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퇴장으로 대선무대에 설 두 주인공이 마침내 확정되었다. 대선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상황까지 본 무대에 설 주인공이 도대체 누구인지, 길고 긴 최종 오디션이 이어지는 동안 지루하고 피로했던 국민들도 자세를 고쳐 잡고 이제 곧 막이 오를 대선이라는 거대 정치쇼를 즐길 채비를 갖출 수 있게 된 셈이다. 한마디로 안철수의 사퇴는 주인공이 확정됐다는 그 이상의 의미도, 그 이하의 의미도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데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디션이 겨우 끝난 것을 무대의 피날레가 끝난 것으로 생각한다. 안철수의 퇴장을 피날레 막이 내리는 것으로 판단한다. 착각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김칫국부터 들이켜는 모양새가 딱하다. 무대에서 펼쳐질 진짜 경쟁은 이제 막 시작됐다. 중요한 건 두 주인공 중 한쪽은 치열한 오디션을 거치면서 단단해졌다는 것이고 한쪽은 이미 오래 전부터 경쟁 없이 홀로 달렸다는 점이다.
안철수는 퇴장했지만, 실은 퇴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안철수에게 향했던 새정치에 대한 희망, 이념적·정치적 양 극단에 대한 반감, 보수와 진보를 표방했던 기존 기득권자와 사이비들을 퇴출시키고 환골탈태하라는 새 시대에 대한 요구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다시 물밑으로 가라앉았을 뿐이다. 안철수의 퇴장은 이러한 요구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좌절함으로써 더 강한 열망으로 단단해졌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박근혜·문재인 두 후보가 이 같은 열망을 품지 않고서는 ‘박정희를 넘어선 박근혜’ ‘노무현을 넘어선 문재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문제는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누가 새 시대의 맏형이 될 것이냐다. 그것은 누가 시대착오적인 진영논리에 발목이 잡히지 않고 개방과 포용의 시대정신을 발현할 수 있느냐다.
보수희화화, 정치도구화에 앞장섰던 사이비로는 안철수가 담았던 보수·중도의 외면만 받을뿐
그런 점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진영이 여전히 현실안주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유감스럽다. 변하지 않아야 할 원칙은 유불리에 따라 쉽게 바꾸면서도 하루라도 빨리 바뀌어야 할 잘못된 행태들은 무서울 정도로 변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박근혜 1인에 집중된 권력에 따라 움직이는 캠프의 경직된 모습,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하지 않는 찬양일변도의 지지자들의 행태, 도무지 창의적 구석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낡은 발상에서 나온 선거 전략들, 이런 것들로 문재인을 이기겠다고 벼르고 있으니 어떻게 한심하지 않을 수가 있나. 특히 박근혜 후보의 고루하고 과거지향적인 이미지를 고착화시키고 있는 소위 보수 논객들이란 자들의 행태는 더욱 가관이다. 아전인수와 자화자찬식 정국해석으로 보수를 희화화시키는 자, 박 후보의 말 한마디에 따라 자신의 기본논리와 원칙도 잊고 수시로 천사와 악마로 갈아치우는 자, 보수의 ‘가치’를 ‘정략(政略)’으로 오도(誤導)하는 잘못된 ‘보수팔이’들이 제철 만난 듯 설쳐선 안철수에 기울었던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최근의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박 후보가 얻은 것은 고작해야 45% 안팎이다. 오차범위 내에서의 근소한 차이로 문 후보를 앞서고 있다는 수치뿐이다. 어떤 조사에서는 박 후보가 크게 앞서는 결과가 나왔다곤 하지만 문 후보가 앞서는 결과도 여러 군데서 나왔다. 안 후보의 지지를 문 후보가 55%를 흡수한 반면 박 후보는 20%밖에 흡수하지 못했다는 결과도 있다. 더군다나 여론조사 기관별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지지율이 2%차로 좁혀지고 있다는 여론조사 전문가의 분석도 나왔다. 이게 어떻게 박 후보가 승기를 잡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나? 그렇다면 뻔한 얘기가 된다. 안철수가 담았던 구태를 벗은 새 정치, 낡은 진영논리, 적대적 대결논리가 아닌 가치의 경쟁을 바라는 국민의 마음을 누가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느냐에 성패가 달렸다는 얘기다.
