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폴리뷰 편집국장] 오준 유엔 대사가 세계인을 감동시키는데 필요한 단어는 몇 개 되지 않았다. 김정은을 가리켜 ‘살인마’ 따위의 살벌한 단어를 써 분노를 키우거나 눈물샘을 자극하려고 일부러 수사를 동원하지도 않았다. 다만 북한 인권에 대해 우리가 왜 말해야하는지 담담히 이야기했을 뿐이다.
“2년 전 한국이 유엔 안정보장 이사회의 비상임 이사국으로 처음 회의에 참여 했을때 북한의 미사일과 핵 문제를 논의 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이어 오늘 이 마지막 회의에서도 북한 인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단지 우연의 일치겠지만 제 마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북한 주민은 그저 아무나(anybodies)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수백만 명의 이산 가족에겐 아직 북쪽에 그들의 가족이 남아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없고, 그 분단의 고통은 엄연한 현실이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겨우 수백 Km 떨어진 그곳에 그들이 살고 있다는 걸 말입니다.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에 적힌 인권침해의 참상을 읽으면서 우리 가슴도 찢어지고 탈북자의 층언을 들으면서 마치 우리가 그런 비극을 당한 것처럼 같이 울지 않을 수 없고, 슬픔을 나누게 됩니다. 먼 훗날 오늘 우리가 한 일을 돌아볼 때, 우리와 똑같이 인간다운 삶을 살 자격이 있는 북한 주민을 위해 '옳은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오준 UN 주재 한국대표부 대사-
오준 대사의 연설이 젊은 세대의 감성을 두드리고 세계인을 울린 건 평범한 문장 속에 스며들어있는 진정성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북한 주민은 그저 아무나(anybodies)가 아니며, 불과 수백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비극을 겪는 그들의 현실에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인권 상황이란 게 과장할 필요가 없는 문제이긴 해도 오준 대사는 그런 안타까움을 평범한 한국민 입장에서 담담하게 전했기에 여운이 더욱 컸다.
분노와 증오심 부추기는 자극적 언어가 유행이 된 정치계·언론계
필자가 새해 벽두부터 조금은 생뚱맞고 새삼스럽게 오준 대사의 연설을 소개하는 건 그의 소박하고 감동적인 연설이 남긴 긴 여운 때문이다. 작년 한 해 동안 나름대로 치열했던 정치인들과 또 언론인들에게 타인을 감동시키는 말과 글이란 무엇인가를 새삼 되새겨볼 기회와 교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남에게 나의 절박함을 호소하기 위해서, 혹은 내 주장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자극적인 문장, 극단적인 단어,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남을 설득하기 위해 현실을 불필요하게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기술’을 동원할 필요도 없다. 억지 근거와 궤변은 오히려 타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훼방만 되어 금물이다. 타인의 공감을 사고 서로가 소통하는 데 필요한 건 그저 있는 그대로의 진심이면 된다. 언어가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할 때는 쉽고 평범한 말에 상식과 진심을 담았을 때다.
작년 우리 정치권엔 저마다 각자 자기주장이 옳다는 점을 강조하려다보니 온갖 자극적인 말들로 넘쳐난 해였다. 당장 대통령부터 그랬다. ‘사생결단이다’, ‘암 덩어리다’, ‘쳐부술 원수다’ ‘규제 단두대’ 등의 강한 말들을 썼다. 국민에게 규제개혁의 절박성을 어필하고 싶었기에 썼겠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왔다. 대통령이 그런 섬뜩한 말들을 쓰면 국민은 불안하다. 반대로 대통령이 잘 쓴 말이 국민적 공감을 얻기도 했다. “통일은 대박이다”와 같은 말이다. 흔한 단어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간단한 문장이지만 많은 국민의 가슴과 뇌리에 꽂혔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해산된 통합진보당원들이 뱉어낸 격하고 분노에 찬 표현에 많은 국민이 공감하지 못한 이유도 딴 데 있지 않다. “헌재는 오늘날의 차지철” “헌재는 자격도 없는 쓰레기들” “지금은 4.19 전야” 이런 거친 막말과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지 못하는 황선 부부의 시대착오적인 말들에 방송과 인터넷에는 냉소와 조롱만이 넘쳐났다.
오준 대사의 진심 담은 소박한 연설이 감동을 주는 이유 깨닫길
젊은 세대가 꿈에 그리는 직장 MBC를 아우슈비츠로 표현한 MBC언론노조나 현재를 ‘경술국치’ ‘유신시대’로 비유한 미디어오늘의 신학림 편집인의 극단적 비유도 마찬가지다. MBC언론노조의 과거 파업이 참담하게 실패한 것이나 미디어오늘이 상식을 가진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의 가슴을 열지 못하는 이유도 언어의 힘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급적이면 최대한 자극적인 단어로, 증오와 분노를 부추기는 선동적 언어를 써야 힘 있는 글, 남을 설득할 수 있는 글이 되는 걸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언어의 힘을 이렇게 잘못 이해하고 있다. 정치인이며 언론인이며 하나같이 우리말을 사용하는데 ‘좀 더 자극적으로’, ‘좀 더 세게’가 유행처럼 돌고 있다. 그런 잘못된 흐름이 멈추고 순환하는 2015년이 되길 바란다. 참으로 혼란스럽고 어지러웠던 작년 한 해 끝에서 우리에게 전해진 오준 대사의 연설을 되새기며 진정한 언어의 힘을 깨달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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