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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칸하나다] 베를린 위안부상에서도 확인된 고노 담화의 사악한 파괴력

위안부 문제와 관련 고노 담화를 앞세워서는 일본 외교는 늘 패배할 것 ... 고노 담화 재검토 및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알리는 전면적 노력 필요



※ 본 칼럼은 일본의 유력 시사잡지 ‘겟칸하나다(月刊Hanada)’의 인터넷판인 ‘하나다프러스(Hanadaプラス)’에 2020년 12월 23일자로 게재된 ‘베를린 위안부상에서도 확인된 고노 담화의 사악한 파괴력(ベルリン慰安婦像でも敗北 河野談話の破壊力)’를 ‘겟칸하나다’ 측의 허락을 얻어 완역게재한 것입니다. (번역 : 황철수)




[필자소개] 야마오카 데츠히데(山岡鉄秀)는 정보전략분석가이자, Australia-Japan Community Network Inc. (AJCN, 일-호 지역주민네트워크 주식회사) 대표이며 공익재단 모라로지(モラロジー) 연구소 연구원이다. 1965년 도쿄 출생. 일본 주오(中央)대 졸업 후, 호주 시드니대 대학원, 뉴사우스웨일즈대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14년 호주 스트라스필드(ストラスフィールド, Strathfield) 시에서, 중국계와 한국계의 반일 단체가 추진하는 위안부 동상 설치 계획과 조우했었다. 이에 아이가 있는 어머니들과 함께 현지 일본계를 이끌고 AJCN를 결성했다. “지역 사회의 평화와 화합의 중요성”을 호소하고 비일본계 주민의 지지도 얻어, 압도적 열세를 만회했다. 결국 2015년 8월, 스트라스필드 시에서의 “위안부 동상 설치” 저지에 성공했다. 저서에 유엔의 사기와 아사히 신문 등 영어 선전전의 함정(陥穽)을 추궁한 ‘일본, 이제는 사과 하지마!(日本よ、もう謝るな!)’(아스카신샤(飛鳥新社))가 있다. 



‘망령’에 의해 완전히 역전되어 버리다(“亡霊”によって見事に逆転されてしまった)

베를린 시 미테(Mitte) 구에 세워진 위안부상이 당분간 존속하게 되었다. 12월 1일에 개최된 구 의회에서 위안부상 영구설치를 요구하는 동의안이 찬성 24표, 반대 5표의 찬성 다수로 가결됐다.

이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슈테판 폰 다셀(Stephan von Dassel) 미테 구청장(녹색당 소속)은 결의의 수용을 표명하며 위안부상 철거 명령의 철회를 미테 지역 법무국에 의뢰했다. 

이에 따라 위안부상 철거 명령을 내렸던 미테 구를 행정법원에 제소한 한국계 시민단체인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도 제소를 취하했고 위안부상은 예정대로 1년은 이대로 존속하게 됐다. 

이 동의안은 또한 미테 구청에 동의안 신청자와 함께 위안부상을 영구적으로 미테 지역에 설치하기 위한 해결책을 찾는데 있어 구 의회를 참여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 외교의 완패였다.

모테기 일본 외무상이 마스 독일 외무부 장관에게 위안부 상 철거를 신청하고, 미테 구청장이 동상의 철거를 코리아협의회에 명령한 당시까지는 괜찮았지만 완전히 역전되어 버렸다. 

왜 이런 일이 있어났을까. 거기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얽혀 있겠지만, 또 다시 떠오른 것은 바로 고노 담화의 망령이었다. 

위안부상 철거 권고를 냈던 폰 다셀 구청장은 당초에는 일본 대사관 측에 매우 송구하다는 태도였다고 한다. “내용을 잘 보지 않고 승인했던 것은 잘못이었다”, “즉시 철거하겠다”는 자세였다고 한다.

그러나, 구청장은 의외의 상황을 맞이했다. 먼저 구청장을 지원해야 할 구의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좌파 3당으로부터 뜻밖의 비판을 받게 됐다. 구청장 자신이 속한 녹색당은 물론, 사회민주당 (SPD), 좌파당에서 이의를 제기당했고 이에 철거가 중단되어 버린 것이다.

