥐, 쥐!" 이렇게 호들갑을 떨어야 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냥 "쥐 한 마리가 나왔네요" 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듯한 식의 어색한 대사가 이어졌다. 또한 이곽이 중천에 들어가 그곳 사람과 처음 조우하는 장면에서 "어휴~ 냄새, 이 사람 몸도 안씻고 그냥 왔네!"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만남도 너무 성급했다. 이곽이 이승에서 중천으로 처음 역할을 하게 되는 장면인 만큼, 이곽이 중천 사람들에게 말을 걸려고 할 때, 단역 몇몇이 "어휴, 무슨 냄새냐?"하고 코를 막으며 지나쳐 버린 후에, 이 부분이 진행되는 게 더 자연스러웠다. 중반에 접어들자 이런 대사의 어색함은 점차 줄어들었다.

와이어 액션

체조에서 뜀틀은 회전운동 후 그 착지 동작이 매우 중요하다. 액션무협영화에서도 와이어 액션은 공중 회전액션의 자연스러움과 우아함 못지않게 착지동작에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조폭마누라 2>도 그랬다. 나름 많이 발전해 가고 있음을 확인했지만 공중회전이나 와이어 액션은 아직도 우리가 익히 보와 왔던 홍콩 영화의 수준에 못 미쳤다. 무엇보다 착지 동작에서의 엉거주춤함은 특히 눈에 거슬렸다. 홍콩이나 중국 영화배우처럼 무술의 고수가 아닌 점과 한국의 스턴트맨이 와이어 액션에 덜 익숙함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다만 이 부분의 엉거주춤함은 착지하는 순간만은 전신보다는 하반신 또는 발만 찍는 방식을 사용해서 편집한다면 이런 기술적인 약점을 덜 노출시킬 수 있다. 이미 세계최고 수준의 와이어 액션이 눈에 익은 관객들에게 호응하려면, 정소동(鄭小東)이나 원화평(袁和平) 같은 무술 영화감독을 따로 초빙하거나 자문을 받아서 액션의 미학적인 완성도를 높이는 방안도 고려할 만했다. 그 과정에서 기술 이전까지 받으면 더욱 좋다. 적어도 '화산고'(2001년, 김태균감독)의 와이어 액션정도만 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여위(박상욱)의 등에서 강철 줄로 된 무기가 뻗어 나가는 액션은 '천녀유혼'에서 나오는 한 장면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한데, 중천의 경우는 이 액션이 너무 남발되는 까닭에 그만큼 강렬함이 약해서 갔다. 머지않아 이런 부분은 많이 개선될 것으로 본다.

화려한 CG


무수한 인력이 동원되고 엄청난 비용을 들여 구축했다는 화려한 CG는 특별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7년 전의 '화산고'와 비교해도 그 극적효과가 많이 떨어졌다. '중천'의 CG가 주로 고층건물 등의 배경세트나 공간의 창출에는 잘 활용된 반면에 정작 더 중요한 다이내믹한 액션 부분에서는 그 충실도와 완성도가 미흡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점은 악한 이무기인 부라퀴 자체가 CG에 의한 피조물인 까닭에 CG가 훨씬 광범위하고 효과적으로 활용된 <디 워>와 비교할 필요가 있다. 즉 많은 사람들이 <디 워>의 CG가 뛰어났기에 전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CG를 어디에 활용했는가 하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디 워>와의 흥행의 차이는 그 CG 기술력의 차이뿐만 아니라 그 기술력이 활용된 소재가 '학원무협(화산고)'과 '배경이나 공간 창출(중천)'보다는 '이무기 전설'이라는 아이템 자체에서 비롯된 점이 크다는 사실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물론 '화산고'의 경우 학교 내부가 아니라 학교 상호간의 패권다툼이거나 한중일 3개국의 학원대항이었다면 흥행에서 훨씬 유리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화산고2>가 어떻게 그려질 지 자못 기대된다. '중천'의 경우는 그 주제가 되었어야 할 이곽과 소화의 러브 스토리가 '천녀유혼'처럼 좀 더 아름답고 애절하게만 그려졌다면 사정은 많이 바뀔 수 있었다.

스타 마케팅-스타 활용 방식

정우성, 김태희는 한국에서 최고 스타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은 배우들이다. 그만큼 개런티도 높아서 제작비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만만찮았을 것이다. 한데 이런 대 스타를 두 명이나 캐스팅해 놓고도 충분히 활용되지 못한 감이 없지 않다. 유명스타의 활용이 작품성을 떠나서 흥행을 고려한 측면이 강하다면, 적어도 그 값어치를 충분히 할 수 있게 활용했어야 했다. 구체적으로 이곽(정우성)의 경우, 처용대를 회상하는 짧은 장면을 제외하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누더기 옷을 입힌 채, 영상 속을 활동하게 한 점은 너무 의아했다. 촉산(蜀山)에 나온 정소추와 임청하의 경우, 그들은 화려한 무협액션 못지않게 수려한 패션 감각이랄까, 멋지고 환상적인 이미지로도 관객들에게 색다른 쾌감을 선사한다. 영화 '중천'과 분위기가 매우 비슷한 '천녀유혼'도 장국영(영채신役)과 왕조현(섭소천役)은 마치 환상 속의 선남선녀처럼 수려하다.

