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워치】김휘영의 문화칼럼= 최근 한국 사회를 불판으로 달구고 있는 이병헌· 다희 사건의 본질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40대 중반의 한 중년 남성이 술에 취한 채 20세 이상 어린 여성 2명을 상대로 노골적인 성희롱 내지 성추행에 해당됨직한 언사를 했다는 게 첫 번째 팩트다. 그런데 이 사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둘째로 20대 여성 두 명은 이에 대한 결정적인 동영상 증거를 확보했고 이를 근거로 그 가해자에게 돈을 요구하다가 오히려 협박죄 또는 공갈미수죄로 검거된 사건이다.
이 사건이 한국 사회에 큰 화제가 된 건 잘 구성된 한편의 영화 같기 때문이다. 우선 등장인물이 한국 최고의 월드 스타 배우인 이병헌이 가해자 겸 피해자로 깊게 개입해 있고, 또 동영상 공개를 빌미로 50억을 요구한 협박의 가해자 또한 신인 걸 그룹 글램의 멤버 다희(21세)이고 또 한 명은 모델 이지연(25세)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스타, 미인,범죄, 돈 등 영화적 흥행 요소는 거의 다 들어 있고 게다가 반전까지 있다.
더 나아가 9월 10일 뉴스에는 50억이라는 거액을 요구했기 때문에 무기징역까지 선고 받을 수 있다고 하여 또 화제가 되었다. 필자는 이 사건의 내막과 진행 추이를 보면서 가장 중요한 사건의 본질이 각종 미디어에 의해 엉뚱한 곳으로 끌려가고 또 왜곡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동영상에 나온 이병헌(45세)의 발언은 적어도 필자가 보기엔 20대의 여성이 참고 넘길 정도의 선을 넘은 성희롱 또는 성추행에 해당됨직한 사안인데 이 사건을 다루는 언론 미디어들은 한결같이 ‘음담패설’이라는 애매모호한 용어로 덮어주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기사 내용이 이병헌 측의 입장만을 두둔하는 대변지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이에는 한국의 남성우월주의 문화에 기반한 잘못된 성문화도 한 몫하고 있겠지만, 이병헌이 거대 자본을 창출하는 조직에 소속된 인물이기 때문임도 부인할 수 없다. 대중 미디어는 스타와 서로 공생하며 얽힌 관계에 있고 홍보를 매개로 한 각종 이권 사업의 존재와 또 앞으로의 뉴스꺼리 등을 손쉽게 얻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이다.
음담패설인가 성추행인가?
이병헌의 발언 내용이 성범죄에 속하는 성희롱 또는 성추행인지 여부는 피해 당사자 즉 다희와 이지연이 그 당시 느꼈던 성적 수치심의 정도가 매우 중요한 관건인데, 이를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그 대가로 돈을 요구할 정도였다는 사실을 보면, 이병헌이 말한 내용들이 두 어린 여성이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준을 넘었다'고 생각했음을 의미하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 이병헌이 월드스타라는 걸 악이용했다고는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정도의 가벼운 농담을 대가로 50억을 요구했다고 하기에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술집 호스티스도 아닌 20대 여성이 그 정도의 노골적인 언사를 더군다나 나이가 20 살이나 많은 '확실한' 유부남에게서 듣게 된다면 수치심, 좌절감, 분노 등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게 될 거라는 게 일반적인 판단이다.
먼저 명백한 성범죄에 속하는 성희롱과 성추행의 정의를 보자.
성희롱 또는 성추행에 해당하는 영단어인 'sexual harassment'로 네이버 사전검색을 하니 특이하게 ‘21세기 정치학대사전’에서 상세히 정의되어 있다.
성희롱(sexual harassment)
- 성(性)과 관련된 언동(言動)으로 상대방에게 불쾌하고 굴욕적인 느낌을 갖게 하거나 차별(discrimination) 또는 학대(abuse) 등 유무형의 피해를 주는 행위. 여성에 대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남성에 대한 성적 희롱도 가끔 있다.