또, 코리아협의회와의 재판에서 이길 자신도 흔들리고 말았다. 처음에는 “코리아협의회의 신청서에는 비문에 관한 설명이 없었다”는 점이 결함으로 지적되었었지만, 잘 살펴보면 그럴듯한 설명이 없지도 않았다는 식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철거 명분에서의 다른 논점으로 외교 관계를 저해한다는 논점도 있었지만 이것은 독일의 법원에서는 인정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폰 다셀 구청장은 완전히 기가 죽었는데, 여기에다가 앞서 지적한 동의안 문제까지 부딪쳐서 순식간에 침몰당한 것이다.



현지 일본계 주민은 왜 침묵하는가(現地の日系住民はなぜ沈黙しているのか)

이번에는 일본에서도 여러 개인이나 단체에서 의견이 독일 미테 지역으로 보내졌다. 일본의 자매 도시인 히가시 오사카(東大阪) 시, 신주쿠(新宿) 구, 쓰와노(津和野) 정(町), 그리고 자매 도시는 아니지만 분쿄(文京) 구나 나고야(名古屋) 시에서도 위안부상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편지가 보내졌다. 

나 자신도 독자적으로 미테 구 문화예술역사 기획과장인 우테 뮐러 티슐러(Ute Müller Tischler) 씨에게 질문장을 보냈지만 응답은 없었다. 일본에서의 반발이 커져서 미테 구 측은 태도가 경직되어 일본 외무성과의 교신에 있어서도 소극적으로 바뀐 것 같다. 

그렇다면 외무성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일단 독일 측에 전해야 할 논점은 모두 전한 것 같다. 일본은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대처해 왔으며 이미 해결되었다는 일반적인 설명 외에도, 사실관계의 오인, 한국의 베트남 전쟁에서의 만행과 라이따이한 문제, 위안부상 제공자인 정대협의 북한과의 관계, 최근의 기부금 부정사용 문제, 일본만을 비난하는 모순 등 모든 논점을 전했다는 것이다.

또한, 독일의 전쟁 중 강제매춘이야말로 인권침해가 심각했었고, 그것은 일본의 위안부 제도와도 비교가 안 될 정도였지만, 그것은 독일인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위안부상 철거에 동의하지 않은 것은 왜일까?

이유는 여러가지 있다. 기본적으로 독일은 나치 독일에 대한 반동도 있고 해서 좌익 성향이 강한 나라이다. 미테 구 의회도 전체 55석 중, 구청장이 속한 녹색당이 12석, 사민당(SPD)이 15석, 좌파당이 10석으로 총 37석 과반수를 차지한다. 

독일인들은 일본을 독일보다 악랄한 국가로 묘사하고 싶은 욕망이 강하다.  자신들이 유럽에서 가장 심했다고 하더라도, 극동에는 더 심했던 나라가 있다고 생각하며 치유받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독일인에 널리 공유되고 있는 정서이며, 그들은 일본을 나치스와 같은 절대악으로 고정시켜 치유되고 싶어 한다. 구체적으로는 ‘쇼와 천황 = 히틀러’이며, ‘천황 폐하 만세’는 ‘하일 히틀러’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 반론을 하는 것은 나치스를 긍정하는 것과 동의어인 한마디로 역사수정주의가 되는 것이며,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선택지’(AfD)와 같다고 낙인이 찍히게 된다.

이러한 배경이 있기 때문에 현지에 거주하는 일본인도 굳이 반박의 목소리를 높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원래라면, 호주에서 그랬던 것처럼 외무성에 맡기는 것 뿐만이 아니라, 현지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일본계 독일인 포함)이 연계하고 반대 목소리를 행정 쪽에 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호주에서는 호주인 주민들까지도 위안부상 반대운동에 참가했었다). 세금을 지불하는 현지 주민의 목소리가 원래 의회에 가장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반면에, 반대의견이 없다면 “현지 일본계 주민도 반대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좌경적 풍조가 강한 독일에서는 한번 극우라고 낙인 찍히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현지 일본계 주민들은 그냥 침묵해 버린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반일 좌익 활동가”(ドイツにいる“反日左翼活動家”)

한편, 독일에는 반일 좌익 활동가와 함께 하는 일본인도 많이 거주하고 있다. 위안부상 제막식에서 환영 연설을 한 일본인이 두 사람 있었다. 이것은 미테 구 의회에서 재빠르게  “동상에 찬성하는 일본인도 있다”는 식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어떤 일본인이 찬성하고 있었는지가 문제다. 놀랍게도, 베를린에는 극좌 운동가로 알려진 故 오다 마코토(小田実) 씨가 1986년도에 설립한 ‘독일평화포럼(独日平和フォーラム)’이라는 단체가 아직도 존재한다.