많은 이들이 예상했던 안철수의 사퇴를 보고 “내 예상이 적중해 소스라치게 놀랐다”는 개그나 하고 있는 윤창중과 같은 사람으로는 보수의 외연확대는 요원하다. 경쟁하는 상대진영 후보를 향해 모욕이나 주고, 악담이나 퍼붓는 것으로 보수의 승리에 기여하는 줄 착각하는 저열한 수준으로는 대한민국을 위해 왜 보수가 승리해야하는 지 국민들이 제대로 알 도리가 없다. 게다가 윤창중은 박 후보의 새누리당 경선 경쟁 상대였던 정몽준, 김문수, 잠재적 경쟁자였던 이회창 등을 인신공격하며 냄새나는 뒷담화까지 까발리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보수분열의 지대한 공을 세웠던 자다. 박 후보가 보수의 가치를 포퓰리즘에 팔아도 아픈 매 한 대 들기보다 찬양가 한 소절 더 부르며 아부하는 것으로 자신의 인기관리에만 몰두했던 자가 설치는 한 박 후보가 반드시 얻어야 할 민심을 얻기란 어렵다. 온갖 모순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차악논리로 보수를 일방으로 몰아붙인다고 보수가 진짜 ‘단일화’돼 선거일 일제히 1번을 찍을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윤창중류와 전원책·양영태 중 누가 국민통합·외연확대에 걸림돌인가?
착각해선 안 된다. 이런 보수팔이 논객들의 난장으로 보수우파는 여전히 분열된 상태다. 안철수에게 갔던 보수들은 투표할 의욕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박 후보는 자신이 얻을 수 있는 범보수의 최대치 지지도 못 얻고 있다는 소리다. 그런 보수의 현실을 외면한 채 안철수를 지지했던 보수를 비난하고 안철수를 때린다고 해서 박 후보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중도의 마음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란 소리다. 안철수에게로 향했던 보수와 중도의 요구는 명확하다. 보수가 기득권 지키기와 시대착오에서 탈피해 신(新)보수가 되라는 것이다. 내편이라도 잘못된 점은 분명히 비판하고 네 편을 무조건 악으로 취급해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제대로 된 보수의 가치를 보여 달라는 것이다. 보수가 무시당하고 조롱받는 것은 표를 위해서라면 영혼을 팔아도 상관이 없다는 식의 원칙파괴 행태들 때문이고 한 사람의 권력자에 잘 보이려는 아부꾼들이 보수연하는 것을 방관해왔기 때문이다.
박 후보가 새정치와 보수의 환골탈태를 바라는 무당파와 젊은층의 마음을 어떤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안철수가 담았던 민심을 얼마만큼 다시 되찾아 올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분명한 것은 쿠데타를 쿠데타로 인정하고 유신독재의 잘못을 분명히 비판할 줄 아는 참보수, 진짜 보수들의 목소리가 제자리를 찾을 때 그 가능성이 크게 열릴 수 있다는 점이다. 보수라는 가치가, 보수라는 사람들이, 대선 때마다 달라지는 후보 한 사람의 생각과 판단과 행동에 따라 카멜레온식으로 달라지는 허무한 개그를 종식시켜야 한다. 보수를 정치화 도구로 시시각각 악용하지 않는, 가치를 지키는 논객들이 제 위상을 찾을 때 보수도 지긋지긋한 구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윤창중류의 논객들이 말과 글로 보수를 희화화시키고, 정치도구화시키면서 보수의 터가 왜곡되어온 것이 바로 잡혀야 한다. 이런류의 논객들은 자신들의 인기 관리를 위해 알게 모르게 스스로 필히 ‘가치’를 훼손시키기 마련이다. 상대방을 인정하면서도 상대의 모순을 꿰뚫고 동시에 우리 내부의 부조리에도 눈을 부릅뜨는 전원책, 양영태와 같은 바른 논객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대선 후보 눈치를 보느라, 혹은 정치공학적 계산에 의해 자신들이 내세우는 절대가치 6.15와 10.4선언도 고무줄 잣대를 들이대는 논객들과 오로지 자신의 입신양명, 인기만 의식하며 얄팍한 논리를 앞세우는 사이비 논객들이 보수진영을 좌지우지 한다면 앞날은 캄캄하다. 보수의 외연을 좁힐 대로 좁히고 보수의 숨통을 조이는 가짜를 쳐내야 한다.
국민통합과 새정치를 요구하는 것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정신이다. 제 눈의 들보는 못보고 남의 티끌만 손가락질하느라 바빠 자기혁신에 게으른 가짜들이 설쳐선 이번 대선 승리도 요원하다. 착각해선 안 된다. 보수는 아직 진짜 단일화가 되지 못했다. 진보가 단일화에 실패했다는 주장도 섣부른 착각에 불과하다. 보수, 중도, 무당파가 안철수에게 기울었던 건 윤창중류가 설치는 잘못된 보수세력을 지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치를 지키는 것이 보수가 되어야지, 한 사람의 권력자를 지키는 보수가 되어선 안 된다. 보수가 이번 선거를 이길 수 있느냐 아니냐는 바로 거기에 달렸다.
폴리뷰 편집국장 - 박한명 -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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