정우성 정도의 배우면 아시아에서도 찾기 힘든 멋진 모델감인데 시종일관 거지나 낭인의 스타일로 옷을 입혀 놓게 한 일은 관객에 대한 서비스 측면을 생각해도 정말 아쉽다. 굳이 이 영화의 흥행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한류 스타를 만들어서 창출해 낼 수 있는 미래가치를 생각하면 더욱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곽에게 은혜를 입어 목숨을 구한 소화(김태희)가 손수 만든 천상의 옷을 마련해 주는 컨셉으로 이곽을 태왕사신기의 담덕(배용준)처럼 멋진 귀공자로 탈바꿈 시켜 중반 이후가 진행되는 구성이었다면 어땠을까? 이런 구성에 그들의 사랑을 무르익게 할 에피소드들을 담았다면 무엇보다 이승을 넘나드는 애절한 러브 스토리의 구성도 더 자연스러워졌을 것이다. 게다가 가장 말이 많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인 소화의 "할 수 있어, 사랑하니까!" 부분에 대한 관객들의 호응도도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욘사마와 태왕사신기

'태왕사신기'에서는 배용준이라는 한류스타에 대한 여성관객들의 취향을 살리기 위해 역사적 리얼리티에 대한 희생도 일정부분 감수하고 부드러운 말투까지도 고려했다. 엄청난 제작비를 감안하면 이 점은 적절한 선택이다. 영화 '중천(中天)'에서도 주인공 이곽을 '촉산'에서의 정소추나 '천녀유혼'에서의 장국영처럼 깔끔한 이미지로 관객에게 선사할 생각을 안했음은 몹시 아쉽다. 역사물을 소재로 한 태왕사신기도 그러한데 순수 환타지 영화인 '중천'의 경우는 더욱 고려해 봄 직 했다. 내가 감독이었다면 누더기 옷에 헝클어진 머릿결, 까칠하고 덥수룩한 외양의 이곽(정우성)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연기하도록 하기보다는 가능한 멋들어진 패션으로 배우를 돋보일 수 있는 구성을 먼저 착안했을 것이다. 그런 후 CF처럼 멋진 이미지의 액션을 선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 멋진 장면들이 각종 블로그나 UCC에 떠다니게 하면서 온갖 화제를 낳도록 하겠다. 감독이나 기획자라면 비용이 훨씬 적으면서도 효과가 더 큰 인터넷이나 UCC를 통한 관객의 자발적인 광고를 염두에 두고 기획할 필요도 있었다.

상업성과 작품성의 조화

필자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란 관객의 취향을 맞춰서 감동과 재미를 선사해 주면서도 감독이 하고 싶은 주제를 잘 전달하는 영화다. 물론 관객을 취향을 맞춘다는 건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더 많은 사람에게 자기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러브 스토리도 이곽과 소화가 죽기 전의 세상에서 신분상의 차이가 컸기에 사랑의 결실에 실패하게 설정한 후, 적어도 중천에서는 신분을 뛰어넘는 애절한 러브 스토리를 선보일 필요가 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이란 '때문에(because of)'의 구조가 아니라 '~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의 구조일 때 더 애절하게 다가서는 법이다.

최종 결투신

반추(허준호)와의 최종 결투신은 좀 싱거웠던 감이 있다. 이 결투신은 이승과 저승, 그리고 중천 모두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의 의미를 가지는 결전에 걸맞게 꾸밀 필요가 있었다. 극 초중반에 반추의 강력함을 몇 개의 장면으로 관객에게 미리 선보이고 또 이곽 또한 중천에서 선인(仙人)을 만나 더 강력한 무공을 익혀 업그레이드되는 구성이 되었으면 했다. 그리고 마지막 결투신은 배경세트를 다 부술 정도의 과감한 액션이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어차피 와이어 액션은 홍콩영화의 수준에 비해서 경쟁력이 없다면 이 부분은 더 현란한 CG로 구성해서 극적인 위기를 더 강하게 하거나 클라이막스를 효과적으로 표현했으면 했다.

시네마 컨설팅

송승환이 난타(Nanta)로 해외시장을 개척하려고 시도했을 때, 미국의 오페라전문가 집단으로부터 면밀한 흥행 컨설팅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에도 영화 제작 전반에 대한 컨설팅을 제대로 해 줄 수 있는 신종 직업군(職業群)이 생겨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2007년에 출품된 한국 영화가 총 112편인데 이중 흑자를 기록한 영화는 고작 13편으로 10% 남짓에 불과하다. 엄청난 국가 재원이 비효율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증거다. 좀 더 깊게 들어가면 십 수억씩 적자를 보면서도 영화를 계속 제작해 내는 이유에 대해서 의구심이 들 때다. 투자대비 효율 뿐만 아니라 혹시라도 제작비를 투명하지 않게 터무니없이 부풀린 후, 투자금 중에서 딴 주머니를 미리 챙겨두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 등으로 투자자체가 크게 위축되지 않을까 사뭇 걱정된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한국의 영화산업 전반에 대한 전문가들의 심도 깊은 컨설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한 트랜스포머의 경우, 스티븐 스필버그와 마이클 베이라는 거장이 힘을 합쳐서 만든 영화라는 점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그 이름도 쟁쟁한 감독들이 힘을 합쳐서 한 영화를 만든다는 건, 한국의 영화제작 풍토에서는 쉽게 수긍하기 힘든 문화양식이다. 이 뿐인가? 헐리우드에서는 시나리오 하나에도 수 십 명이 넘는 엘리트들이 달라 붙어서 공동작업을 하는 일이 오히려 일반적이다. CSI 같은 인기 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작가만 해도 무려 2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21세기 국가경쟁력에서 영상문화산업이 차지하는 힘과 비중을 고려하면 범국가적 차원에서도 영화산업 전반에 걸친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경쟁력을 키우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 김휘영(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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