그들은 한국의 반일 단체를 지원하며 코리아협의회의 홈페이지에도 협력 단체로 나열되어 있다. 독일평화포럼은 유럽에서의 반일 활동의 거점이 되어서 반일 한국인 학자가 주도하는 반야스쿠니 활동도 지원하고 있다.

그 밖에도 독일평화포럼의 공동설립자이며 “이제 와서 종군위안부를 부정하는 언론을 일본 정부가 내놓으면 세계에서 일본의 신용은 몰락한다. 있을 수 없다”고 발언한 ‘슈칸긴요비(週刊金曜日)’誌의 집필자 가지무라 타이치로(梶村太一郎) 씨, 바로 그의 부인이 위안부 문제 담당을 맡고 있는 ‘베를린 여성의 모임(ベルリン女の会)’이라는 단체도 있다.

이 단체는 브란덴부르크 문 같은 대표적인 베를린의 관광지에서 고의적으로 일본을 비난하는 현수막을 내걸고 집회를 열고 있다. 어떤 사상을 갖더라도 자유이겠으나, 분명히 말해두건대 부끄러운 일이다.

해외에는 타락한 학생운동 같은 좌익 활동가 계보의 일본인들이 이주한 케이스가 적지 않으며, 그 추세가 북미에서 현저하며 유럽에서는 독일이 현저하다. 현지에서 상식을 벗어난 반일 발언을 반복하는 독일인을 살펴보면 이러한 단체의 회원이며 좌익 일본인의 반일 사상을 고스란히 계승한 경우도 있다.

그런 반일 독일인의 목소리가 너무 크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 반박을 해 달라는 요청이 현지 일본인으로부터도 있었기에 그런 반일 독일인의 주장을 정독한 후에 반박 논문이 될 수 있는 의견서를 다시 쓰고서 폰 다셀 구청장에게 보냈다.

이번에는 내가 고문을 맡고 있는 ‘마쓰다정책연구소(松田政策研究所)’의 마쓰다 마나부(松田学) 대표와 연명으로서 일본 국회의원의 추천문을 표지로 붙였다.

야마다 켄지(山田賢司) 의원, 미타니 히데히로(三谷英弘) 의원, 오구마 신지(小熊慎司) 의원, 마쓰카와 루이(松川るい) 의원, 이케다 요시타카(池田佳隆) 의원, 나가오 타카시(長尾敬) 의원, 오노다 키미(野田紀美) 의원, 이렇게 ‘일독의련(日独議連)’에 속하는 7명의 국회의원이 연명해주었다.

관심이 있는 분은 마쓰다정책연구소 사이트의 다음 링크를 참조해주기 바란다. 



영어 사이트에서 무라야마 담화나 고노 담화를 긍정?(英語サイトで村山談話や河野談話を肯定?)

반론을 아무리 해도 상황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테 구의회가 역사적 사실 인정에 있어서 참고로 했던 것이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게재되어있는 고노 담화라고 한다. 미테 구의회에서 교부된 자료를 보면 분명히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링크가 게재 되어있다.

1993년에 나온 고노 담화 이후에도 다양한 담화나 성명이 나온 바 있는데, 이번 베를린의 위안부상 소란에 있어서는 일본 외무성이 모처럼 재차 반론의 의미를 담은 글을 발표했다. 
 
그것은 기존에 볼 수 없는 적극적인 행동이긴 했지만, 고노 담화를 비롯하여 사과를 하고서 대충 상황을 수습하려는 의도로 쓰여졌었던 글들까지 그대로 게재했다가는 설득력이 크게 떨어지고 창피를 당할 것이 뻔하지 않은가.

내가 아사히신문에 대해 영어 기사의 위안부 강제연행을 상기시키는 인상조작을 중지하도록 항의했을 때도 아사히신문은 고노 담화를 근거로 수정에 응하지 않았다. 고노 요헤이 씨가 깎아내린 국익은 헤아릴 수 없다. 

다시 외무성 홈페이지를 확인했지만, 여전히 영어 사이트와 일본어 사이트의 구성이 다르다. 어느 쪽도 일관성이 없는 짬뽕인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영어 사이트는 과거 발표된 담화류 전부를 나열하고 있다.

우선 영어 사이트부터 지적하자면, ‘역사 문제(Issues regarding History)’라는 페이지가 있다. 2019년 11월 19일의 날짜가 있는 것을 보면  1년 전에 업데이트가 된 셈이다.(역주 : 이 칼럼을 통해 지적이 된 이후, 해당 페이지는 2021년 1월 14일에 새로 업데이트가 됨.)

