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의 전 세계적인 공작은 은밀하면서도 만연해 있으며, 서방의 민주적인 기관들을 약화시키고 있다. ‘보이지 않는 붉은 손(Hidden Hand)’은, 이에 대한 우리의 위기의식을 높이는데 있어서 환영할만한 책이다.
대부분의 신흥 강대국들이 자신들에 유리한 세계질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새로운 규칙에 기초하여 세계질서를 이끌었고, 국제연합(UN),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IBRD),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같은 국제기구의 창설은 그 일환이었다. 또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맺었고, 일본, 한국, 호주 등 여러 국가와 전략적 동맹과 파트너십을 결성하기도 했다. 특히 미국은 다원적 민주주의(pluralist democracy), 인권존중, 법치주의 및 시장경제라는 숭고한 원칙을 기반으로 이런 일들을 했다. 물론 미국이 한 일 중에서는 가끔씩 이러한 원칙에서 벗어난 일이 있기도 하다.
미국은 1970년대부터 중화인민공화국과 점진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관계를 시작했다. 미국은 두 국가의 경제가 서로 얽히면서 경제개방이 중공의 정치개방 및 자유를 촉진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리고 세계질서에서 막대한 이익을 보는 중공이 결국은 “책임 있는 이해당사자(responsible stakeholder)”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클라이브 해밀턴(Clive Hamilton)과 머라이커 올버그(Mareike Ohlberg)가 신간 ‘보이지 않는 붉은 손’에서 조목조목 지적한 바에 따르면, 이는 중국 공산당의 실체를 잘못 판단한 희망적 사고에 불과했다. 사실 유럽에서 냉전이 끝나고 서방세계가 소련의 종말을 기뻐하는 동안, 중공은 자신들도 소련과 같은 길을 걷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소련의 운명을 매우 신중하게 연구하고 있었다. 저자들에 따르면 중공의 입장에선 아직 냉전은 끝나지도 않았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중공이 오늘날 어떻게 세계질서를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재편하고 있는지를 꼼꼼하게 기록했다.
이 책은 중공이 호주에서 벌이는 각종 공작 문제를 다룬 클라이브 해밀턴의 2018년 저서 ‘중국의 조용한 침공(Silent Invasion)’의 후속작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붉은 손’은 특히 중공이 정치 엘리트, 기업인, 화교사회, 대학, 언론, 문화단체, 싱크탱크 및 글로벌 거버넌스를 통해 북미와 서유럽에서 벌이는 공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아시아 국가들 중 상당수도 이 지역에서 미국과 중공의 패권 경쟁에 대해 우려하고 있기에, 클라이브 해밀턴 교수가 기왕에 이 문제를 다룬 세 번째 책도 냈으면 좋겠다.
중공의 ‘전랑외교(wolf warrior diplomacy)’, 협박, 괴롭힘에 대해 많은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클라이브 해밀턴과 머라이커 올버그는 중국 공산당의 공작이 노골적이기보다는 대부분 은밀하며, 무엇인지도 파악하지 못할 정도인 경우도 있다고 주장한다. 중공이 사용하는 다양한 수법 중에서도, 서구 엘리트들을 ‘중국의 친구’로 길러내는 것이 그들의 중요한 수법이다. 클라이브 해밀턴과 머라이커 올버그는 이 전략으로 인해 중공이 ‘담론권력(discourse power)’을 가지게 된다고 설명한다. 즉 한 국가의 엘리트들이 중국 공산당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따라하며, 이로써 중공 정권을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가 강화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국개발은행(China Development Bank) 산하 국제자문위원회에 참가하고 있는 폴 키팅(Paul Keating) 전 호주 총리는 “중국 공산당 정부는 지난 30년간 세계 최고의 정부였다”는 말까지 했다.
중공은 세계무역분야와 국가재정분야에서 강대국이 되었기에 이를 지렛대로 삼아 상대 국가에 항복을 강요할 수 있다. 기업과 대학은 중공의 경제로 인한 혜택을 톡톡히 받는 조직으로, 중국 공산당을 적극 두둔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문제는, 호주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국제사회의 독자적인 조사를 요구했을 때 있었던 일처럼, 중공과 대척점에 섰을 경우에는 경제 제재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국가들에서도 분명히 확인됐듯이, 중공은 상대 국가의 국민들을 체포해서 인질로 삼을 수도 있다.
