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은 북한의 ‘反日 왕재산 회의’ 80주년이었다. 왕재산 회의란 1933년 3월 11일 김일성이 항일유격대의 부대를 이끌고 함경북도 온성지방 왕재산에 진출해 소집했다는 ‘온성지구 지하혁명조직책임자 및 정치공작회의’를 말한다.
[독립신문 김승근 편집장] 더 풀어서 말하면 김일성이 1933년 3월 11일 함경북도 온성군에 있는 왕재산 마루에서 온성지구의 빨치산 혁명 조직 책임자들과 정치공작원들을 만나 “무장투쟁을 국내로 확대, 발전시키기 위하여”라는 연설을 했다는 날이다.
북한은 이날을 기념하고 있다.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김일성이 14세 때 “조국이 독립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만주로 떠난 후 22세 때인 1933년에 다시 돌아와 ‘反日 왕재산회의’를 개최했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선전을 뒷받침하기 위해 평양 만수대 언덕 위에 위치한 ‘조선혁명박물관’ 제 10호실에 ‘反日 왕재산회의’와 관련한 각종 사진자료 등을 전시해 놓고 있다. 또 1975년 10월에는 ‘왕재산혁명박물관’까지 건립해 김일성 우상화를 위한 주민 사상교육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회의에서 김일성은 연설을 통해 무장투쟁을 국내로 확대발전시켜야 함을 강조하고 반(反)유격구 창설방침을 제시했다고 주장한다. 북한에서도 중요한 항일혁명의 사적지로 성역화돼 있다.
김일성을 반제국주의 운동의 국제적 지도자로 격상 시키려는 북한의 계획은 충분히 알겠다. 이미 수십년전부터 항일투쟁과 관련한 각종 보고회, 기념회 등을 개최하며 업적을 기려오지 않았는가.
김일성의 反제국주의 운동 업적을 기리기 위한 ‘국제 김일성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이 상은 ‘反제국주의 운동의 탁월한 영도자’인 김일성의 업적을 빛내기 위해 제정된 것으로 세계의 자주화와 평화 실현이라는 주체사상 구현에 헌신한 인사들에게 수여된다는 것이 북한측 설명이었다.
북한은 ‘왕재산회의’를 매년 기리며 당과 군의 결속을 유도하는 동시에 북한식 사회주의체제를 계속 이어나갈 것임을 다짐하고 있다.
하지만 유동열 치안정책연구소 선임연구관 등에 따르면 이는 북한의 완전한 역사날조다. ‘왕재산회의’란 존재하지도 않는 허구라는 주장이다.
왕재산회를 개최했다는 1933년 당시, 김일성은 북한주장대로 백두산을 근거지로 반일인민유격대를 이끌고 있지 않았다.
만주 동만지구 중국공산당 유격대인 동북인민혁명군에 가담, 중국공산당을 위해 충성을 바치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왕재산회의는 북한당국이 김일성을 우상화하기 위해 역사조작한 항일무장투쟁사 중의 하나라는 얘기다.
불과 100년도 안된 해방전후사에 대한 인식의 부재와 오류 때문에 아직도 북한 김일성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연구관의 주장이었다.
김일성은 북한이 주장한 것처럼, 백두산을 근거지로 독자적으로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 항일무장단체를 결성해 조선해방을 이룬 것이 아니라. 1920년대는 비적활동을 1930년대 중국공산당을 위해 1940년대는 소련공산당을 위해 일부 항일활동을 전개한 것 뿐이다. 조선독립운동을 위해 종사한 적이 없다는 얘기다.
북한이 자신들의 체제 방향을 공고히 하고 주민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유도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었으리라.
조국을 그렇게 생각했다는 김일성이 한국에 일으킨 동족상잔의 비극을 보라. 공산주의 권력자들은 혁명 앞에서 동포나 개인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김일성은 6.25를 일으켜 수백만명의 사상자를 냈다. 한국의 동포들은 그저 쳐부숴야할 적이었을 뿐, 절대 한 핏줄을 가진 민족으로 보지 않았다.
조국을 생각한다는 김일성은 그 방법으로 다른 생각을 가진 민주주의 세력을 죽여 없애는 방법을 택했다. 그런 그의 유훈과 정신을 받았으니 김정일, 김정은까지 같은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오늘날 김정은이 핵무기를 만들어 한국을 위협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정은이 김일성을 닮으려 애쓴 건 외모 뿐만이 아니다. 그의 호전적이고 동포를 적으로만 바라보는 그 시선을 그대로 닮았다.
해외 유학파였던 김정은이 처음부터 그런 막무가내 캐릭터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공산주의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잇기 위해 본받은 그 이념과 정신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따지고보면 오늘날 김정은의 핵 도발은 김일성의 왕재산 회의에서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북한이 있지도 않은 김일성의 항일투쟁 경력과 반제국주의 업적을 만들어 강조하면서부터 미국 등을 제국주의자들로 규정, NPT를 탈퇴하지 않았나. 그에 대한 국제적 압박과 반발 역시 모두 같은 연장선상이 있는 것이다.
덧붙여 ‘세계의 자주평화’와 ‘평화실현’이라는 가치가 오늘날 북한이 핵을 이용한 국제화를 꿈꾸게 만든 기초가 됐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있지도 않았던 반일 왕재산회의. 그럼에도 그 뜻을 실현하고 싶다면 김정은은 정말 ‘왕재산’에 올라라. 그리고 항일 정신을 이어받아 한국에 대한 위협과 협박, 의미없는 도발을 멈추겠다는 연설을 하라.
할아버지 김일성이 연설했던 게 정말 반일정신과 조국을 위하는 마음이었다면, 진실된 마음으로 한국에게 손을 내밀고 도움을 청하라. 그것이 바로 제국에 맞서거나 혹은 조국을 위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또 이상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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