계속 이어지는 내용으로는 1. 성적 희롱은 언어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예를 들면 상대의 의지에 반하여 신체에 접촉하거나 해고나 승진 등의 직업상의 불이익을 이유로 교제를 강요하거나 성적 관계를 강요하는 경우도 포함된다. 2. 페미니스트 이론에 의하면 성희롱이란 남성이 여성을 상품화하는 현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Mackinnon, 1979). 3. 페미니즘에 의해 이 용어가 도입됨으로써 문제를 개념화할 수 있게 되었으며 또한 문제를 논의할 수 있게 되었다(Humm,1989) - 출처 : (21세기 정치학대사전, 한국사전연구사)
<참고> : ☞ 누르기! 하면 위에 있는 성추행의 정의가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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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학자들은 권력이란 ‘타인을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가능성(possibility)’으로 정의한다. 권력을 구성하는 요소로는 <제 3의 물결>로 유명한 앨빈 토플러의 명저, <권력의 이동(power shift)>에서 규정한 3 가지에 필자는 동의한다. 1.인격(character) 2. 돈(money) 3. 지식(knowledge, 정보)이다. 여기서 인격이란 품성을 말하는 게 아니라 개인의 외모, 언변, 가문, 유명세 등 개인이 가진 능력을 총괄적으로 포괄하는 용어다. 혹자들은 이 3요소 이외에 4.폭력과 5. 조직을 첨가하기도 한다.
이병헌의 권력
이병헌은 인격, 돈, 지식(정보력 포함), 폭력, 조직 등 5가지 모든 부분에서 이 두 여성보다 압도적인 우위에 있는 게 사실이다. 더군다나 종적인 질서를 강조하는 한국에서 또 하나의 권력으로 작동하는 나이까지 무려 20 살 이상 많다. 최소한 '나이' 하나라도 이 두 여성보다 어렸다면 이병헌이 감히 이런 발언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런 말까지 들어야 하는 21살 여성의 심정은 오죽했으랴! 더구나 독신남도 아니고 명백한 유부남인 걸 다 아는 상황이라 자신에게 관심이 있어 하는 말도 아닌 까닭에, ‘이 남자가 도대체 날 뭘로 보는 거야?’ 하는 인격모독을 심하게 느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병헌의 과거 행적들, 즉 캐나다 여성과의 스캔들, 강병규 관련 스캔들이 있었기에 이런 모욕감은 더 심했을 것이다.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한국의 좁은 연예계에서 이병헌같은 거물의 비위에 거슬리면 향후 진로에 지장이 있을까봐서 이병헌이 하는 언사가 속으로는 매스꺼우면서도 햇병아리 신진 연예인으로서는 그저 감내해야 했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자신의 비굴한 처지에 대해서 심한 좌절감과 모멸감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라는 게 인지상정이다. 물론 더 자세한 내막은 동영상 내용이 전부 공개되어야만 알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필자는 이에 대한 비애감과 복수심도 이 협박사건과 깊은 연관이 있으리라 본다. 미수에 그친 점도 있고 초범에다가 이러한 여러 상황들은 충분히 정상참작되어야 마땅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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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성추행의 본질- 권력(power)
성희롱 또는 성추행의 본질을 다룬 세계적인 영화로는 헐리웃의 쟁쟁한 스타인 데미 무어와 마이클 더글러스 주연의 <폭로(Disclosure, 1994)>가 유명하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성범죄는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강자의 약자에 대한 폭력’이란 점이다. 최근 한국의 성폭력 사건 관련 데이터가 보여주는 두드러진 특징은 성폭력 피해자의 비중에서 의외로 ‘나이 어린 남성’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음도 이런 시각을 잘 반영한다. 이건 한국인들도 성범죄의 본질이 남녀의 성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관계에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도중에 기업 합병 등의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긴 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가 전하는 성범죄에 대한 메시지는 확실하다. 본질은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성별에 있는 게 아니라 '권력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샌더즈(마이클 더글러스)측의 알바레즈 변호사는 ‘ 두 사람 사이에서 만남의 주도권이 직장 상사인 메리더스(데미 무어)에게 있었고, 시애틀에선 구할 수도 없는 포도주를 구한 그녀의 저변엔 샌더즈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는 걸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데 주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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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문?
