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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선 직후 개혁 세력들이 스스로 자위하던 논거 중 하나가 많은 현대 국가 중 현대민주주의 발전의 역정은 항시 직선으로 순탄하게 전진해 온 것이 아닌 굴곡을 거치면서 왔다는 것이다. 그 중 프랑스 같은 강대국도 그런 역사가 있었다고 자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믿음은 근거 없는 미신에 가깝다. 이 세상에 퇴보하여 아직도 그 질곡으로 고생하는, 수세기에 걸쳐 고생하는 국민들도 있으며 역사상 사라져 버린 국가와 민족, 문명 또한 많기에 이는 일종의 동학민들이 총탄을 피해갈거라고 믿은 부적에 대한 믿음과 가깝다.

특히 프랑스 같은 경우 수차례 유혈혁명을 통해 결국 거의 대부분의 성인의 손으로 투표한 결과조차 또 다시 황제정으로 복귀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면서 한국 17대 대선 투표에서도 국민의 손으로 뒤로 퇴행하는 투표를 했는데, 프랑스가 지금처럼 민주화 되었듯 한국도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믿음은 mb테마주 이화공영이 반년 사이 60배 이상 뛰었었다고 모든 건설주가 다 뛸 것이라는 믿음과 같이 위험하다.

특히나 대박주가 항시 잘 나간 것이 아닌 어려움을 극복하고 환경적 조건이 왔기에 뛴 것이듯, 이후의 프랑스를 보면 영국과의 경쟁에서 본격적으로 뒤쳐지기 시작함을 알 수 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아직도 과거의 상한가를 꿈꾸고 탐하는 짓은 쪽박차기 좋은 사고방식이다. ) 이 황제정 하의 프랑스의 진보적 국민은 정권의 탄압을 피해, 외국으로 떠돌아 다녔음을 인지해야 한다. 이 역사의 도태는 결국 독일에도 밀려서 파리 점령의 능욕을 당해 수만명의 피를 뿌리게 되고, 결국 프랑스가 영국과 다시 경쟁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독일에게 까지 모욕당하고 범 국민들의 국가적 자존심에 좌절감을 맛본 후, 2차대전의 광기의 유례없던 대규모 파괴로 서로들 다 파괴된 후 비로소 엇비슷 해졌을 뿐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현 한국 사회와 같은 환경에서 다시 정권을 찾아올 것을 꿈꾸는 것 자체가 얼마나 몽상적인가? 프랑스 같은 나라가 다시 제정을 무너뜨리는데 그토록 고통을 겪어고 나서야, 고통이 임계점에 다달하고 나서야 겨우겨우, 그것도 침략 받은 후 외세의 영향 하에 바뀌었는데, 이런 과정이 올지도 모르고, 또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 면면히 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다시 정권 찾을 전략이나 짜자니, 서낭당에서 누가 비니까 되더라는 말을 믿고 문제해결의 가장 중심되는 전략으로 삼는 것 같이 어리석어 보인다.

2. 당시 프랑스에서 황제정이 다시 시작되어. 수년간의 전쟁과 독재 그리고 혁명을 통해 불안했던 정국이 국내적으로 안정화 기미가 보이면서 비로소 프랑스도 이미 영국이 걸어왔던 공업화를 시도하는 듯하나, 정치집단을 테러 탄압하는 사회와 의회 민주제 속에서 딜이 일어나는 체제와는 다른 것이다. 이는 식민지 경영에서도 분명한 차이점을 드러낸다. 영국은 진보적 사고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독자적 영역,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개인의 이익 논리에 따라 식민지 가서 꿈을 실현하러 가고 개인의 자율성에 의해 보다 효과적으로 움직인 구조였다면, 프랑스는 수구적 정권들의 이익을 위해, 정권을 등에 업고 식민지를 경영하는 식의 진출이었다. 황제정의 카톨릭이라는 종교적 이념을 이익 창출의 사고 구조로 중심 삼아 부를 창출하는 구조여서 국가재정도 광범위하게 소비된 반면, 영국의 신교도들과 같이, 아니면 범죄자, 사회적 왕따 등 자신이 자국에서 이룰 수 없는 좋은 세상을 건설하려는 의지에서 보다 개인적 차원에서 개발하던 시스템과는 경쟁력이 떨어졌다. 오히려 프랑스의 진보세력들은 식민지에서 조차 본국에서의 세력과 이익 충돌이 벌어지고 탄압을 받게 되어 이들의 불만은 더 극에 달한다. 이러한 진보세력들의 불만은 주변국가들의 진보세력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발전해 나가는 것을 보고 경쟁에서 도태됨을 느낌으로써 더 가열차졌으나, 그래도 아직 기회는 오지않고 이미 때는 늦어, 비스마르크의 독일에게 점령당하고 그 울분은 내전으로 푸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민 혁명 후 기회를 잡고 상업적 이익구조를 이미 창출 했던 진보세력이 그 끈이 독재로, 황제정으로 돌아감으로 인해 끊어지고 주변국의 세력들보다 뒤쳐지고, 자국내의 세력에도 다툼으로 인해 뒤쳐지니 이러한 힘있는 세력이 명백한 이익상에서의 손해를 입고 있다는 인식이 있었기에 가능했기에 그나마 들고 일어났고, 궁극적으로 다시 민주화 되는데 이바지 할 수 있었지만, 한국의 경우 또한 이와 같을까 하는데는 회의적임을 쉬 알 수 있다.

3. 프랑스 내에 각 이익 집단의 이익을 챙겨주고 보장해 주는데 방만히 재정을 쓰느라 국민이 몸으로 때워 전쟁 함으로 고생했듯이, 한국도 지금 그런 상황에 와 있다. 한국도 잘사는 사람은 다시 금융위기가 와도 지난 금융위기 보다 잘사는 사람은 훨씬 늘어나 있을 것이다. 이점도 원인이 되겠지만 그래서 지난 금융위기 정도가 아닌, 한국 국민이 그 변화할 수 있을 고통의 임계점은 더 높아져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정권 바꿀 생각을 하기 전에 국민 고생할 일을 먼저 걱정하는 편이 우선일 듯하고, 그런 무서운 일이 일어나고 난 후부터 거기서부터가 개혁세력은 비로소 시작일 수도 있겠다. 곧 이것으로 바로 자신들에게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되고 비로소 당시 프랑스 개혁세력이 바로 정권을 못 얻었듯이, 국민의 지지를 다시 결집할 시발점이나 될 지 모르겠다. 이것이 보다 적합한 현실인 이유는 한국 사회의 현실과 개혁세력의 인식과 행태 수준에 대한 분석은 다음 편에 다루겠다. 이러한 인식과 행태가 바뀌지 않고 짜는 모든 작전은 일단 피를 보던지 처참한 꼴을 당해보고서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나 프랑스는 식민지라도 많고 그 주변국이 아직 봉건적, 종교적, 관념적, 구태의 시스템으로 돌아가던 나라가 많아 그렇게 삽질을 하고도 여전히 일정 정도의 상당한 헤게모니를 유지해 나갈 수 있었지만 한국은 그렇게 한가한 상황일까?

그러면 개혁세력이 좋아하던 프랑스는 어떤 정도의 피해를 보고 그나마 변했는지, 그리고 현재 한국은 어떤 토양에 서있느니 밝히는 작업을 다음에 해 보겠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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