중공은 미국 중심의 동맹체제를 타파하고 다른 국가들이 (중공에 있어선) “공공의 적”인 미국에 맞서도록 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호주의 빅토리아주가 참여하고 있는, 중공의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의 핵심 목표 중 하나는 중공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는 대안적인 동맹 체계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저자들은 전했다. 중공은 해외 거주 화교들에게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중공에 가족을 두고 온 사람들에겐 남겨진 가족을 해치겠다고 위협하기도 한다. 또 중공에서 온 유학생들에겐 중공의 감시망을 이탈할 가능성이 있는 다른 유학생을 감시하고 신고하라고 강요하기도 한다.
새로운 강대국이 세계질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중공의 경우는 다른 나라 민주주의의 개방성을 이용하여 민주주의 자체를 훼손하고 권위주의를 강요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문제다. 다시 말해, 중공의 행위는 인권과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위협이다.
이미 강대국인 중공이 왜 그런 식으로 세계질서를 재편하려고 할까? 클라이브 해밀턴과 머라이커 올버그에 따르면, 중공의 이런 행위는 자신들의 강점이 아닌 약점을 암시하고 것이다. 그간 중국 공산당은 자신들의 정통성 유지를 위해 강력한 경제성장과 민족주의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시진핑은 세계질서를 중국 공산당에 유리하도록 바꾸고 해외 엘리트들이 중공(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해 가진 생각을 변화시킴으로써 중국 공산당의 생존을 보장해야 한다고 믿는다. 일단 외국인들이 ‘중국 공산당이 중공에 최고의 거버넌스를 제공한다’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하면, 이런 국제적 인식으로 인해 중공에 긍정적인 선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천안문(텐안먼), 티베트, 위구르 등이 중공만이 아닌 세계적인 금기어가 된다면, 외국 사상의 중공 침투도 차단되고 중국 공산당에 대한 자국내 지지도 강해질 것이라고 시진핑은 생각한다.
중공이 세계질서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재편하려고 하는 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현재의 세계질서를 경멸한다는 점, 또 미국의 동맹국들이 중공에 전략적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클라이브 해밀턴과 머라이커 올버그는 “유럽연합(EU) 내 브렉시트 관련 불화 문제도 같은 영향을 미쳤다”고 썼다. 특히 중공은 국제연합(UN) 기구에서 여러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많은 전략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실제로 트럼프의 미국이 만약 국제연합에서 더 진지하게 활동했다면, 세계보건기구(WHO)도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초기에 다르게 행동했을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이 책은 중공의 각종 공작 사례들을 폭넓게 다루고 있지만, 거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는지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내용을 할애하지 못했다. 중공의 공작에 최적화된 대응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서방 엘리트들의 지금과 같은 생각은, 중공의 개방에 대해서 낙관주의와 순진함이 존재하던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형성됐다. 그런 생각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지금도 중공과의 관계를 통해 큰 이익을 얻는 기업, 대학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클라이브 해밀턴이 이전에 출간한 책 ‘중국의 조용한 침공’에서 밝혔듯이, 학술연구, 싱크탱크 및 언론은 한편으론 각국 정부가 중공의 공작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는 데도 역시 도움을 줄 수 있다. 학술연구, 싱크탱크 및 언론이, 로비와 선거자금 조달 및 외세 개입 투명화 등 문제에 대한 법안과 관련하여, 공개토론을 유도하고 여론을 바람직하게 이끌 수 있는 것이다. 호주가 코로나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한 국제 조사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얻은 교훈 중 하나는, 중견국가가 단독으로는 중공에 맞서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중견국가도 다른 국가들과 힘을 합쳐야 한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중공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초기 정보를 은폐하고 허위 정보를 유포함은 물론, 또 위선적인 마스크 외교를 할 뿐만 아니라 팬데믹 와중에 전랑외교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중공의 실체에 대한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중공의 통치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서방 국가들은 중공의 공작에 대해 더 강한 반감을 갖게 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붉은 손(Hidden Hand)’은 중공이 북미와 서유럽에서 벌이는 공작을 인상적으로 정리한 책으로, 이 중요한 사안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를 높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