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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비전-상상력 갖춘 리더는 어디 있나

[국정아젠다 4차 토론회]국가 지도자의 리더십이 경제 살린다


이유식 (한국일보 논설위원) =
'갈등확산 통한 우호세력 강화라는 운동권적 논리로 국정운영'
'저급한 아마추어리즘-천박한 분배 균형논리의 잘못된 결합으로 최악 결과'
'시장에 맡겨야할 대기업은 규제, 지원해야할 중기는 시장에 맡겨'
'인기영합 리더 경계하며 지도자 기본 품성과 자질 따져야'




^얼마전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수출챔피언이었던 한국이 길을 잃고 몽유병 환자처럼 방황하고 있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값싼 노동력에 기반한 중국의 엄습과 기술력ㆍ브랜드로 무장한 일본의 질주 사이에 끼어 한국 경제가 갈피를 못잡고 비틀거린다는 내용이다. 그 신문은 최근 사설에서 또 “아시아의 대표적 성공신화로 주목받았던 한국이 때 이른 ‘중년의 위기’에 빠졌다”며 “조만간 ‘회춘(回春)’하지 못하면 재도약의 기회는 영영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 경제, 나아가 한국 사회 전체의 곤궁함을 이처럼 잘 묘사한 표현을 찾기 쉽지 않다. 짧게는 참여정부 4년, 길게는 문민정부 후반부터 국민의 정부를 거쳐 오늘에 이르는 10여년 동안 우리는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 부재 혹은 뒤틀린 지도력 탓에 사회가 지향해야할 방향을 상실하고 추진엔진도 식혀버렸다.

그나마 김영삼 정부는 OECD 가입을 통한 선진화,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벤처 생태계라는 새 성장동력을 만들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출범 초부터 “정의가 죽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특권과 반칙의 역사를 청산한다”는 과거지향적 의제에 집착해 편가르기식의 사회적 분열을 확대하고 노 대통령 스스로도 감당하기 힘든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사회’로 만들었다.

^그 결과 경제 활력이 급격히 저하되면서 투자-생산-고용-소비-소득의 선순환 구조가 깨지고 기업과 가계 등 경제주체의 심리가 얼어붙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7%대 성장 공약은 잠재성장률에도 못미치는 4%대 초반으로 갈음되고, 연간 50만개 일자리 창출 약속은 20만개대의 초라한 실적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나마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눈앞에 두었다고 하지만, 환율하락에 따른 착시현상이 크게 작용한 덕분이다. 실제로 교역조건이 나날이 나빠지는 바람에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늘어나도 국민총소득(GNI) 증가율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며 이른바 양극화로 표현되는 분배구조는 참여정부에서 더욱 악화됐다. 기업들은 100조원의 현금을 쌓아두고도 투자를 꺼리며, 소득 정체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있는 사람들마저 지갑을 좀처럼 열지 않는다.

^특히 ‘갈등 확산을 통한 우호세력 강화’라는 운동권적 논리를 국정운영의 핵심코드로 삼으면서 부동산이 경제의 전부인 양 ‘올인 정치선전’을 펴고,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해괴한 논리로 시장을 무력화 내지 왜곡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급한 아마추어리즘과 천박한 분배ㆍ균형 논리의 잘못된 결합이 최악의 결과를 낳은 셈이다. 대외의존도가 70%를 넘는 우리 경제는 외부 위험에 노출돼 변동성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위기관리 능력을 더욱 키워야 하고 시장의 신뢰을 얻는 유연한 정책을 펴는 것은 필수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완전히 거꾸로 갔다. ‘동북아 허브’ 운운하면서도 국토균형개발이니 수도권개발 규제니 하는 잣대로 좁은 국토를 조각냈는가 하면 내고, 시장에 맡겨야할 대기업은 정부가 규제의 칼을 들이대고 정부가 지원해야할 중소기업은 시장에 내맡기는 기형적인 정책들이 소신없는 관료들에 의해 수없이 자행됐다.

이건희 삼성 회장과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 등 재계의 거물들이 우리 경제를 ‘일본과 중국에 낀 샌드위치 신세’에 비유한 것은 때늦은 감이 있다. 정부는 “재계 원로들의 지적은 위기의식을 갖고 더욱 분발하자는 취지인데, 보수언론들이 위기론을 확대하며 호들갑을 떤다”고 반격하지만, 바로 이런 안일한 인식과 아전인수식 해석이 우리를 ‘중진국 함정’에 몰아넣고 있다.

^10년전 세계적 컨설팅회사인 부즈알렌해밀턴이 한국보고서를 집필하면서 21세기에 한국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처할 상황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를 고민하다가‘넛크래커론’을 제시했다. 호두를 깨는 쇠로 된 이 기구에 끼이면 양쪽을 죄는 강한 힘에 의해 반드시 깨지는 만큼 살려면 탈출하는 수밖에 없다.

그 작업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최근 “한국을 샌드위치 등에 비유하는 방안도 나왔으나 그 정도로는 현실의 심각성과 대책 마련의 긴박성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고 비화를 공개하며 당시 내놓은 전략적 제안(시장경제 강화, 지식기반경제 확충, 기업가정신 고양, 경제개방 가속화 등)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경제대국과의 게임을 슬기롭게 헤쳐가라는 이 제안은 참여정부에겐 ‘마이동풍’일 뿐이다.