서두에 수상, 관방장관, 외무대신의 최근 성명이라는 제목으로 링크가 붙어있다. 최상단에는 2014년 3월 14일자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의 아베 수상 발언이라면서 4점을 요약하고 있다. (이하, 야마오카 데츠히데 번역)

□ 역사 인식에 대해서 아베 정권은 종전 50주년과 60주년의 무라야마 담화와 고이즈미 담화를 완전히 계승한다. 

□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어려움을 겪은 위안부 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전임자와 생각을 공유한다.

□ 고노 담화가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것은 관방장관 담화이며, 스가 관방장관이 기자 회견에서 언급했듯이 아베 정권에서 고노 담화를 재검토(철회)할 의도는 없다. 

□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역사에 겸허하게 마주해야 한다. 역사 문제는 정치 문제나 외교 문제로 다뤄지면 안 된다. 역사 검증은 전문가와 역사가의 손에 맡겨야 한다.


이러한 내용을 외국인이 읽으면, 일본의 위안부 제도는 여성에 대한 현저한 인권 침해이며, 강제연행과 성노예화를 일본 정부가 부정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것이다. 

그 아래에는, 2014년 3월 3일자 스가 관방장관과 기자의 대화 내역 링크가 있다. 

기자 : 아베 총리가 역사인식에 관해서는 전임자의 견해를 계승한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무라야마 담화나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틀림없는 것입니까? 

스가 관방장관 : 이전에 말씀 드린 그대로입니다.

기자 : 아베 정권이 고노 담화를 계승하는 것에 대하여 그 일관성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스가 관방장관 : 아무런 모순도 없습니다. 제1차 아베 정권에서도 고노 담화를 계승했습니다. 고노 담화를 유지하는 것이 일본 정부의 기본 입장입니다.


또 역사 문제 Q&A(History Issues Q&A)로 이어져, 그 아래에는 무라야마 담화, 가토 고이치 담화, 고노 담화, 아시아 조성 기금 관련 내용을 포함하여 과거의 공표 내용이 망라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질 수 밖에 없었던 일본(負けるべくして負けた日本)

한편, 일본어 사이트의 구성은 왠지 이와 다르다. 앞서 언급한 아베 수상의 참의원 예산위원회 발언 앞에 아베 수상의 종전 70주년 담화가 게재되어 있으며 스가 관방장관의 기자회견은 게재되어 있지 않다.

그 뒤로 고이즈미 수상의 종전 60주년 담화, 마치무라(町村) 외무대신이 뉴욕에서 했던 ‘전후 60년을 맞이한 일본의 세계 전략과 일미 관계(戦後60年を迎えた日本の世界戦略と日米関係)’라는 정책 연설 번역이 있으며 다시 고이즈미 수상의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 연설, 그리고 무라야마 수상의 종전 50주년 담화로 이어진다.

이상하게도 고노 담화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아래쪽에 위안부 섹션이 있고, 거기에는 ‘일본 정부의 조사와 내각 관방장관 담화(日本政府による調査と内閣官房長官談話)’라는 링크가 있다.

그것을 클릭하면, 또한 ‘1993년 8월 4일의 내각 관방장관 담화(平成5年8月4日の内閣官房長官談話)’라는 링크가 있고 그것을 클릭하면 고노 담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영어 사이트에서는 고노 담화를 앞세우면서, 일본어 사이트에서는 고노 담화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기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이 외무성 홈페이지를 베를린 미테 구의회가 검토했다면, 일본 정부는 비참한 위안부 제도를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고 있다고 생각했대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독일인들의 좌익적 사고만을 탓할 수 없다. 일본 외교는 고노 담화를 앞세웠기에 그래서 당연히 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를 포함한 민간인이 아무리 반박해도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 앞에서는 그 반박은 희미해지는 것이다.

이번 위안부상 유지에 찬성한 미테 구 의원들 가운데는, 설치 허가 만료 1년 후에 구의회가 참여하여 비문의 내용도 검토하고서 보다 일반적인 오브제로서 영구설치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이도 있었다. 코리아협의회는 확실히 설치 허가 기간의 연장을 신청할 것이다.

일본 대사관은 전력을 다해서 위안부상 문제를 이해하기 쉽도록 하고서 또 이를 널리 알리는 일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재 상태의 외무성 홈페이지로는 영원이 일본의 오명을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베를린의 위안부상 문제를 교훈으로 하여 전면적인 재검토에 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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