이 사건의 진행 중에 이병헌이 반성문을 공개했다. 한데 이병헌의 속마음이야 어떻든 간에 대중으로부터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다는 공감을 얻는 데는 실패하고 있는 듯하다. 필자의 느낌 또한 그러하다.
“계획적인 일이었건 협박을 당했건 그것을 탓하기 이전에 빌미는 덕이 부족한 저의 경솔함으로 시작된 것이기에 깊은 후회와 반성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이병헌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 의식을 파악할 수 있는데, 가장 먼저 ‘덕이 부족한‘ 이란 문구는 우리 사회에서 주로 권력자가 아랫 사람들에게 면피용으로 쓰는 상용구다. “과인이 덕이 부족하여~” 는 주로 임금 같은 권력자가 일반인을 향해 사용하지 그 반대의 경우는 찾기 힘들다. 또한 사소한 부주의를 의미하는 ’경솔함’이란 용어도 이런 경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 긴 반성문 어디를 봐도 막상 이 사건에서 자신의 잘못된 행위로 인해 성적 수치심이나 모멸감을 느꼈을 두 여성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한 대목은 단 한 자도 없다. 비록 50억 협박이라는 더 큰 잘못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는 입장이 된 두 여인이지만 이에 대한 사과표현이 어떤 형식으로든 나왔어야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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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희롱· 성추행 풍속도
한국 사회의 성희롱· 성추행도 주로 직장 상사가 하급 여직원을 향해 일어난다. 심지어 교육자들인 교장, 교감들이 일반 여교사들을 향해서도 자주 일어나고 있다. 이런 것 또한 남성,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상급자와 하급자간의 철저한 권력관계다. 한국에 특이한 점은 이런 성범죄가 주로 비틀어진 음주문화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별한 날, 기쁨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는 필자가 직장생활을 할 때 단체회식 같은 곳에 참석할라치면 난처한 점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마지막은 꼭 룸싸롱 같은 곳에 가서 여성들을 부른다. 말인즉 여성 접대부들이 있어야만 술맛이 난단다. 여기서도 주로 여성 호스티스들을 데리고 지저분한 짓을 하는 사람들은 부장 등의 최고 권력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나중에 독립하여 무역 사업차 서양 사업가들을 제법 상대해봤지만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룰싸롱 같은 술 접대를 원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헐리웃 영화 어디에서도 술집에 여성 호스티스를 불러놓고 술을 즐기는 장면을 본 적이 없다. 한국이 좀 이상한 음주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좀 글로벌한 수준으로 바뀌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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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과 바램
필자는 두 여성이 협박을 하지 않고 그 동영상을 경찰에 증거물로 제출하면서 성희롱 또는 성추행으로 고소했다면 이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랬다면 한국 사회의 그릇된 성문화와 양성평등에 관하여 큰 진보를 이룰 수 있는 역사적인 사건이 되었으리라고 생각되어 참 아쉽다.
한국사회가 진정으로 좋은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필자는 이 사건에 있어 다희·이지연의 협박에 대한 엄정한 심판이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행여라도 이들이 상대방인 월드스타 이병헌에 비해 돈과 조직과 권력이 없음으로 해서 지나치게 과도한 처벌을 받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현실적으로 상대방 이병헌이 가진 권력에 비추어 보면 보름달 앞에 있는 반딧불처럼 너무나 약자인 것도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 글: 김휘영 문화평론가·행복문화발전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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