^김영호 교수의 발제는 구구절절히 옳다. 분명한 목적과 실행전략을 갖춘 실용주의와 국제협력 노선은 시대정신이다. 경쟁과 자율의 원칙에 입각한 선진형 노사관계는 3만달러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정부 조직 및 예산집행의 혁신은 ‘노무현 학습효과’로 거둔 유일한 성과이며 미국 등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은 피할 수 없는 도전이다. 남북관계의 안정과 한미동맹의 강화는 북한 리스크에 따른‘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최소화하며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을 튼튼하게 하는 토대다.

^그러나 민주화 정권 10여년을 거치면서 권위주의뿐 아니라 권위마저 청산됨으로써 우리 사회는 모두가 자기 이익만 앞세우는 아노미적 혼돈상태에 빠져 있다. 과제는 분명한데 이를 실천할 국민적 동력을 흡인할 리더십을 찾기 쉽지않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김 교수는 차기 대통령이 국민적 합의로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개혁을 추진할 수 있도록 대선 후보들이 ‘국민과의 계약(Contract with Korea)’을 발표하도록 하자고 한 대목은 공감이 가나, 권력만 쫓는 그들이 정부개혁 노동유연성 등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
^때문에 경제를 살리는 차기 지도자의 덕목을 미시적으로 일일이 거론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일자리를 만들고 기업의욕을 북돋으며 부동산 등 시장을 잘 관리하고 조화로운 노사관계를 만들며 정부개혁을 앞장 서 추진하고 국가안보를 탄탄히 하는 리더십을 말하는 것은 ‘백마 탄 왕자’를 꿈꾸는 동어반복일 뿐이다. 오히려 지금은 인기영합적 리더시비의 돌출을 경계하며 지도자의 기본 품성과 자질을 말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크게 봐서 세가지 덕목을 말하고 싶다.

첫째는 신뢰다. 사실 지금의 혼돈을 좌측 깜박이를 켜고 우회전하는, 혹은 그 반대의 일을 남발해온 정권에 대한 불신에서 기인한 바 크다. 이른바 ‘신뢰의 위기’다. 사회의 분열과 갈등, 권력의 오만과 태만, 보신주의가 판치는 현상을 타개하는 방법은 정직성을 갖춘 지도자가 나와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첫째다.

둘째는 비전이다. 이른 국가발전전략과 직결된 것으로, 한미 FTA 등의 체결을 통한 경제 살리기에서 평화와 화해의 남북관계를 여는 것에 이르기까지 목적과 과정이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특히 지식정보화 사회를 이끄는 창의적 비전이 긴요하다.

육체노동과 국토개발 등의 ‘로우 로드(Low Road)’리더십은 이미 효용을 잃었고 지금 전 세계를 휩쓰는 리더십은 지식자원과 교육을 ‘하이 로드(High Road)’다. 피터 드러커 등 세계적 석학이나 잭 웰치와 빌 게이츠 등 글로벌 경영인들은 “한국이 과거의 성공모델을 만든 원천을 망각하고 교육과 지식 투자를 소홀히 한다면 미래가 없을 것”이라고 누차 경고한다.

^셋째는 상상력이다. 이 점에서 UAE 두바이 왕세자 셰이크 모하메드는 우리가 역할모델이 된다. “경제인은 정치적 진보를 만들 수 있지만 정치인은 경제문제를 풀 수 없다”며 자신을 사업가로 자처한 그는 두바이를 ‘중동의 뉴욕’으로 만드는 기적을 연출했다.

‘새로운 것은 옳다’는 열린 세계관과 상상력으로 이룬 꿈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추진력이 그 무기다. 그의 표현을 원용하면 “우리의 꿈과 상상력은 국민 개개인에게 성공동기의 핵심을 제공하고 삶을 편안하게 하는 최고의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국민 모두가 고대하는 리더다.

^끝으로‘메가트렌드’의 저자 존 나이비스트의 사례를 덧붙이고 싶다. 덩샤오핑이 1978년 12월 개방을 선언한 후 다음 해 미국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나이비스트는 리셉션장에서 그를 보고 두번 깜짝 놀랐다고 회고했다. 거대한 대국 중국을 이끄는 그의 체구가 너무 작다는 것에 처음 놀랐고 두번째는 그의 확신에 찬 발언을 들었을 때였다. “중국은 후진성을 하루 속히 극복해 세계의 선진국들을 따라 잡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우리는 미국을 배우기 위해 개방할 준비가 다 돼있다.” 이 담대하고 열린 포부가 오늘의 중국을 만든 원동력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한국일보 논설위원


제4차 토론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이 경제를 살린다> 발제 목록



[주발제] 경제 살리기 위한 리더십의 비전과 과제
*국가발전 비전-전략 갖춘 리더십 절실
*'선진형 노사문화'의 정착 최우선 과제로
*스스로 모범을 보이지 않는 리더십은 가라
*개방-자유무역-국익우선 실용노선 걸어라

[공동발제]
http://www.bignews.co.kr/news/article.html?no=94049"target="_blank"> *국민 편안하고 잘살게 해주는데 눈 돌려라
*정치-경제 균형적 리더십 갖춘 대통령 필요
*신뢰-비전-상상력 갖춘 리더는 어디 있나
*경제-민생 우선시하는 지도자 뽑아야
*실업자 해결문제, 가히 종교적 `소명`이 되어야!
*국가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5가지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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